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액터/액트리스] “나도 양미경도 사랑이 많은 사람” - <범죄의 여왕> 박지영
2016-09-06
글 : 윤혜지
사진 : 손홍주 (사진부장)

“한번 해보자는 거지?” <범죄의 여왕>(감독 이요섭)의 양미경(박지영)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상대가 누구든 일단 붙고 보는 여자다. 수상한 사내들 사이에 태연히 앉아 수도요금을 흥정하거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이웃 여자를 위해 그 남편 목에 (불법 미용 시술용) 주사기를 들이미는 일도 양미경에겐 별스런 일이 아니다. 촉 좋고 의리 있는 양미경은 사실, 그를 연기한 박지영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덧씌운 인물이다. 에어컨 바람이 곧장 오는 자리에 앉아 있는 영화 홍보팀 직원에게 “어머, 너 왜 그러고 앉아 있니?”라며 서둘러 다른 자리를 마련해주거나, 테이블에 놓인 기자의 립밤을 두고 “이 제품 쓰는 사람 처음 봤다”고 아는 체하며 어디서 샀는지, 언제부터 썼는지를 묻는 모양만 봐도 “항상 옆에 있는 사람들 사정이 신경 쓰여 죽겠다”는 박지영의 ‘오지라퍼 기질’이 그대로 드러난다. 현재는 가족과 베트남에서 12년째 거주하며 “인간 박지영의 삶도 재미나게” 꾸려가고 있는 그를 만나 양미경의 다채로운 면면에 관해 물었다.

-이요섭 감독으로부터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무슨 생각을 했나.

=난 내가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줄 알았지. 너무 좋은데? (웃음) 시나리오를 단숨에 두번이나 읽고 다른 캐스팅은 볼 것도 없이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설레서 잠도 오지 않더라. 영화 속 내 얼굴이 어떻게 보일지 너무 선명하게 그려졌다. 감독님 만나러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갔는데 감독님이 ‘아, 양미경이다!’ 생각했단다. 촉 좋은 사람들끼리 만난 거지. (웃음)

-지금 보니 양미경은 그대로 박지영의 현신 같다. 오만 데 관심이 많은 긍정적인 ‘오지라퍼’다.

=제대로 봤어. (웃음) 나중에 가족들이 영화 보고선 “언니, 완전히 언니 표정이 그대로 나오더라”, “엄마, 감독님은 엄마가 실제로 저런 사람인 거 어떻게 알았어?” 이런 말들도 해줬다.

-화려한 외모 때문인지 최근작인 <하녀> <후궁: 제왕의 첩> <성난 변호사> 등에선 세속적인 욕망으로 들끓는 강한 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래서 양미경처럼 사랑스러운 ‘아줌마’ 역할이 의외였다.

=나를 소진하지 않으려고, 연기에 실제 내 모습을 너무 담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한 부분이었다. 그 완급 조절의 과정이 물론 고통스럽기도 했다. 일을 너무 하고 싶었으니까 들어오는 작품마다 덥석 물고 싶었고, 작품을 많이 안 하면 잊혀질까봐 불안한 시간도 보냈다. 양미경은 그 길을 잘 견뎌온 보답인 것 같다.

-양미경이 아파트의 각 인물들과 관계맺는 방식이 재미있다. 개태(조복래)에겐 갑자기 인생에 훅 들어온 이상한 엄마이자 여자, 덕구(백수장)에겐 따뜻한 누나, 진숙(이솜)에겐 동지 같은 언니다.

=양미경이 사랑이 많은 사람이란 점도 나랑 닮았다. 나도 후배들과 잘 지내려 하고 여러 사람 일에 관심이 많거든. (웃음) 일을 같이 하기로 하면 일단 마음을 많이 열어두고 시작하려고 한다. 내가 경력이 많다보니 후배들이 처음에 날 무척 조심스러워했다더라. 그런데 오히려 그들 덕분에 내가 훨씬 값진 경험을 했다. 하준 역의 허정도를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2015)에서 좋게 봤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무척 재밌게 준비를 하더라. 혼자 펄쩍펄쩍 뛰면서, 피티체조하고 소리 막 지르면서 감정을 잡는데 신기했다.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싶었지. 우리 (백)수장이는 또 얼마나 특이한지. 이런 애가 어디서 왔나 싶더라.

-양미경은 수평적 연대의 가능성을 품은 캐릭터다. 캐릭터의 여성성이 긍정적으로 드러났다.

=내가 딸만 둘을 키우다보니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인 것 같다. 딸 가진 엄마들은 대개 자기 딸들을 강하고 독립적으로 키우게 된다. 나도 방송일을 오래 해서 그런지 (나쁜 의미로) 마초 같은 분위기를 싫어해서 미경을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누구든 그 사람 자체로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연기했다.

