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커버스타] 새로움을 향해 정면 돌파 - <인천상륙작전> 이정재
2016-07-26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오계옥

“한 사람만 남게 되더라도 해야 할 일.” 1950년 9월15일의 인천상륙작전은 수세에 몰린 남한군에 그토록 절박한 임무였다. 7월27일 개봉하는 이재한 감독의 <인천상륙작전>은 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 건 한 사람의 뛰어난 전략뿐만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영화다. 더글러스 맥아더의 손과 발이 되어준 이름 모를 병사들, 이정재가 연기하는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는 그 수많은 무명의 영웅들 가운데 한명이다. 한때 공산주의에 빠져들었다가 전향한 소련 유학생 출신의 해군 대위는 전쟁의 흐름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그 향방이 이토록 궁금한 이유는 고전적인 느낌의 액션 히어로를 연기하는 이정재의 모습을 굉장히 오랜만에 본다는 자각 때문이기도 하다. <도둑들>부터 <암살>에 이르기까지 최근 몇년간 판세를 뒤흔드는 반전 있는 인물을 연기하며 주목받아온 이정재의 변화에 대해 그에게 직접 물었다.

7월12일 베이징, 13일 서울, 14일 다시 광저우…. 2016년 여름, 배우 이정재의 시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중국 톱스타 종한량과 함께 출연한 첫 중국영화 <경천대역전>이 15일 중국에서 개봉했고, 16일에는 출연작 <암살>이 일본 관객에게 첫 선을 보였다. 27일에는 영국 배우 리암 니슨과 호흡을 맞춘 한국영화 <인천상륙작전>이 한국 극장가에서 관객을 만난다. 다시 말해 올여름 성수기의 한·중·일 극장가에서 이정재의 세 얼굴을 목도할 수 있다. “어쩌다보니 7월에 세 나라에서 영화 한편씩 개봉하게 됐다. 최근에는 중국에 오래 머무르고 있다. 땅이 넓어서 무대인사를 두달 정도 다녀야 한다더라. 첫 중국영화라 신인배우의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이름은 잘 몰라도 얼굴은 금세 알아봐주시고, 중국 감독들은<신세계>(2012)의 배우로 나를 기억하더라.” 이렇게 배우 이정재의 2016년 여름은 익숙한 스포트라이트에 연연하기보다 미지의 가능성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 한철로 기억될 듯하다.

이재한 감독과 협업한 <인천상륙작전> 역시 이정재에겐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도전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맡은 역할이 극의 중심 서사를 이끌어간다는 점이 다르다. 최근 몇년간 이정재의 주요 필모그래피를 되짚어보자. <도둑들>(2012)의 뽀빠이와 <신세계>의 이자성, <관상>(2013)의 수양대군과 <암살>(2015)의 염석진. 동료가, 혹은 가족이 알아서는 안 되는 목표를 가슴속에 품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이들은 사건의 변방을 맴돌다가 적시에 판을 뒤집어엎거나 뒤흔드는 인물들이었다. 이런 작품들 속에서 이정재는 때로는 비열하고 때로는 흔들리는 모략가들의 초상을 섬세한 감정선으로 연기해왔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의 장학수는 다르다. 인천상륙작전의 승패가 달린 기뢰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북한군 중좌로 위장하고 적진 한복판으로 잠입해야 하는 소련 유학파 출신의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 역시 자신의 패를 감추어야 하는 사람은 맞지만 이 인물의 방점은 얼마나 패를 잘 숨기느냐보다 첩보 임무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완수하느냐에 있다. 그리고 장학수의 미션은 맥아더 장군(리암 니슨)의 전술과 더불어 <인천상륙작전>의 이야기를 지탱하는 거대한 두축 중 하나다. “접근방식이 많이 다르긴 하더라. <암살>을 할 땐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인천상륙작전>은 첩보부대를 이끄는 리더 역할이니 팀워크를 잘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배우와 금세 친해져야 할 것 같았고, 그들과의 친분을 통해 진짜 사나이들의 끈끈함을 만들고 호흡을 잘 맞추고 싶었다. 그리고 부대원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많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상의를 거쳐 앙상블을 만들어나갔다.” 그렇게 <인천상륙작전>은 한동안 특정 캐릭터의 개성을 만들고 다듬는 데 주목해온 이정재에게 ‘합’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 현장이었다.

영화 속 장학수에게는 특히 두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북한군 중좌 박남철로 위장한 장학수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인천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과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장학수를 움직이는 맥아더 장군이 그들이다. <태양은 없다>(1999)와 <오! 브라더스>(2003)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이범수와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난 리암 니슨의 존재감이 이정재에게는 적잖은 자극이 되었나보다. “림계진이 장학수의 정체를 알게 된 시점부터 범수씨가 소련의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림계진 입장에서는 총을 들고 뛰어와서 장학수를 쏴죽여도 시원찮을판에 갑자기 소련 노래를 부르는 거다. 시나리오상에 이미 나와 있던 장면이었지만 막상 범수씨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니 섬뜩하더라.”

리암 니슨과는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많지 않아 현장에서 하루 동안 호흡을 맞췄을 뿐이지만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헤어스타일을 반영한 가발을 직접 짜맞춰 쓰고 현장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했다고. “배우가 디테일한 부분까지 직접 준비해오는 모습을 보니, 내가 적당히 해서는 밸런스를 못 맞출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리암 니슨이 한국에서의 촬영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뒤 그가 촬영한 분량을 모은 현장편집본을 모두 봤다. 그리고 이재한 감독과 상의한 끝에 이미 촬영한 몇 장면을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다시 찍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인천상륙작전>의 제작진과 이정재가 지향하는 영화의 방향성은 “초반부터 지나치게 비장하지 않되 극의 긴장감을 조금 더 높이는” 것이 되었다. 이정재식 화법에 따르면 그건 배우에게 “연기의 온도를 높이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내가 현장에서 정말 많이 쓰는 표현이다. 연기의 온도를 내가 올려놓으면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 역시 그들의 온도를 자연스럽게 올린다. 지나친 무거움은 덜어내고, 긴장감을 높이는 게 중요했다.” 리암 니슨과의 짧고도 강렬했던 만남이 이정재에게 남긴 파장이다.

2016년 이후에도 이정재의 시간은 여전히 빠르게 흘러갈 예정이다.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마동석 등 멀티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김용화 감독의 차기작 <신과 함께>에 염라대왕으로 출연하고, 8월 말 즈음해서 촬영을 시작할 거라는 정윤철 감독의 신작 <대립군>의 대립군 리더로 낙점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피신한 선조를 대신해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의 사연을 다룬 <대립군>을 통해 “외모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다양한 스타일의 표현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이정재는 말한다. “작품을 거듭할 때마다 관객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지 고민이지만 그게 또 배우로서의 재미라면 재미다.” 더 이상의 새로운 모습을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라고 관객이 반문할 때 그 회의감을 보기 좋게 돌파하는 것이 연기의 묘미라면, 이 데뷔 23년차 배우가 관객에게 던지는 승부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까. 이정재가 열어젖힐 또 다른 ‘신세계’를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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