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드림 캐처
2016-08-24
글 : 김혜리

<스타워즈> 시리즈 6편까지 드로이드 R2-D2를 연기한 배우 케니 베이커가 지난 8월13일 타계했다. <스타워즈> 팬들만 알아보는 스타였던 베이커의 사진을, 처음으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보드빌 극장 출신 배우 베이커는 낙천적이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한다. “케니는 R2-D2의 심장이자 영혼”이라는 조지 루카스의 말은, 바지런한 해결사 R2-D2의 성품이 누구에게 빚졌는지 말한다. 드로이드의 외형 안에 인간 배우가 들어 있지 않았더래도, 우리는 R2-D2와 C-3PO에게 지금만큼 따뜻한 애착을 키울 수 있었을까?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08/07

한편 한편 짚어보니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소피(루비 반힐)는 <칼라 퍼플>의 셀리(우피 골드버그) 이래, 스필버그 장편영화의 첫 번째 여성주인공이다. 스필버그 감독은 <인사이드 아웃>과 유사한 노선으로 소녀를 그린다. 영화가 상투적인 젠더 묘사를 벗어나는 길은 두 가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하나는 모성과 성적 매력에 국한되지 않는 여성성을 문제 해결 과정에 적극 끌어들이는 길. 다른 하나는 성별을 대단한 조건으로 부각시키지 않는 길이다. 헤로인이 열살 남짓한 소녀인 <인사이드 아웃>과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자연히 후자를 택한다. 소피의 외양은- 버킹엄 궁전에서 단장하기 전까지는- 관습적 의미의 ‘여자아이다움’을 의식적으로 비껴간다. 더벅머리에 자루 같은 잠옷 차림을 한 소피는, 영화 속 고아 소녀 하면 떠오르는 <애니>의 귀염둥이 셜리 템플과는 딴판이다. 레이스와 리본 대신 안경, 인형 대신 책을 껴안고 있는 소피는, 남자아이들도 스스럼없이 동일시할 수 있는 중성적인 이미지를 가졌다. 착한 거인(마크 라일런스)의 집에서 옷을 더럽힌 소피는 갈아입을 옷으로 거인의 옛날 친구였던 소년이 남긴 병정 재킷을 선택하기도 한다. 한편 영화가 그리는 고아 소피의 소망은, 다정한 부모가 아니라 혼자 조용히 독서할 수 있는 독방과 친구다. 소피는 순종적이거나 수줍음을 타지 않는다. “비 에에프 지이이!”(Big Friendly Giant!)라고 새된 목소리로 연신 거인을 재촉하고 계획 있냐고 다그치는 소피는,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잠깐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부류의 어린이다. 거인과 소피가 같이 꿈을 채집하러 가는 계기도 원작과 반대로 소녀가 졸라서다. 어른의 짜증을 겁내지 않는 이 소녀는 부모를 그리는 눈물로 동정을 부르기는 고사하고 패기 왕성한 속사포 질문을 쏟아낸다. 거인이 첫손에 꼽는 소녀의 미덕은 무엇보다 용기다.(“Brave Sophie!”)

08/12

<마이 리틀 자이언트>를 두 번째 봤다. 결말이 골치다. 영화의 반쯤 열린 엔딩은 원작보다 덜 ‘해피’하다. 로알드 달은 아홉명의 식인 거인을 물리친 착한 거인과 소피가 런던의 나란히 붙은 집에서 생활하게 만들었지만, 스필버그는 소피와 거인을 각기 본래 속한 세계로 돌려보낸다. 에필로그에서 언뜻 소피는 여왕의 비서인 메리(레베카 홀)와 집사 팁스에게 입양된 것처럼 보인다. 메리는 이마에 키스하는 엄마 같은 행위로 소녀를 깨우고, 소피의 침실은 메리와 팁스의 일터인 버킹엄 궁전의 한 방이다. 그런데 이 에필로그에는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 소피의 내레이션은 양부모를 얻은 꽤나 중요한 사건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관객이 설명 없이 가족의 탄생을 추측하기 충분한 감정적 복선도 제공된 바 없다. 메리와 팁스가 커플이라는 사실도 명시되지 않았다. 이 장면에는 의도된 허황됨 같은 것이 있다. 그렇다면 혹시 지금까지 우리가 본 영화가 왕실에서 근무하는 부부의 아이가 밤새 본 꿈인 걸까? 하지만 카메라는 소피의 방 한쪽에 놓여 있는 거인의 꿈 항아리를 강조한다. 차라리 다음과 같은 해석은 어떨까? <마이 리틀 자이언트>의 3분의 2 지점에는 거인이 한 차례 소피를 고아원에 돌려보내는, 원작에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거인은, 다른 동료들이 소피의 냄새를 맡은 걸 알자 이별을 결심한다. 장면이 컷 되면 소피는 고아원 현관 앞에서 홀로 눈을 뜬다. 그때까지의 모험은 외로운 책벌레의 꿈이었나, 한 차례 관객이 의심할 만한 지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는 새롭게 출발한다. 소녀는 거인의 실존을 믿는다는 의사를 표하기 위해 테라스에서 과감히 몸을 던지고 어디선가 등장한 거인의 손이 그녀를 받아내면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따라서 우리는 고아원으로부터 거인이 소피를 납치한 사건부터 이 장면까지를 불면증으로 숙면한 적이 없는 소녀에게 처음 찾아온 꿈으로, 여기부터 거인이 격퇴되는 3장의 끝까지를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매듭지으려는 소녀가 의지를 갖고 다시 잠을 청해 이어가는 꿈으로 정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딘가 붕 뜬 에필로그는, 입양된 집에서 깨어난 소녀가 긴 꿈의 여운에 비춰 마주하는 현실의 다른 이미지일 수 있다. 부모에게 꿈에서 만난 친절한 어른들의 모습을, 평범한 유리병에 꿈 항아리를 투사하는 것이다.