-미경은 누구에게나 반말을 하고 매번 통성명을 한다. 자기가 반말을 쓰니 누가 자기에게 반말하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실제로 내가 그렇거든. 금방 오빠, 언니 하면서 반말을 쓴다. (웃음) “나는 양미경이야”라는 대사는 내 아이디어였다. 자기 이름을 당당히 말할 땐 그 사람이 스스로를 얼마나 긍정하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양미경이 이름을 말하니까 상대방도 자기 이름을 말할 수 있게 된다. 통성명으로 모든 게 평정된달까.

-붉은 톤의 다채로운 의상에서도 캐릭터가 잘 드러난다.

=사실은 하이힐도 잘 못 신는데 양미경이 힐 신고 뛰기까지 하는 여자라 익숙해지려고 집 안에서까지 구두를 신고 다녔다. 한달 내내 뒤꿈치에 밴드를 붙이고 살았다. 처음에 감독님이랑 지지연 의상감독이 우리 집에 와서 30벌쯤 놓고 같이 상의했다. 익수(김대현)하고 졸업사진 찍는 장면에서 입은 옷도 실제 내 옷이다. 예전에 입었던 옷 중에 가슴이 좀 드러나는 옷을 찾아서 입었는데 캐릭터랑 어울리더라고. 워낙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여자다보니 그런 과시적인 룩도 괜찮아 보였다. “내가 워낙 얼굴이 화려하니까 나 아니면 소화 못한다. 그러니 모든 신을 멜로로 만들잖아”라고 농담도 했거든. (웃음)

-어쩐지 개태랑 연애할 것 같은 느낌도 있다. 개태에게 “내가 엄마 해줄게”라고 했지만 개태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닐 것 같은데.

=개태한테는 엄마란 존재도, 여자란 존재도 미지수다. 로맨스를 염두에 두고 연기하진 않았다. 그냥 몸이 자꾸 걔한테 가던데? (웃음) 개태는 겁이 많아서 툭 던져놓고 지레 놀라 뒤로 한 발짝 물러나는 친구다. 그러니 내가 다가가고, 다가가고…. 걔가 무슨 말을 해도 노호혼처럼 그냥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실제로 난 섹시한 면이 별로 없는 인간이다. 귀여운 사람인데? (웃음) 삶의 모토도 ‘귀여움’이고 스쿨룩도 자주 입는다. 섹시하다는 인상은 상대방과의 교감에서 오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드라마 <꼭지>의) 명태(원빈), 개태…. 거친 것들이 나하고 어울리나봐? 요즘 인터뷰마다 배성우, 마동석과 연기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닌다. (웃음)

-스핀오프로 양미경의 다른 이야기도 보고 싶어진다.

=이대로 7년 뒤에 다시 찍어도 재밌을 것 같다. “저예산 영화라 시리즈가 힘들면 내가 더 벌어서 투자할게!” 그랬다니까. (웃음) 하준이 출소하고 익수는 뭔가 돼 있고 개태와는 셜록과 왓슨이 되거나 개같이 싸우고 있을 수도 있겠지.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지금은 드라마 <질투의 화신>과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에 출연 중이다.

=걱정된다. 내가 원래 한번에 여러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공교롭게 편성이 그렇게 됐다. <질투의 화신> 서숙향 작가랑은 <로맨스 타운>(2011)을 같이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엔 내가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를 줘서 재밌게 연기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오래전부터 얘기 중인 드라마가 있다. 친한 작가가 하는 작품이라 대본도 안 나왔는데 무조건 오케이해뒀다. 나는 여전히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매번 흥분된 마음으로 다음을 기다린다. 옆을 너무 돌아보는 스타일이라, 단숨에 치고 나아가진 못 하지만 100이 아니더라도 70, 80으로 쭉 가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배우로 산 시간보다 인간 박지영으로 산 시간이 훨씬 많은 사람이다. 아내이자 엄마라는 역할, 큰딸의 역할, 큰며느리의 역할 모두 잘해내고 싶다.

영화 2016 <범죄의 여왕> 2015 단편 <외계인이다> 2015 <성난 변호사> 2012 <후궁: 제왕의 첩> 2010 <하녀> 2009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2007 <우아한 세계> 드라마 2016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 2016 <질투의 화신> 2014 <천국의 눈물> 2013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 2011 <로맨스 타운> 2010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2004 <토지> 2004 <소풍가는 여자> 2003 <베스트극장-늪> 2001 <동양극장> 2000 <꼭지> 1995 <장녹수> 1993 <오박사네 사람들> 1991 <유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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