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가장 일본적인 것이자 가장 국제적인 정서 <아이 엠 어 히어로>
2016-09-21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아이 엠 어 히어로>

히데오(오오이즈미 요)는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15년째 보조 만화가로 전전하고 있다. 히데오가 이번에도 연재 기회를 얻는 데 실패하자 동거 중인 여자친구 뎃코(가타세 나나)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한다. 그녀는 한밤중에 몇 안 되는 소유물과 함께 히데오를 내쫓아버린다. 이튿날 히데오는 뎃코의 전화를 받고는 그길로 뎃코를 찾아간다. 그러나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다. 신문 투입구의 좁은 틈으로 보이는 뎃코는 침대에 죽은 듯 누워 있다. 불러봐도 미동도 하지 않던 그녀의 몸이 발작적으로 뒤틀리더니 갑자기 그를 향해 돌진해온다.

<아이 엠 어 히어로>는 도쿄를 배경으로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신체와 정신을 조종하는 무정부 상태를 그린 하나자와 겐고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초반부터 인물 묘사와 공간 배치에 공을 들인다. 집, 직장, 거리 등으로 확장되다가 다시 택시 안으로 좁혀드는 공간의 변화에 따라 그에 맞는 인물들을 적절히 배치해 관객의 호흡을 집중력 있게 끌어간다. 대개의 좀비물이 주인공과 관계된 몇몇을 제외하고는 좀비를 익명의 존재로 뭉뚱그리는 것과는 달리 단역에게도 개성을 부여한 것은 후반부를 지탱하는 주요한 힘이다. 감염자 퇴치라는 대의를 걱정해야 할 순간에도 누군가는 사적 복수의 쾌락을 우선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영화 속 대사를 빌리면 ‘가장 일본적인 것이자 가장 국제적인’ 정서에 맞닿은 듯 여겨진다. <간츠> <도서관 전쟁> 시리즈를 연출한 사토 신스케 감독의 작품으로 제34회 브뤼셀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금까마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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