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人]
[영화人] 현장의 ‘미술요정’ - <범죄의 여왕> 방길성 미술감독
2016-09-08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작은 소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비좁은 방에서 이 땅의 청춘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예한다. 이요섭 감독의 <범죄의 여왕>은 바로 그 고시원을 배경으로, 120만원 수도요금의 비밀을 파헤치는 귀여운 스릴러영화다. 익숙하고도 기이한 고시원이란 공간은 방길성 미술감독에 의해 “하드보일드한 공간”으로 탄생했다. “누아르적 공간을 흠모하는 이요섭 감독과 코드가 잘 맞았다. 고시원을 좀더 과감하게 영화적으로 풀어도 좋을 것 같았다.” 낡고 음산한 기운을 가득 품은 영화 속 고시원은 영화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은 물론이고 캐릭터의 개성을 부각하는 기능을 톡톡히 해낸다.

장르적으로 힘을 준 공간들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건 공간과 캐릭터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방길성 미술감독은 영화 작업을 할 때 “공간보다 캐릭터를 먼저 스케치한다”고 했다. “이 인물의 성격은? 버릇은? 학교생활은? 그렇게 캐릭터의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디자인 작업을 시작한다. 캐릭터를 분명히 잡고 가지 않으면 결국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을 하게 된다. 그러한 디자인은 모두를 설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한다.” <범죄의 여왕> 역시 미경(박지영), 익수(김대현), 개태(조복래), 하준(허정도), 진숙(이솜) 등 캐릭터의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했다. 벽지의 무늬나 방 안의 소품까지도 구체적 상상의 결과물이다.

<범죄의 여왕>은 방길성 미술감독의 장편영화 입봉작이다. 부리고 싶은 욕심은 끝이 없고 예산은 한정적인 상황. 심리적으로 부담이 큰 작업이었지만 <미스터 고>, <용의자X> 등에서의 세트 작업 경험이 이번 작품에서 유용하게 작용했다. “어떻게 디자인을 ‘현실화’시킬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는 그는 “세트 작업과 미술 작업을 가리지 않고 경험했던 것이 <범죄의 여왕>뿐 아니라 앞으로의 작업에도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에선 디자인을 전공했고, 졸업 후 엔지니어링 회사와 설계사무소 등에서 일했다. “공간을 만드는 것보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영화미술 작업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는 그는 “배경이 아니라 인물이 보이는 담담한 미술”을 좋아한단다. 명함에 박힌 ‘미술요정’이란 회사명/별명에선 예사롭지 않은 기운도 느껴진다. “예전에 일이 너무 힘들었을 때 요술봉을 가진 요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그때부터 닉네임처럼 ‘미술요정’이란 말을 쓰고 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방길성 미술감독의 새로운 감각을 기대해본다.

전단지 스크랩북

방길성 미술감독의 취미 생활은 전단지 모으기다. 취미로 모으는 전단지지만 영화의 소품으로 유용하게 쓰일 때가 많다. “영화를 위해 새로 전단지를 만들면 ‘세월감’이 묻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땐 스크랩북에 모아둔 전단지가 좋은 답이 된다고. “오래되고 낡은 것들을 모으는 걸 좋아한다.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자료들을 많이 모으고 다닌다.”

영화 미술감독 2016 <범죄의 여왕> 미술팀 2015 <번개맨> 2015 <암살> 2015 <악의 연대기> 2014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2014 <우는 남자> 2012 <내가 살인범이다> 2012 <파파로티> 세트팀 2013 <미스터 고> 2013 <무서운 이야기2> 2012 <용의자X> 2011 <커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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