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아프고도 아름다운 디스토피아 <무국적소녀>
2016-07-20
글 : 윤혜지
<무국적 소녀>

미술학교 학생 아이(세이노 나나)는 교장으로부터 이상할 정도의 편애를 받고 있다. 그런 아이가 꼴보기 싫은 담임 교사와 같은 반 학생들은 아이를 괴롭힌다. 아이를 진심으로 살펴주는 것처럼 보이는 이는 양호 선생뿐이지만 그마저도 아이에게 모를 소리를 늘어놓기 일쑤다. 아이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으며 강당에서 홀로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아이가 그것을 완성했을 때 학교는 정체 모를 군인들에게 점령당한다. 아이는 마음속 깊이 감춰두었던 잔혹성을 발산하며 홀로 군인들에 맞서 싸운다.

<무국적소녀>는 2012년에 오시이 마모루가 심사위원을 맡았던 단편영화제 출품작 <동경 무국적 소녀>를 원안으로 한다. 당시 감독 야마기시 겐타로는 <동경 무국적 소녀>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오시이 마모루는 자신이 이전에 만든 실사영화들의 패착의 원인이 되곤 했던 과잉된 이미지와 현학적인 대사들을 깡그리 제거하여 <무국적소녀>를 미니멀한 하드보일드물로 완성했다. 다만 폭력과 섹슈얼리티의 묘사는 한층 과감해졌다. <무국적소녀>의 일부는 오시이 마모루의 전작들과도 연결된다. 세이노 나나가 열연한 소녀 병기 아이는 <공각기동대>(1995)의 쿠사나기 소령, <이노센스>(2004)의 소녀 로봇 ‘인형’들을 연상케 하는 캐릭터다. <공각기동대>에서 시도했던 인물들 사이의 의식의 감응은 <무국적소녀>에서 아이가 겪는 현실과 초현실 사이의 정신 감응으로 이어진다. <스카이 크롤러>(2008)에서 청년 세대의 무기력과 현실에 대한 체념을 가상의 군부대에 은유했던 태도도 그렇다. 물론 그렇다면 아이는 명백하게 <스카이 크롤러>의 ‘키르도레’의 후예일 것이다. 자연스레 오시이 마모루의 디스토피아는 더 우울한 지경까지 나아간다. 주인공 아이가 기대한 미래는 오지 않고 아이는 자신이 세계의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그 부품으로서의 소명을 마저 완수하기 위해 또 다른 싸움터로 행군한다. 그렇기에 후반부 15분의 롱테이크 혈투 시퀀스는 더욱 아프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디스토피아가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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