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문구> 다카바타케 마사유키 지음 / 벤치워머스 펴냄
부제는 ‘매일매일 책상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일상 문구 카탈로그’. 자, 여기서 한 가지. ‘문구’라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무엇인가? 펜과 노트 정도라면, 동네 문구점(혹은 사무용품점)에 가서 가게 안을 한 바퀴 둘러보시라. 하나의 우주가 거기 있다. 책상 위에서 쓰고, 지우고, 자르고, 붙이고, 엮고, 재고, 정리하는 물건들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고 각각의 방식으로 신기하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업디자인을 배웠다는 다카바타케 마사유키는 <TV 챔피언>이라는 프로그램의 ‘전국 문구왕 선수권’에서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많은 문구 관련 책들이 실제로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라기보다 고가의 제품들을 소개하는 데 쏠려 있는 점이 아쉬워 직접 ‘일상의 문구’에 대해 책을 썼다. 그것이 바로 <궁극의 문구>. 20년째 ‘궁극의 천가방’, ‘궁극의 노트’, ‘궁극의 펜’을 찾아다니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 홀딱 빠질 것이다. 그야말로 ‘옆자리 그 사람이 너의 운명의 사람’ 이라 역설하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보는 기분이 들게 하니까.
한국과 일본의 회사와 가정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카시오 계산기에는 이런 한줄 설명이 있다. “계산기의 목적을 생각했을 때 결론은 이것밖에 없다.” 또한 물건의 쓰임새에 크게 집중해 서술한다. 칼과 가위 대목은, 그중에도 가위에 대한 글은 다카바타케가 가위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게 하는데, 관련 칼럼도 실려 있다. 제목은 ‘신발을 고르듯 가위를 고르자’. 자신에게 꼭 맞는 가위는 오랜 시간 사용해도 피로가 없어 자연스럽게 자르는 일이 즐거워진다고. 그리고 당연히 쓰임새에 따라 다른 가위가 필요한데, 종이를 자르는 가위는 비닐이나 천을 자르면 안 되고, 조금 비싸더라도 용도에 딱 맞는 가위를 골라야 한다. 주방용 가위는 트레킹 부츠에 비교할 수 있는데, 당연히 물에 씻어도 괜찮은 것이 좋다. 이렇게 여러 가위를 갖추기 귀찮다면 일반용 가위 하나, 즉 스니커즈 같은 가위를 하나 사면 된다. 한국에서도 널리 쓰인 톰보 모노 지우개는 가장 잘 지워져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상징성(지우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때문에 선택되었는데, 그래서 이를 소개하는 글은 이 제품에 대한 칭찬보다는 지우개라는 물건에 대한 소회를 담고 있다. 지우개의 소재는 고무가 아니라 플라스틱 염화비닐이다. 환경호르몬 의심 물질이 생산 단계에서 들어가는데, 문제는 현재로서는 충분한 안전성과 내구성이 보장된 대체 소재가 없다고. 오랜 시간에 걸친 애정이 쌓은 지식이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