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지긋지긋한 사랑 혹은 지고지순한 집착의 시작과 끝 <나홀로 휴가>
2016-09-21
글 : 이주현
<나홀로 휴가>

강재(박혁권)는 사진 촬영이 취미인 가장이다. 밖에선 다들 착실하고 가정적인 남편으로 여기지만 그의 마음속에 고3 딸과 아내를 위한 자리는 없어 보인다. 홀로 떠난 제주도 출사 여행에서 강재의 카메라가 포착하는 것은 단란해 보이는 어느 가족, 정확히는 과거의 사랑 시연(윤주)의 모습이다. 강재는 10년째 시연의 주변을 맴돌며 그녀의 일상을 훔쳐보고 관음증적 사랑에 집착한다. 그러다 며칠째 시연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결혼한 그녀의 집에 과감히 발을 들인다.

옷장에 갇힌 한 남자의 거친 숨소리로 시작하는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다소 불친절하게 오가며 강재의 상황을 설명한다. 요가 학원 강사인 시연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 과정, 시연과의 사랑에 실패한 뒤 그 사랑에 집착하는 과정이 잦은 플래시백을 통해 비순차적으로 보여진다. 강재의 의뭉스런 행동을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는 초반부엔 권태롭고 위태로운 중년 남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가 싶은데, 후반부에 접어들면 강재의 실패한 사랑 이야기가 자극적으로 펼쳐진다. 관음과 스토킹이라는 소재를 직접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는 순간, 다시 말해 비순차적 이야기가 일렬로 꿰어지는 순간 영화는 단순해진다. 관음적 태도와 집착을 사랑으로 미화하려는 듯한 태도나, 사랑에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남성을 두둔하기 위한 장치들 혹은 강재의 친구 영찬(이준혁)을 통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불쾌하게 다가오는 순간들도 있다. 강재의 아내와 시연, 영찬의 전 부인 등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조강지처이거나 소유의 대상으로만 그려질 뿐이어서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캐릭터 자체에 선뜻 공감하긴 힘들어도, 음흉한 내면을 고요한 외면으로 완벽히 감춰버리는 주인공 박혁권의 열연은 인상적이다.

배우 조재현의 연출 데뷔작인 <나홀로 휴가>는 파격적 소재, 극한의 감정, 과감한 노출, 단도직입적인 화법 등 여러 면에서 그가 이전에 함께 작업한 감독들인 김기덕, 전규환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그들의 영화보다 파격의 강도는 덜하다. 조재현은 카메오로 잠깐 영화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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