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덕통사고]
[송경원의 덕통사고]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비롯한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에 생략된 체험의 시간
2016-08-17
글 : 송경원
<수어사이드 스쿼드>

추억의 명화를 다시 보는 것처럼 가끔 고전 게임을 꺼내 플레이한다. 잘 만든 게임은 몇번을 해도 질리지 않는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도 좋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랄까. 내겐 중학생 시절 감동과 눈물을 안겼던 <창세기전2>가 그런 게임이다. 며칠 전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와 할리퀸을 보고 문득 <창세기전2>의 흑태자가 생각났다. 기억에 남는 캐릭터란 무엇일까. 그게 순전히 캐릭터의 힘일까. 보석 같은 캐릭터들을 매번 학대하는 DC에 이 글을 부친다.

<창세기전2>의 흑태자(맨 왼쪽).

이제 슈퍼히어로영화가 지겹다. 정확히는 슈퍼히어로‘들’이 쇼케이스처럼 전시되는 영화에 지쳤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슬프게도 예고편으로 충분한 영화였다. 예고편만큼 착실하게 캐릭터를 소개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정작 본편에 와선 다채로운 캐릭터들을 어떻게 수습할지 몰라 방치해버린 인상이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최근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들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한다. 세계관 소개도 해야 하고, 후속작과의 연계도 설명해야 하고, 새로운 악당도 등장시켜야 하고, 벌여놓은 난장도 정리해야 한다. 가능하면 120분 안에 말이다. 사실 최근 프랜차이즈영화의 최대 제약은 제작비도, 캐스팅도, 연출도 아닌 상영시간이다.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설명해야 할 것들은 늘어만 간다. 비유나 수사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설명해야 할 것들’ 말이다.

캐릭터가 늘어나면 각자의 전사(前史)도 소개해야 한다. 최소한의 행동 동기 정도는 부여해야 하니까. 후속작과의 접점을 위해 일정 부분 상황도 연출해야 한다. 다소 뜬금없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등장 캐릭터를 줄일수도 없다. 요즘은 곧 죽어도 팀전이 대세니까. 결국 희생당하는 건 대체로 감정 신들이다. 예전엔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여러 차례 쌓아나갈 수 있었던 감정들을 최근엔 자판기에서 뽑아내듯 제시하고 넘어간다. 자, 여기 데드샷이 딸을 그리워하고 있어, 또는 드디어 악당들과 동병상련을 느끼고 한팀이 되어가고 있어. 그리고 끝. 설득의 시간 없이 설명과 정황 제시만 나열되다보니 당연히 캐릭터는 평편해지고 상황은 단순하게 흘러간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여기에 한술 더 떠 편집까지 정신이 없다. 어두운 분위기를 최대한 날릴 수 있게 키치한 느낌을 내려 한 건 이해하겠는데, 급조된 티가 역력하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제 몫의 색깔을 드러내는 건 조커, 할리퀸, 데드샷 정도인데, 좀 잔인하게 말하면 딱 그만큼 분량을 확보하고 있는 주연급 라인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나마 비슷한 분량을 할당받은 릭 플래그 대령이나 인첸트리스보다는 나은 편이니 선전했다고 해줘야 할까.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폐해를 좀더 명확히 이해하고 싶다면 여타 슈퍼히어로영화와의 계량적인 비교보다는 유사한 소재를 활용한 다른 서사 매체와의 질적 비교가 필요할 것 같다. 최근 슈퍼히어로영화들의 문제는 연출‘만’이 아니다. 태생적으로 영화가 캐릭터를 이해시키는 방식이 지닌 물리적 한계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롤플레이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판타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롤플레이 게임에는 최소 수십, 많게는 100명이 넘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게 다반사다. 인생 게임 중 하나인 <창세기전2>(1996년 발매)에도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아직도 국내 게임에 한정하자면 흑태자만큼 강렬한 기억을 남긴 캐릭터를 접하지 못했다. 다시 없을 만큼 감동적인 스토리여서? 그렇지 않다. 국내 창작 RPG의 선두 격이었던 건 분명하지만 사실 스토리는 여타 다른 RPG를 참고한 요소들이 많았고 딱 잘라 말하자면 최근 폄하의 의미로 자주 거론되는 신파에 가까운 전형적인 전개를 보인다. 그럼에도 이 게임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생동감 넘치는 건 단적으로 말하자면 캐릭터와 함께하는 체험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창세기전2>의 엔딩 장면.

대개 게임과 영화의 차이는 사용자의 능동적인 참여 여부, 즉 보는 것과 플레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두 매체의 설득 방식을 구분 짓는 것은 사용자가 게임에 참여하며 체험하는 압도적인 시간의 차이다. 흑태자를 플레이하며 겪는 크고 작은 모험, 레벨 업을 위해 투자한 시간들, 조금 더 나은 장비를 구해주려고 반복하는 작업들이 고스란히 캐릭터와 함께한 감정이입의 시간으로 전이된다. 여기에 약간의 감동코드와 말이 되는 사연들을 들려주면 애정이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창세기전2>의 스토리는 좋은 의미에서 전형적, 달리 말하면 언제나 먹히는 보편적인 감동이 있다. 엔딩곡 <안타리아 송>을 들으면 지금도 울컥한다. 다만 이 이야기를 고스란히 영화로 옮긴다면 장담컨대 그저 그런 판타지영화 중 하나에 머물고 말 것이다. 사연 자체가 감동적인지 아닌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캐릭터를 사용자의 마음속에 박아넣을 동력이 필요한데 게임의 경우 다른 어떤 요소보다 플레이 시간이 캐릭터를 설득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의미다. 이야기와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영화는 체험시간이 아닌 다른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캐릭터들은 분명 매력적이다. 할리퀸은 매 순간 걸어다니는 화보 같고, 조커는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로 색다른 광기를 발산한다. 귀를 사로잡는 O.S.T는 그때 그때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캐릭터들의 뒤를 받친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배우들의 연기와 화보집 같은 이미지에서 빚어지는 매력들이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는 되지만 설득과 공감을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캐릭터에 감정이입시킬 만한 장치들이 필요하건만 그 연결고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썩 괜찮은 화보집 내지는 뮤직비디오는 될 수 있어도 재밌는 영화가 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캐릭터에 꼭 사연팔이가 필요한 건 아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깊게 각인될 수도 있다. <포켓몬스터>에 꽂혀서 속초까지 원정을 가는 게 포켓몬들의 사연에 감화되어서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수집욕, 촌철살인의 유머, 압도적인 액션, 그것이 뭐가 됐건 상대의 가슴속에 깊은 인상을 남길 만한 한방이 있으면 된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선 캡틴 부메랑의 핑크 유니콘과 킬러 크록의 외모 자부심이 의외로 극장 밖을 나서면서까지 기억되는 웃음을 안겨줬다. 슬립 낫의 쿨한 퇴장도 좋았다. 잘 살린 캐릭터는 결국 구구절절한 사연팔이가 아니라 인상깊은 한방, 너와 나의 연결고리 안에서 생명을 유지한다. 무협지 주인공처럼 빤하디빤한 흑태자지만 아직도 <창세기전2>를 플레이할 때마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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