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씨네인터뷰] “공동체가 나눌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가고 싶다” - <신과 함께> 김용화 감독, <씨네21>과 함께하는 ‘SF•판타지 시나리오 공모 대전’과 덱스터스튜디오의 미래
2016-09-08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지난 5월 덱스터스튜디오는 경기도 파주에서 상암동으로 사옥을 옮겼다. 경기도 일산에서 파주로 옮긴 데 이은 두 번째 이전이다. 상암에 입주한 방송, 영상 미디어 등 거래 업체들과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는 목적과 함께 상장 이후 부쩍 늘어난 직원들이 보다 쾌적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상암동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DDMC)의 18층과 19층 공간에는 덱스터스튜디오의 VFX(시각효과) 작업실과 콘텐츠 사업팀, 시사실, 직원 편의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마침 <신과 함께> 촬영 중 잠깐 사무실에 들른 김용화 감독을 찾았다. 촬영 진행 상황과 더불어, 덱스터스튜디오와 <씨네21>이 함께하는 ‘제1회 SF•판타지 시나리오 공모대전’(9월19일~10월7일)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SF•판타지 분야의 불모지인 한국영화계에 장르 다변화를 꾀하자는 목적으로 마련된 이번 공모전은 VFX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 개발로 확장을 꾀하는 덱스터스튜디오의 야심찬 비전을 보여주는 시도다.

-지난 5월 말 <신과 함께>가 크랭크인했다. 한창 촬영이 진행 중이다.

=1/3 정도 찍었다. 촬영 준비할 게 있어서 이틀간 서울 사무실에 출근했고 다시 부산으로 간다. 하정우, 차태현이 신선한 조합이라 생각했는데, 찍어보니 역시 둘의 시너지가 너무 좋다. 작품에 대한 배우들의 해석도 좋다. 이번엔 배우들 덕도 좀 봐야겠다. (웃음) 특수효과팀과도 공조가 잘되고 있다. 내가 VFX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다른 감독보다 분명 이해도는 높다고 본다. 그런데 이번엔 오히려 그건 부수적인 것, 영화 자체를 도울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 쓸 때도 인물들에게 집중했다. 인물관계나 갈등을 어떻게 쌓아가느냐가 관건이라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그 부분에 최대한 집중했다. 이 영화만큼은 나의 필모그래피에서, 감독 김용화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 욕심이 있다.

-시각효과 분량이 상당한 작품이라 모션컨트롤카메라, 크레인, 리프트, 그립 장비 등이 즐비한 현장이라고 들었다. 원동연 대표(공동 제작사인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에게 현장 공개를 요청하니 블루 스크린밖에 없어서 와도 가늠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

=블루 스크린에서 촬영하니 촬영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촬영을 하고 있다. (웃음) 기술력으로 모든 것을 바꿔내야 한다. 덱스터스튜디오가 <미스터 고>(2013)를 통해 살아 있는 생명체, 크리처에 대한 기술력을 입증했다면 이제는 근접 매트를 구현하는 것이 과제다. 그곳에 가지 않고도 관객이 공간의 질감을 느낄 수 있게 라이팅을 해주는 것이다. 관객에게 작품 속 일곱 지옥을 생생히 경험하게 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다들 덱스터스튜디오가 참여한다니 배경이나 크리처에 대한 기대가 높다. VFX라는 태그를 숙명적으로 달고 있는 영화니 극장에서 보면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게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연출작으로 따지자면 <신과 함께>는 <미스터 고> 다음 작품에 자리한다. 연출자로서 전작의 흥행 부진에서 오는 압박감도 이번 작품의 연출에 반영되었을 것 같다.

=물론 기획적인 측면에서 볼 때 <미스터 고>는 내가 오만했단 생각이 든다. 반성을 충분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스터 고>에는 오히려 감사하다. 외형적으론 철저히 대중의 외면을 받았지만 회사는 그 영화를 경험하며 기술력을 10년 당겨왔다. 지금의 이 회사도 <미스터 고>가 이룬 기술적 성과를 통해서 만든 거다. 덕분에 중국쪽에서 꾸준히 일이 들어오고, 상장도 했다. 이 영화가 종국에 내가 죽을 때 어떤 의미로 자리 잡을지 무척 궁금하다. 나로서는 아직 내가 보여줄 것 들을 시작도 안 한 상태다.

-지난 몇년간 감독이자 덱스터스튜디오의 대표로서 고민도 깊어졌을 것 같다.

=요즘은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연출자의 자존심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는 선에서 어린아이부터 노년층까지 볼 수 있는 영화에 대해 고민한다. 이런 고민에서 나온 작품들이, 자신이 만들고 싶은 대로 타협하지 않고 만들어 소수에게만 사랑받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일까. 소위 말하는 대중적인 영화도 이야기의 완성도, 감정적인 이해, 기술적인 완성도가 어느 정도는 보장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영화는 여전히 놀랍다. 거대 자본의 할리우드나 중국의 시각에서 보자면, 최동훈 감독의 <암살>(2015)처럼 한국영화계 안에서는 큰 규모의 영화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리 크지 않은 예산을 가지고 만드는 영화들이 대중에게 사랑받게 만들었다는 게 매번 놀라울 것이다.

