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액터/액트리스] 능숙한 듯 서툴게 - <올레> 신하균
2016-08-23
글 : 윤혜지
사진 : 오계옥

영화 2016 <올레> 2014 <빅매치> 2014 <순수의 시대> 2012 <런닝맨> 2012 <도둑들> 2011 <고지전> 2010 <페스티발> 2010 <퀴즈왕> 2008 <박쥐> 2008 <카페 느와르> 2007 <아들> 2007 <더 게임> 2006 <예의없는 것들> 2005 <웰컴 투 동막골> 2005 <친절한 금자씨> 2005 <박수칠 때 떠나라> 2004 <우리형> 2003 <지구를 지켜라!> 2003 <화성으로 간 사나이> 2002 <서프라이즈> 2002 <묻지마 패밀리> 2001 <복수는 나의 것> 2001 <킬러들의 수다> 2000 <반칙왕> 2000 <공동경비구역 JSA> 1999 <간첩 리철진> 1998 <기막힌 사내들>

드라마 2016 <피리부는 사나이> 2014 <미스터 백> 2013 <내 연애의 모든 것> 2011 <브레인> 2009 <위기일발 풍년빌라> 2003 <좋은 사람>

이토록 철없는 사내라니. <올레>에서 희망퇴직 권고를 받은 대기업 과장 중필은 표면적으로는 현실에 치인 40대 남성이고 내적으로는 첫사랑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소심한 남자다. 제주에서의 여행은 여전히 대학생에 머물러 있던 그 남자를 뜻밖에도 조금 철들게 한다. 중필은 아주 능숙하거나 아주 미숙했던 신하균의 인물들에게서 지금까지 본 적 없었던, 능숙함을 가장하고 있는 미숙한 캐릭터다. 그 어설픈 치유의 여정이 내향적인 사람 신하균에게도 약간의 바람을 불어넣은 것 같았다.

-피부가 많이 그을렸다. 체격도 좋아진 것 같은데.

=몇달 전부터 스킨스쿠버를 취미로 하고 있다. 운동은 체력 관리차 꾸준히 해왔는데 지금은 살찐 거다. (웃음) 바닷속에서 하도 놀았더니. 그동안 수중촬영이 있을 때마다 기본적인 훈련만 받았는데 친한 후배 김동욱씨가 같이하자고 권해서 지난해 <올레> 촬영 마치고 쉬는 동안 가을부터 시작했다. 무척 재미있다.

-박희순과의 친분 등 <올레>는 여러 가지로 편안한 영화라고 했다.

=(박)희순 선배님과 영화를 한 건 처음이다. 희순 선배님, (오)만석씨와 성향이 서로 비슷해서 편안하고 재미있게 촬영했다. 찍는 동안 실제 친구들 생각도 많이 났다. 내가 연기한 중필의 현재보단 과거의 기억에 크게 공감했다. 추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심하고 지질한 친구인데 내 옛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서툰 사람의 모습이라 마음이 쓰였다. 그런 모습이 나래(유다인)와의 제주도 만남에서 많이 드러난다. 일상에선 감추며 살다가 낯선 사람들 앞에서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게 좋더라. 욕도 많이 하고 목청도 높이는데 그게 인간답고 귀여워 보이기도 하잖나.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어릴 땐 나도 소극적인 편이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다.

-채두병 감독과는 <올레>로 어떤 얘기를 나눴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 천재 아니면 사기꾼이다. (웃음) 언변이 워낙 좋다. 무척이나 유쾌하지만 촬영할 땐 배우로서 뭔가 해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영화 다 끝나고 결론을 내렸다. 사기꾼은 아니구나. (웃음) 데뷔작인데도 굉장히 노련했다. 배우들에게 주는 디렉션도 아주 명확했다. 역시 연륜은 무시하지 못한다.

-제주도를 한 바퀴 돌잖나. 여행 간 기분을 만끽했겠다.

=실제로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데 제주도는 처음 여행 해본 거였다. 촬영도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여행 하기 딱 좋을 때였다. 숙소가 서귀포였는데 매일 천지연폭포 인근을 걸어다닐 수 있었다. 참 좋았다.

-현장에서 막걸리도 엄청 마셨다는 얘기가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 마신 거였다. 제주도 생막걸리가 너무 맛있어서 매일 밤 열심히 마셨다. (웃음) 제주 생막걸리는 단맛이 아예 없는데 그런 건 많이 마셔도 숙취가 없더라.

-촬영할 땐 보통 술을 참지 않나.

=난 안 그런다. (웃음) 영화할 때 그런 즐거움이라도 없으면 쓰겠나. 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술자리에서 편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얘길 나누는 동안 얻는 게 정말 많기 때문이다. 예민한 얘기들도 술술 넘어가잖나. 다들 내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많이 마시는 것처럼 오해들을 한다. (웃음) 주량?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힘들 땐 맥주 두잔만 마셔도 취하는데 좋을 땐… 해 뜰 때까지? (웃음)

-반면 최근의 드라마에선 뚜렷하고 전문적인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올봄 종영한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의 주성찬은 위기에 처해도 끝까지 대화로 일을 해결하려는 위기 협상가다.

=특별히 드라마틱한 캐릭터만 하려는 건 아니다.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어 하다보니 낯선 캐릭터를 자꾸 찾게 되는 것 같다. 나에게 섭외 제의가 들어오는 작품중 센 캐릭터가 많았을 뿐이다. 아주 일상적인 작품도 해보고 싶다. 선호도의 문제는 아니다. 아직 연이 닿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한편으론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쉽게 보여주지 못했던 소재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리부는 사나이>도 굉장히 신선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볼 땐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이 있단 말야?’라고 생각했는데 일반 대중은 잘 모르는 곳, 인질사건 등에 투입되는 전문 협상가들이 정말 있더라.

