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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김선달이라는 캐릭터 구현이 영화의 중심 - <봉이 김선달> 박대민 감독
2016-07-07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봉이 김선달>은 여름 시장을 겨냥한 기획영화다. 적어도 이 영화에 한해서 기획영화라는 수식어는 결코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선 안 된다. <봉이 김선달>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잘 풀어낸 알찬 영화다. 모험, 코믹, 추격, 액션, 활극, 뭐라 이름 붙이건 상관없다. 김선달이라는 익숙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이 영화가 여름 시장의 왕좌를 차지한다 해도 그리 놀랍지 않을 것이다. <그림자 살인>(2009) 이후 7년 만에 돌아온 박대민 감독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즐거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 바람은 이미 이뤄진 듯하다.

-<씨네21> 1037호 한국영화 톱 프로젝트 특집 인터뷰에서 “수염 붙인 유승호만큼은 최고로 보이게 될 작품”이라고 한 말을 지켰다.

=처음부처 김선달이 많은 부분을 끌고 가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구상했던 형태로 잘 나온 것 같아서 우선 안심이 된다. 캐릭터가 잘 사는 영화, 배우들 보는 맛이 있는 영화를 목표로 했는데 현장에서 신나고 즐거웠던 분위기가 화면에도 충분히 녹아들어가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다. 기본적으로 유승호가 도드라지는 영화이지만 팀플레이와 배우들간의 앙상블이 더욱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아직은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분들밖에 없어서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 (웃음) 일반 시사 반응을 꾸준히 찾아보고 있는데 아쉬움을 느끼는 분들도 있고 우리가 의도했던 대로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었다. ‘여름에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리뷰가 가장 기분 좋았고 ‘이야기가 아주 기발하진 않다’는 반응도 간혹 보았다. 좀더 새로운 장면이나 반전을 보여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애초에 쉽게 따라가면서 즐길 수 있는 놀이같은 영화를 구상한 만큼 그런 지적에 대해선 겸허히 받아들인다.

-영화가 유난히 밝은 건 현장의 분위기에 배어나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생하지 않는 현장은 없지만 그 와중에도 즐거운 현장이 있다. 고창석, 라미란, 시우민 등 함께해준 배우들 모두 한가족 같은 호흡을 보여줬다.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챙기는 모습을 보며 ‘같은 편’이란 동료의식을 공유한 것 같다. 영화가 지향하는 분위기를 쌓아나가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영화가 퓨전 사극이라기보단 자유로운 상상력을 더한 시대극에 가깝다. 일전에 코믹, 액션, 추격전 모두 필요한 정도로만 넣었다고 했는데, 이 영화를 한줄로 표현한다면 어떤 장르일까.

=굳이 표현하자면 사기 활극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조선 최고의 사기꾼이 악당을 상대로 통쾌하게 한방 먹이는 이야기다. 조선시대는 배경일 뿐 되도록 시대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보통의 케이퍼 무비보다는 좀더 가볍고 경쾌한 드라마, 영화로 비유하자면 <스팅>(1973),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작업했다. 둘 다 젊은 사기꾼들의 파릇파릇한 매력을 보여주는 영화들인데, 우리도 어디까지나 김선달이라는 캐릭터의 구현이 영화의 중심이다. 시대 배경이나 장르적 요소는 목표가 아닌 재료일 따름이다.

-유승호와 고창석의 콤비 플레이를 바탕으로 한 사극이란 점에서 김석윤 감독의 <조선명탐정> 시리즈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조선명탐정>은 버디 형사물에 가깝지만 <봉이 김선달>에서 유승호, 고창석의 콤비 플레이는 여러 매력 요소 중 하나일 따름이다. 무엇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김선달이라는 캐릭터에 익숙한 설화를 바탕으로 하여 새롭게 살을 덧붙여 나간다는 게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한다. 내 기억 속에 유승호란 배우는 바르고 고운 이미지가 있어서 그걸 비틀어보면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을 거란 판단에 시나리오를 전달했는데 재미있게 읽었다며 흔쾌히 응해줬다. 막상 만나보니 화면 속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감춰진 장난기와 능청이 보였고 충분히 가능하겠다고 확신했다. 이후 유승호와 나란히 섰을때 누가 재미있을까, 조화가 될까 고민하다 고창석 배우를 떠올렸다. 워낙 코믹 연기를 잘하시기도 하고. 한 화면에 선 두 사람을 봤을 때 대비도 확실히 되면서 둘 다 너무 사랑스러운 느낌이라 무척 기뻤다.

