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하고 의로운 쾌남. 이민호가 연기한 <바운티 헌터스>(감독 신태라)의 이산은 그런 남자다. 평상시엔 세상만사 관심없다는 듯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도 일이 터지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제 영역을 지키려 하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동물 같은 남자다. 이산 곁에 형제처럼 붙어다니는 파트너 아요(종한량)가 실리에 빠르고 유들유들한 재간둥이라면, 이산은 정반대로 실리보단 의리가 먼저인 사람이다. 정의란 게 대체 뭔지, 그 정과 의 때문에 이산과 아요는 매번 고난의 수렁에 빠지고 만다. <바운티 헌터스>의 재미는 이산과 아요가 스스로 만든 고난으로부터 어떻게 기지를 발휘해 빠져나오는지를 지켜보는 데에 있다. 유쾌하고 시원한 첩보코미디영화 속의 매력적인 주인공 이산은 대중과 매체가 이민호라는 배우에게서 보고 싶어하는, 이민호의 매력과 장점을 최대한으로 끌어낸 캐릭터다. 이민호의 중국에서의 인기도 인기지만, 마침 맞은 적역이라서인지 지난 7월1일 중국에서 개봉한 <바운티 헌터스>는 한국 배우가 주연한 합작영화 중에선 유일하게 2억위안을 넘겨 흥행에 성공했다. 이민호에겐 두 번째 주연작이자 첫 번째 합작영화인 <바운티 헌터스>의 안정적인 성적은 분명 그에게도 어떤 환기가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더불어 30대를 맞이한 남자 배우로서도 그에게서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감지된다. 현재 중국뿐만 아니라 대만, 타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두루 뜨겁게 사랑받고 있는 남자, 이민호의 지금에 관해 물었다.
-한류 드라마를 넘어 영화배우로서 중국 영화시장 안에 안정적으로 진입했다.
=브랜드로서의 이민호가 얼마나 가치 있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이 된 것 같아 기쁘다. 연기파 배우보다는 한류 스타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이 약간은 부담이었다. 내가 영화배우로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은 것 같다.
-중국이 워낙 넓은 곳이라 현지 프로모션에 참석하러 다니는 것도 힘들었겠다.
=7~8년 동안 쭉 광고 행사를 돌아서 이제 행사 자체가 힘들진 않다. 다만 비행기를 많이 타는 건 가끔 힘들다. 갑갑해서 밴도 잘 못 타는데 비행기를 타면 밴에 타고 있는 기분이 든다. 비행 중 잠이 들면 감사한 거고 잠이 오지 않으면 괴롭다. (웃음)
-7월6일 국내 팬들을 위해 열었던 특별시사회에 나와 무대인사도 했다. 팬들을 성심껏 대하기로도 유명하다.
=의무감이나 강박은 아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가 내가 있는 곳 근처에 와 있다고 하면 잠깐 보러 나가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나. 지난해에 국내 작품을 했어야 하는데 <바운티 헌터스>를 찍게 돼 팬들이 오랫동안 작품을 기다렸을 거다. 그래서 국내 팬들에게 정식으로 <바운티 헌터스>를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극장도 집 근처여서 팬들 얼굴 보고 가려고 잠깐 들렀다.
-<바운티 헌터스>는 이민호에게 어울리는 최적의 시나리오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민호라는 배우의 모든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영화다. 좋은 체격을 잘 드러내는 액션도 근사하고, 이산은 이민호가 가장 익숙하게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작품을 고를 때는 나로부터 출발한다. 좋은 감독님, 좋은 대본도 중요하지만 내가 이전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작품을 해야 가장 자연스럽게 더 나은 스텝을 내딛을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전작인 <강남 1970>(2015)에서 무게감 있는 역할을 했으니 다음엔 유쾌하고, 내가 가진 고유한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중국 활동을 시작하면서 한·중 합작영화에도 관심이 갔다. 그렇지만 중국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역할보단 웃으면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때 마침 <바운티 헌터스>가 들어왔다.
-<강남 1970> 때도 따로 액션팀과 시간을 내 치밀하게 액션 연습을 했다. 액션 연기를 주특기로 살려보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다.