08/13

꿈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마이 리틀 자이언트>에는 다양한 층위의 꿈이 수없이 등장한다. 그중 꿈도 아니면서 가장 ‘꿈 같은’ 대목이 있다. 영국 여왕에게 초대받은 거인과 소피가 버킹엄 궁전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긴 시퀀스다. 친구와 동료에게 여태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고 따돌림당했던 소피와 거인에게 세상은 갑자기 친절해진다. 여왕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소피의 뜻을 흔쾌히 따르고, 궁전의 모든 사람들은 거인을 존중한다. 이 성대한 조찬을 구경하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는 까맣게 잊었던 어린 시절의 판타지가 하나씩 깨어났다. 고독한 어른과 말 통하는 단짝 되기, 훌륭한 일을 해내 아빠와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하기, 좋아하는 디저트부터 먹기, 나만 아는 비밀을 어른들에게 깨우쳐주기. 요컨대 아이들에게 가장 신나는 꿈은 사탕과 장난감을 잔뜩 갖는 것이 아니라 멋진 모습으로 어른들을 감탄시키는 것이다. 세상이 내 의견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공헌할 기회를 준다면, 어른들이 내가 좋아하는 별난 친구를 인정해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네 친구 굉장하구나!”라고 여왕의 집사가 허리를 굽혀 속삭일 때 100만 와트의 자랑스러움으로 빛나는 소피의 얼굴은 이 시퀀스 전체의 심장이다. 더불어, 궁전의 아침식사는 앞서 거인이 런던의 한 소년에게 선사한 꿈의 확장판이기도 하다. 꿈속에서 소년은, 어리둥절한 아빠가 바꿔준 미국 대통령의 전화를 받아 의기양양하게 자문을 해준다. 그렇다면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다른 꿈들을 어떤 방식으로 스크린에서 보여주는가? 극중에서 꿈으로 규정된 꿈 가운데 현실과 동등한 리얼리티를 갖고 온전히 재현된 것은, 거인이 소피의 위험한 탈출을 막기 위해 불어넣은 짧은 꿈이 유일하다. 반면 스필버그는 여왕과 나쁜 거인들이 꾸는 학살과 심판에 관한 악몽을 전혀 이미지로 재현하지 않는다. 전체 관람가 등급의 가족영화이니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쉰들러 리스트> <우주전쟁> <링컨>에서 기어코 시체들의 산과 강을 카메라에 담았던 단호함의 이면으로 보이기도 한다.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소피와 거인이 서로의 세계를 여행하고 제자리로 귀환한다는 점에서 이중의 <E.T.>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설령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소피의 말이 거인의 귀에 닿을 거라는 약속도 <E.T.>의 그것과 닮았다. 외계에서 온 지혜로운 과학자 E.T를, 핍박을 뚫고 승천해 인간의 간구를 들어주는 예수의 알레고리로 본 관객은 다정한 거인에게도 같은 상징을 씌울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소피는 한순간 외친다. “난 거인을 믿어요!” (I believe in the BFG!) 내게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스필버그가 몇년에 한번 기분전환 삼아 선보이는 가족영화가 아니라, 흔히 그의 상호 분리된 영역으로 알려진 가족 엔터테인먼트, 교훈극, 사실주의 드라마, SF 판타지를 부드럽게 아우른 합명제로 기억될 것 같다.

p.s. 나는 모든 스필버그 영화의 원경에서 쏟아져 나오는 하얀 빛이 무엇인지 답을 구할 수 없었다. 스필버그의 서른 번째 장편을 보고 난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다만, 그 백광의 부챗살은 극장 영사기의 빛과 무척 닮았다.

<플로렌스>

좋 아 요

휴네상스(Hugh-naissance)

부유한 여성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메릴 스트립)는 음악을 세상 무엇보다 사랑해서 무대에서 노래할 때 행복하지만 본인이 음치임을 모른다. 남편 세인트클레어 메이필드(휴 그랜트)는 플로렌스를 악평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는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필하는 총신처럼, 호의적 청중으로 객석을 채우고 기자를 매수하고 손가락질을 감수한다. 한편 그에겐 침대를 같이 쓰는 연인이 따로 있다. 세인트클레어는 남들처럼 부자 아내를 이용하는 것일까? 답은 단순치 않다. 어긋난 음정으로 열창하는 아내에게 보내는 남자의 따뜻한 미소는 진심이다. 아내를 조롱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그는 한 마리 분노한 불도그로 변한다. 휴 그랜트는 뻔해 보이지만 복잡한 이 캐릭터를 허비하지 않고 커리어의 반전이 될 연기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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