-전작 <그림자 살인>처럼 이번에도 세트와 미술, 의상 등에 공들인 게 한눈에 보인다.

=<그림자 살인>은 구한말을 배경으로 했는데 그 당시 고증 자료가 별로 없어서 홍콩의 70년대 뒷골목 느낌을 녹이기도 하는 등 의외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이번에 는 효종시대를 배경으로 했는데 가능한 한 공간 자체는 사실적으로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미술적으로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가볍게 가고 싶지 않았다. 실제 조선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공간 등을 재현해 생활감이 느껴지도록 했다. 대신 이야기상 중요한 공간들은 그에 맞게 특색을 살렸다. 가령 거상 성대련(조재현)의 집은 좀더 고급스럽고 위압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주요 공간인 대동강을 표현하기 위해 로케이션에 공을 들였다고 들었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로케이션이었다. 이야기에 맞는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대동강만 해도 최소 5군데에서 각기 촬영했다. 제방을 쌓은 절벽 같은 지형은 전라북도 진안에서, 잠수부들과 사금 캐는 장면은 경상북도 안동에서, 보원(고창석)이 돌팔매질을 하며 성대련 일당을 쫓아내는 장면은 금강 유역에서, 클라이맥스 장면은 강원도 인제에서 찍었다. 이야기에 적합한 그림을 찾아내는 게 쉽진 않았지만 발품을 판 만큼 결과에 만족한다.

-초반에는 김선달의 다양한 사기 에피소드들을 차례대로 선보인다. 그러다보니 본격적인 서사는 중반이 지나야 겨우 시작되는데.

=김선달이 이미 유명한 인물이긴 하지만 설화와는 또 다른 캐릭터 구축이 필요했다. 관객이 충분히 이입하고 인물에 동화할 수 있도록 이 정도의 분량과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비록 보기에 따라 속도감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더라도 관계 설정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장면들이라 생각한다. 구성적으로 이야기를 좀더 탄력 있고 치밀하게 끌고 나가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방향의 문제가 아니라 연출력의 문제다. 다행히 시나리오의 한계를 배우들이 팀워크로 커버해준 부분들이 적지 않다. 가령 성대련 역의 조재현 배우는 혼자 정극 연기를 하며 극의 중심을 잡아줬다. 무게감을 잡아준 덕분에 작품의 균형이 맞은 것 같다. 좋은 배우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금부도사로 나오는 전석호나 정판석 역의 최귀화 등 조연 배우들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금부도사 이완의 마지막 대사는 분위기 환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터질 줄 몰랐다. 일반 시사에서도 다들 엄청 재미있어 하더라. 유승호의 여장 장면은 사실 꽤 부담이 있었다. 막연히 군대 가기 전의 유승호를 생각하고 썼는데, 막상 찍으려니 상남자가 되어 돌아온 거다. 어떻게든 예쁘게 보이려고 공을 들였다. (웃음) 최귀화 배우의 리액션이 큰 역할을 했다.

-시대극과 사극을 연이어 보여줬다. 차기작으로 염두에 둔 것이 있나.

=아직 구체적으로 정한 건 없지만 다음에는 현대물을 찍었으면 좋겠다. 사실 <그림자 살인>을 마친 후에도 똑같이 이야기했는데. (웃음) 인물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어가는 드라마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치열하게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배경에 상관없이 그런 리듬을 살릴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가서 봤던 성룡 영화들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앞으로도 영화관을 가는 게 즐거운 경험으로 기억될 수 있는 영화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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