=배우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최적화된 특기를 만들고 싶을 거다. 액션 연기는 나를 더 남자답게 보이게 하고, 내 장점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액션만 보고 작품을 선택하진 않는다. 좋은 작품에 좋은 액션이 들어가 있는 것뿐이다. 우선 작품의 색깔과 의도를 고려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 안에서 내 캐릭터가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어떤 기능을 하는지다. <바운티 헌터스>의 액션 연기는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좀더 시원시원하게 해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현장에서 큰 사고로 번질 뻔한 일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메이킹 영상을 보니 공간도 협소하고 사람들도 많아 합을 맞추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과할 정도로 배려를 받았다. 격한 와이어 액션 같은건 감독님이 스턴트 배우와 미리 찍어두시기까지 했다. 자잘한 사고는 현장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라 신경쓰지 않는다. 당연히 생기는 일들이다.
-드라마 <시티헌터>(2011), <신의>(2012)에서도 사뭇 다른 방식의 액션을 선보였다. 지금도 충분하지만 더 도전해보고 싶은 액션 영역이 있나.
=<옹박: 무에타이의 후예>(2003) 같은 리얼 액션을 해보고 싶다. 너무 야망이 큰가? (웃음) 액션의 끝은 리얼 액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작품 들어가기 전에 2개월 정도 액션 연습을 하는데 그 정도로는 액션이 몸에 완전히 익지 않는다. 적어도 6개월에서 1년은 꾸준히 해야 제대로 익힐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정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가능하다면 액션 연기를 할 때도 끊어 찍지 않고 롱테이크로 한번에 모든 합을 찍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운동선수가 아니니까 스스로에게 그 정도까지 기대하진 않는다. (웃음)
-이산은 이민호가 지금까지 선보인 남성 캐릭터들의 종합판 같다. 무심한 듯 자상하고, 순정적이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정의로운 인물이다.
=시나리오에 캐릭터에 관해선 많이 비워둔 부분들이 있어서 일찍부터 감독님과 이산에 대해 얘길 많이 나누었다. 나는 이산이 영화 초반부에 캐릭터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길 바랐다. 캐릭터의 매력에 많이 의존하는 유형의 영화잖나.
-과연 첫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보디가드로 고용된 이산이 우람한 격투기 선수를 호위해야 하는데 그 선수가 여성 기자를 때리려고 하자 자신의 고용주인데도 격투기 선수를 때려눕힌다. 도의를 위해 실리를 버릴 수 있는 인물이란 예상이 됐다.
=이산이 엉뚱한 인물로 보일 수도 있는 그 장면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나사 풀린 듯 느슨해 보이지만 필요할 땐 확 변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잘 드러내준다. 사실 국내에서 촬영했어야 하는 장면인데 그 장면을 촬영하기 직전에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가느라 촬영이 미뤄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타이에 가서 찍었는데 그곳의 조명이나 높은 천장 등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훨씬 잘 살려서 다들 마음에 들어 했다. 전화위복으로 더 좋은 그림이 나왔다. (웃음)
-첫 합작영화인데 아쉬운 점도 있나.
=제작 환경상 세트 촬영이 80% 이상인 영화였다. 세트 안에서만 촬영한 것이 처음이었다. 나는 바람 부는 야외 촬영을 선호한다. 트여 있지 않은 공간은 답답하게 느껴진다. 로케이션지의 에너지를 받아서 일하는게 익숙했는데 잘 세팅된 환경에서 일하느라 상상으로 많은 걸 대체해야 하는 게 힘들었다. 드라이브 장면도 다 세트에서 찍고 합성했다.
-중화권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는 일은 어땠나. 문화적 차이를 느꼈나.
=언어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감독님과 스탭, 내가 한국인이었고 다른 네명의 주연배우가 중화권 배우였는데 타깃이 중화권이기 때문에 이 네명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들의 의견을 듣고 나서야 국내스탭의 의견을 반영했다. 현지화를 위해 조율해가는 방식이었다. 중화권에서 필요로 하는 연기 스타일이 있다면 우리와 다르다고 ‘누가 한국에서 그렇게 연기해?’라고 해선 안 된다. ‘그게 거기에선 재밌는 거야? 그럼 그걸 내 식으로 만들게’라는 자세가 필요했다. 한류 배우로서의 접근 방식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종한량과 당언은 이미 드라마 <마이 선샤인>(2015)을 통해 한 차례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그들과 함께 어울리기는 어렵지 않았나.
