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추석 합본호 특집은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 대동여지도>와 김지운 감독의 <밀정>이다. 9월7일 같은 날 맞붙는 두 영화는 두 감독 각각 <전설의 주먹>(2013)과 <라스트 스탠드>(2013) 이후 3년 만의 연출작이라는 것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서로 다른 스타일만큼이나 그 결과가 궁금하다. 다루는 시대도 다르고 배우들의 면면도 다르다. 각각 CJ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워너브러더스코리아에서 만들었다는 시스템의 차이도 궁금하다. 일단 두 영화 모두 저마다의 장단점을 곱씹으며 흥미롭게 봤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첫 장면부터 김정호(차승원)가 ‘소속 없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언제나처럼 강우석 감독 특유의 장점을 발휘할 만한 캐릭터다. 그 계기가 되는 사건도 바로, 영화 속에서 민초들이 나라에서 발급한 지도가 잘못되어 비참한 죽음에 이른 일이다. 강우석 감독이 처음 만든 사극이긴 하지만 시스템의 부재로 인한 사건들로 점철된 최근 한국 상업영화들의 트렌드도 따른다.
<터널>에서도 잘못된 설계도로 인해 구조작업이 난항을 겪는 순간이 있었던 것처럼, 잘못된 지도가 김정호를 전국 방방곡곡 떠돌게 만든다. 그런 평범한 ‘지도 덕후’가 자기 뜻과 무관하게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나 정서의 흐름 자체는 예측 가능하나, 한때 충무로 대중영화의 겉과 속을 이끌었던 강우석 감독의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을 그냥 잘하련다’는 뚝심이 보였다. 더불어 감독은 김정호를 예술가와 기술자 사이에서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궁금했다. 한살 터울의 이준익 감독과 더불어 한국영화계의 최고령(?) 현역 감독으로 활동하는 그 또한 마주한 고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김정호를 예술가로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에서 김정호가 바우(김인권)를 향해 “예술가가 되긴 글렀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슬쩍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영화계에서 오래도록 그와 함께해온 수많은 김정호(들)에 대한 헌사라는 생각도 들었다.
<밀정>은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위기에 처한 인물들을 따르는 호흡이 좋았다. 그것은 전적으로 송강호라는 배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반칙왕>(2000)으로부터 15년도 더 지나 김지운과 송강호가 ‘첩보왕’으로 돌아왔다고 표현하면 어떨까. 또 다른 노스탤지어를 얘기하자면, <밀정>의 의열단장 정채산을 연기한 이병헌과 그가 회유하려는 조선인 일본 고등경찰 이정출을 연기한 송강호를 보면서 <공동경비구역 JSA>(2000)도 떠올랐다. 그때도 이수혁 병장 역의 이병헌이 ‘남한으로 넘어가자’며 북한군 오경필 중사 역의 송강호를 회유했었다. 물론 그에 화가 난 송강호가 ‘쪼꼬파이’를 한입에 삼키며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이번에는 그 회유가 성공했을지 지켜보시라. 아무튼 김지운 감독 특유의 장르 여행은 이번에도 변함없는데, 그의 영화 중 이처럼 여러모로 ‘끈끈한’ 정서는 실로 오랜만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모처럼 돌아온 강우석 감독과 장편영화로 보자면 <악마를 보았다>(2010) 이후 진정 오랜만에 충무로로 귀환한 김지운 감독 모두 반가웠다. 끝으로, 두 주연배우 송강호와 차승원을 보면서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도 떠올랐다. 만재도의 차승원과 유해진은 야심한 시각,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송)강호 선배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라며 입을 모았었다. 아마도 추석이라 그런 훈훈한 장면도 떠올랐으리라. 유독 긴 연휴의 올 추석, 다들 편히 쉬고 힘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