-덱스터스튜디오가 기획, 제작하고 윤제균 감독이 연출하는 한•중 합작영화 <쿵푸 로봇>도 진행 중이다.

=중국의 완다픽처스와 함께 기획했고 윤제균 감독에게 제안한 작품이다. 청소하는 로봇이 쿵후를 알게 되고, 일가족을 지켜내는 휴먼 드라마다. 윤제균 감독은 대중적인 감각, 결과물에 있어서는 정점에 도달한 감독이다. 그의 머릿속에 대중이 호응할 만한 지점이 어떤 건지 그 계산이 다 있다. 한국에서도 호응을 얻었지만 더 큰 시장인 중국에서 작업한다면 대중적으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로봇 연출은 우리로서는 큰 이슈가 아니다. 일단 고릴라 같은 크리처보다는 표현이 더 수월한 소재다. 할리우드처럼 로봇을 잘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은 크게 안 해도 될 만큼 자신 있다.

-7월에는 중국의 알파픽처스와 글로벌 콘텐츠 제작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앞서 덱스터스튜디오의 1대 주주인 완다그룹이 할리우드의 레전더리 픽처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확실히 공표하고 있다(알파픽처스는 중국 최대 애니메이션 회사 알파그룹의 자회사다).

=전략적으로 많은 부분을 논의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됐다. 내가 만나본 회사 중에서도 정말 콘텐츠를 사랑하는 곳이고, 우리 회사와 공통점이 많다. 그곳 대표가 우리의 기술력을 높이 봤고, 우연히 <신과 함께> 시나리오를 보고 투자 이야기도 진행하고 있다. 알파픽처스가 곧 미국 사무실을 오픈하는데, 우리에게도 거기서 같이 일해도 좋다고도 하더라. MOU 체결을 시발점으로 지금은 어디까지 함께할 수 있는지 지속적으로 왕래를 하는 중이다. 중국 자본으로 만들더라도 무국적 세계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다. 회사뿐만 아니라 ‘감독 김용화’로 개인적인 연출 제안도 받아 그 부분도 고려 중이다.

-최근엔 허안 감독이 연출하는 중국영화 <봉신연의: 영웅의 귀환>의 시각효과 막바지 작업으로 VFX팀이 한창 바쁜 걸로 알고 있다. 1분기 기준 전체 수주 총액의 68%가 중국에서 발생할 정도로 중국과의 VFX 수주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한 한•중간의 위축된 관계가 영향을 미치지는 않나.

=영향을 전혀 안 받는다는 건 아니지만 영향을 받았냐고 하면 증명된 사례는 없다. 하고 있는 작품도 진행이 순조롭고, 수주도 많이 늘어났다. 100억원대 육박하는 작품들도 계속 들어온다. 시대와 정국에 따라 영향은 받겠지만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기술 분야라서인지 다른 분야보다는 타격이 적다. 배우들은 그런 제약을 가한다는 게 바로 보이니 더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겠나.

-설립 4년 만인 지난해 말(2015년 12월12일) 상장했다. 자체적으로 상장 후의 변화와 분위기를 평가한다면.

=어느 누가 VFX 분야에서 시작해 상장까지 생각했겠나. 상장으로 재무제표를 다 공개하니 불편한 점도 있지만 대외신뢰도 측면에서 좋아졌고, 자금 유치를 하는 면에서도 더 수월해졌다. 회사에 대한 임직원들의 로열티나 자부심도 그만큼 높아졌다. 깨끗하고 투명하고 좋은 회사를 다닌다는 데 대한 정서적 안정감이 생겼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직원들에게 고마운게 만약 내가 그들이었다면 나 같은 대표와 함께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경력도 많고, 나와 동년배인 동료들이 지난 4년간 인생을 걸고 앞만 보고 달려와주었고, 그 경험을 나눈 사람들이 키플레이어로 함께하고 있다. 그간 힘든 점들을 지나와서 지금은 오히려 두려움이 없다. 그전에는 뭘 하자는 말을 꺼내는 게 부끄러웠다면 지금은 더 큰 걸 해보자고 해도 이견없이 따라주는 회사 문화가 생겼다.

-파주에서 상암으로 사옥을 옮기면서 직원 수도 늘었다.

=처음 30명으로 시작했다. 중국 법인인 덱스터차이나를 제외하고 현재 한국쪽 직원이 320명이다. 파주 시절 VFX 파트에 200명이었는데 지금은 250명 정도 된다. 회사 규모는 자연적으로 작품 편수가 늘어남에 따라 커지겠지만 그것도 임계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등을 비롯한 해외 시장 진출로도 눈길을 돌려야 한다. 시작은 VFX팀이 뼈를 깎는 고통을 통해 회사를 구축하고 잘 이끌어주었다면, 이제부터는 콘텐츠 사업부가 이어줘야 한다. 자체 콘텐츠를 개발한다면 직원들로서도 다른 회사 작품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작업에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덱스터스튜디오와 <씨네21>이 함께하는 제1회 SF•판타지 시나리오 공모 대전 역시 회사가 당면한 콘텐츠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더한다. 한국 SF•판타지 장르로 특화했다는 점에서 더 기대를 모은다.