=과연 그 둘은 작품을 같이 해서 그런지 서로간에 어색함이 없더라. 나도 성격이 모나지 않아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랜 친구들처럼 셋이 장난치고 그랬다. 타이 촬영 때 나를 응원하는 타이 팬들이 현장에까지 몰려와서 중화권 배우들이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웃음) 당언은 여성스럽고 해맑은 사람이었다. 맑고 활기차다는 인상을 받았다. 종한량은 치밀하고 연기를 잘하고 내공이 깊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요 역 이전엔 코믹한 역할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해서 정말 놀랐다. 현장에 준비해오는 것도 많았고 시나리오를 놓고 둘이 얘길 나눌 때 항상 정확한 주관이 있었다. 둘이 붙는 장면이 많아서 얘길 많이 나눴는데 이산이 아요를 때리는 장면에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더 세게 때려달라”고 해서 놀랐다. (웃음) 현장에서 배우들은 누구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들 좋은 분위기로 촬영했고 그 감정들이 영화에도 재밌게 녹아든 것 같다.
-더빙을 입힌 것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낯설었는데 볼 수록 위화감이 안 느껴지더라.
=현장에선 초·중반까진 중국어로 연기했는데 뒤로 갈수록 한국어로 대사를 했다. (웃음) 목소리 비슷한 사람으로 더빙 배우를 구하려고 공을 많이 들였다. 원래는 직접 연기하려고 대사도 줄이고 중국어 공부도 많이 했는데 어설프게 연기하느니 더빙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막상 더빙을 입혀보니 이질감이 전혀 들지 않아서 놀랐다. 중국어 더빙된 것도 어울리는데 타이 광고에선 타이어로 더빙된 게 어울리더라. 어느 나라에 데려다놓아도 현지화가 쉽게 된다는 게 내 장점인 것 같다. (웃음)
-차기작은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이다. <별에서 온 그대>(2013)의 박지은 작가와 <닥터 이방인>(2014)의 진혁 PD가 손잡은 작품이기도 하고, 또다른 한류 스타 전지현의 출연으로 벌써부터 화제다.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 이야기에 바탕했다고.
=사기꾼 허준재를 연기하기 위해서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다. (웃음) 준재를 준비하는 데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다 쓰고 있다. 연기에 대해 아쉬웠던 부분도 힘껏 채우고 메우려고 하는데 준비 시간이 부족해서 얼마나 더 나아질지는 모르겠다. 전보다 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랜만의 드라마 복귀라 팬들도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사기꾼인만큼 다양한 모습이 있을 거다. 사기꾼다운 매력으로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는 훈련들을 하고 있다. 긍정적인 스트레스다.
-어느덧 서른이 됐다.
=별로 행복하지 않다. (웃음) 스물여섯살에 멈춰 있고 싶다. 소년도 남자도 아닌, 적당히 자유로울 수 있는 나이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걸 고려하게 된다. 안 그래도 자유롭지 못한 직업을 가졌는데. (웃음)
-20대의 이민호에게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가 있었다면, 30대에 접어든 지금은 훨씬 안정적인 무게가 느껴진다. 스스로는 그 변화를 어떻게 여기나.
=<꽃보다 남자>(2009)를 떠올리면 그땐 나의 야생적인 모습, 날것의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연기하는 동안 답답함도 없었고 내 멋대로 했던 작품이다. 그 뒤엔 상처가 있는 인물들을 연기하는 게 좋았다. 예민한 감성을 표현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서너 작품을 더 했고 <강남 1970> 때는 감정을 꽉 눌러서 인물을 표현했다. <바운티 헌터스>에서 다시 야생적으로 날뛰는 인물을 연기하게 되었는데 앞으로 30대의 내가 연기할 인물들은 그렇게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가공된 것이 아닌, 진짜 날것의 감정을 연기해보고 싶다. 욕심이 없으면 배우의 생명도 다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끝까지 눈이 살아 있는 배우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