-말로 사람 심리를 좌우하는 재미가 있었을 것 같다. 참고한 게 있었나.

=연기에선 참고할 게 없었다. 다만 전문직이라 책 보고 공부는 조금 했다. 촬영 전에 미리 전문 협상가도 만나보고 그분들의 녹취본도 들어보고 그랬다. 막상 들어보면 그분들은 굉장히 자연스럽고 느린 대화를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긴박하지 않다. 사람 진을 빼는 화법을 쓴다. 천천히 시간을 끌면서 “네, 그렇죠, 이해합니다, 그래도 좀더 생각해보시죠” 이런 식이다.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지쳐 포기하도록 만드는 게 그들의 주요 전략이더라. 하지만 드라마다보니 스펙터클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던 탓에 극중 배역은 말로 상대를 제압하는 인물이 됐다.

-말과 긴밀하게 관련된 배역을 맡는 경우가 잦았다. <빅매치>의 에이스는 말로 최익호(이정재)를 조종하는 사람이었고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에선 국회의원이었다. <예의없는 것들>의 킬라는 혀가 짧아 돈을 모아 혀 수술을 받으려는 살수였다. 그리고 정작 배우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신기하네. (웃음) 20대엔 말이 너무 없었다. 낯가림이 워낙 심하기도 했고. 지금은 나이 들면서 많이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복수는 나의 것> 할 때는 박찬욱 감독님이 청각장애인 류 역에 원래 외국인 배우를 쓰려고 하셨는데 내가 워낙 말이 없어서 “하균이가 말이 없으니 잘하겠다”라고 농을 하시며 배역을 주셨다. (웃음)

-반면 <런닝맨> 같은 영화는 말보다 몸을 써야 하는 역할이다.

=이상하게 근래 몸 쓰는 영화가 들어온다. 정작 힘 좋고 팔팔할 땐 안 들어오더니. (웃음) 액션도 해보니 매력이 있더라. 더 나이들기 전에 계속 도전해보고 싶다.

-<순수의 시대>도 첫 사극 액션에 도전한 영화였다.

=그때는 사극도 처음이었다. 승마랑 무술도 배우고 참 재밌었다. 액션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가 신선하기도 했고.

-최근 부쩍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액션 배우나 육체파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개척하고 싶은 건가.

=전혀 아니다. (웃음) <순수의 시대>가 운동하게 된 계기가 된 건 맞다. 한해 한해 지나면서 체력이 너무 중요해졌다. 밤새워 일하는 것도 힘들어지고. 몸을 만들려고 운동하는 건 아닌데 덜 힘들기 위해 일부러 하고 있다. 허리도 안 좋았는데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며 많이 좋아졌다. 그러다 액션영화가 들어오면 도전해볼 수도 있겠지.

-일을 하지 않을 땐 주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나.

=운동하고 여행 갈 때를 제외하면 늘 집에 있는다. 여행을 취미 삼은 지도 오래되지 않았다. 서울에만 있으니 술만 마시게 되기에 지인들 사는 곳을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몇번 그러다보니 거기가 거기 같더라. 그래서 다이빙, 스킨스쿠버를 시작했는데 완전히 다른 세계를 알게 됐다. 요즘엔 시간 나면 바다 갈 생각만 하고 산다. 실력이 슬슬 늘고 있어서 좀더 멀리 이집트나 멕시코를 가볼 생각도 하고 있다. 머리 위로 잔잔하게 햇살이 비치고 혼자 물속에 있을 때면 내가 정말 작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느껴진다. 굉장히 고요하다. 내 숨소리밖에 안 들린다. 그러다 뭐가 나타날지 몰라서 기대되고 설레고 두렵기도 하다. 황홀하더라.

-얼마 안 있으면 데뷔 20주년이다. 소회가 어떤가.

=벌써 그렇게 됐나? (웃음) 이 정도 했으면 요만큼은 편해져야 하는데 늘 똑같은 지점에서 시작하는 기분이다. 시나리오 받아들 때의 그 막막한 기분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 두렵고 막연한 기분이 연기를 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내가 뭘 만나게 될지 모르는 것. 마음 비워두고 기다리는 게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바닷속에서 느끼는 거랑 같은 마음이다. 내가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고 끝이 안 보이는 심연도 만나고 환하고 아름다울 때도 있고. 연기하는 일은 바닷속에 홀로 남겨져 있을 때와 닮아 있는 것 같다.

-지금, 40대의 신하균은 어떤 꿈을 꾸고 있나.

=그냥 연기를 계속하고 싶다. 기력이 쇠할 때까지 연기를 쭉 해나가고 싶다. 차기작? 아직 결정한 작품이 없다. 새로움을 느끼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작품이 계속 내게 와줬으면 좋겠다.

<올레>

소년에서 벗어나기

<올레>의 여정 중 중필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훌쩍 뛰어넘는다. 진취적이고 영리한 여자 나래와 한라봉 농장 체험을 마친 뒤 뜻하지 않게 키스를 하게 된 것. “어설프게 스킨십을 시도하다가 어영부영 넘어가는 게 재밌더라. 그렇게 찍힐 줄은 몰랐는데. (웃음) 그 장면에서 아마 중필은 많이 변했을 거다.” 제주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탐스럽게 익은 한라봉처럼, 소년에 머물러 있던 중필의 마음도 갑자기 훌쩍 자라버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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