=콘텐츠 사업팀에서 늘 아이템을 개발한다. 그중 제일 빠르게 착수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찾다가 시나리오 공모전을 시작해보자 한 거다. 공모를 한다면 한국영화계에서는 좀 취약한 SF쪽으로 특화를 해보자 싶었다. 우리나라 작가들이 절대 <인디아나 존스> 같은 시리즈를 못 만든다고 생각지 않는다. 엔터테인먼트적인 부분의 재능들을 다분히 갖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영화가 너무 철학적으로 굳혀진 게 아닌가 싶다. 일단은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송구스럽게도 상금이 크지 않다. 하지만 일단 론칭을 하고 그 장르의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도록 시스템을 키워나가는 데는 아낌없이 투자하고 싶다. 사실 학교를 통해 배출할 수 있겠지만 무턱대고 교육사업을 시작하는 건 시기상조가 아닐까. 수상자뿐 아니라 수상자가 아니더라도 가능성을 보고 인큐베이팅을 하려고 한다.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고 창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분야의 작가 풀을 안정적으로 하는 게 목표다.

-지금 영화계에서 개발되고 시장에 선보인 작품들이 가진 취약점을 보완한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 같다.

=지난해 흥행 결과를 보면 공교롭게도 30억~40억원 제작 규모의 영화들의 성과가 좋지 않다. 과거에는 그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영화들이면 기본 150만~200만 관객이 봤던 영화인데, 지금은 그 수요가 거의 없다. tvN을 비롯한 종편 회사들이 제작하는 드라마의 완성도가 높아진 것도 그 영향이 아닐까 싶다. 영화 만들 때 쓰는 장비 다 쓰고, 영화계 스탭들이 다 참여한다. 우리 회사도 D.I. 사업부는 TV드라마 색보정 일도 많이 한다. 집에서 보는 드라마와 극장영화가 굳이 다르지 않다고 하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극장까지 가서 보는 영화가 무슨 메리트가 있겠는가. 오가는 시간을 포함해 4시간 동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어떤 차별화를 해야 할까. 다른 회사는 몰라도 우리 회사는 TV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를 굳이 확대 생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한국영화계에 도움이 될, 세계 시장에서도 통용될 콘텐츠들을 개발 하려고 한다. 그런 작품들을 만드는 데 그동안 안 된게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런 점에서 20년 넘게 한국영화계의 중심에서 <씨네21>이 쌓아온 전문성, 노하우와 손잡고 싶었다. <씨네21>에서 사랑받지 못한 대중감독을 꼽으라면 내가 2, 3위에 들겠지만. (웃음)

-지원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부분인데, 공모전이 원하는 작품, 심사의 방향을 말해달라.

=극장 가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라도 좋다. 그 안에 인간이 잘 들어가 있다면, 기술력은 넣으면 된다. 시나리오의 완성도와 가능성만 있다면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에 가장 감명 깊었던 SF작품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2013)다. 이걸 과학영화라고 딱히 말할 수 있을까. 딸을 잃고 고통받았던 사람이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고 그래도 이 지구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멋진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VFX라는 태그가 달린 것뿐이다. 스튜디오로서는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당황했겠지만, 감독의 고집으로 밀어붙인 게 아닐까. 이렇게 고통받는 영웅의 내면을 심도 깊게 그리기 시작한 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2005)부터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웅에 대해 우리가 감정이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사실 중국과 같이 일하는 창작자들이 가장 고민을 토로하는 것이 검열 문제다. 엄격한 검열이 자유로운 창작에 큰 제약으로 작용한다. 시나리오 공모전에서도 미리 이 검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중국은 소재 제한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범주나 기준을 두는 건 아니라고 본다. 소재나 규모의 제한에서 오는 것들은 일단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지 작가나 감독이 고민할 부분은 아니다. 중국이 아니더라도 미국과 같이 할 수 있고, 영화를 만드는 데는 국경이나 경계가 없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건방지게도 우리가 “아시아의 디즈니가 되겠다”라고 한 건 기획부터 배급까지 하겠다는 말이었다. 조금 더 생산적이고 동기부여가 되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산업화가 되려면 만드는 사람이 수혜를 입어야 한다. 크리에이터가 더 많은 자본의 혜택을 얻어야 한다. 그들은 어디에 돈이 필요한지 안다. 기업은 다른 논리로 돈을 필요로 한다. 공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수혜를 받았으면 한다. 나는 운이 좋았다. 한때는 가난이 너무 싫어서 벗어나려고 했고 여기까지 왔는데, 어느 순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빨리 내가 원하는 쪽으로 이루어지니 이제는 가치 있게 받은 것들을 쓰고 싶다. 그 가치라는 게 결국 공동체가 나눌 수 있어야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 마흔이 넘으니 그런 것들이 이제 내가 풀어야 할 중압감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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