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연예인 하페(데이비드 스트리에소브)가 스탠딩 토크쇼 도중 쓰러진다. 의사는 하페에게 석달간 무조건 쉬라는 진단을 내린다. 의사의 말대로 집에 틀어박힌 하페는 관객 없이 1인2역 쇼를 펼치거나 TV 에어로빅을 따라해보지만 무료함에 지쳐간다. 무엇보다 시시때때로 전화와 자동응답기가 울려대는 통에 도무지 쉬는 것 같지가 않다. 여느 날처럼 TV를 켜둔 채로 소파에 기댄 채 반쯤 잠이 든 하페는 꿈속인지, TV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를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는 ‘요즘 시대에 신을 찾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다음날 하페는 대뜸 <야고보 길 순례>라는 책을 매니저 도르테 앞에 선언하듯 던져놓는다. 그로부터 여정이 시작된다. 마치 앞날을 예견하는 것처럼 비가 쏟아지는 우중충한 날, 하페는 791km 순례길에 발을 내딛는다.
독일의 희극배우 하페 케르켈링이 2006년 발간한 산티아고 순례 체험기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여행자들이 겪을 법한 생생한 고생담이 공감을 유발하는 가운데, 1인칭 내레이션이 말 없는 여행자의 외로운 속내를 가까이 들려준다. 자기주장이 분명한 기자 레나, 어딘가 비밀스러운 스텔라 등 하페와 교류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곁들여지지만, 초점이 맞춰진 건 외로운 한 인간의 모습이다. 신을 찾는 여정과 자아를 찾는 과정이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구불구불한 모양의 길을 하나 더 만든다. 원래의 삶을 바꾸는 것에서 여행의 의미를 찾는 대신, 여행 그 자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