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공간의 형태가 이미 주제를 포함하고 있는 때가 있다. 아리엘 클레이만의 영화 <소년 파르티잔>(2015)이 그런 경우이다. <소년 파르티잔>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도시와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중정으로 이루어진 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분쟁 중인 혹은 분쟁 후의 지역으로 보이는 도시에는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흔히 보이는 모더니즘 양식의 집합주거가 흩어져 있고, 쇠락한 도시의 황량함과 비교되는 밝은 기운의 중정 모습이 외부 세계와 대비되어 나타난다(촬영지는 조지아의 트빌리시다). 외부 세계와 분리된 공간이라는 아이디어는 건축에서 자주 반복되는 개념이다. 아마도 자연이라는, 위험한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시작되었을 이 공간 형식은 외부 세계가 도시로 바뀌면서, 오염된 세상 안의 ‘오아시스’라는 의미로 변화된다. <소년 파르티잔>과 같이 숨겨진 중정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그 특성으로 인해 안과 밖의 연결 고리가 이야기를 진행하게 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한 남자가 건축 폐기물을 어깨에 둘러메고, 마치 십자가를 끌고 가는 예수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황량한 도시를 걷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잠시 후, 버려진 폐건물에 도착한 남자는 쓰러져 있는 긴 탁자를 힘겹게 일으켜 세운다. 방 한구석에 보이는 포도주 잔들과 권총 두 자루는, 탁자 위에서 벌어질 미래의 만찬이 총과 연관될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그레고리(뱅상 카셀)는 자신의 왕국을 일으켜 세운다. 이 왕국은 작지만 온전히 그의 왕국이고, 그곳에서 그는 지도자이고 아버지이며 동시에 선생님이다. 그의 왕국은 비밀스러운 통로로 이루어진, 외부로부터 숨겨진 중정을 갖고 있는 집이며, 그곳에서 버림받고 갈 곳 없는 여자들과 아이들은 그레고리를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중심이 자연으로 남겨진 환형도시
도시 속 숨겨진 공간이 주제가 되는 또 다른 영화로 이해준의 <김씨표류기>(2009)를 생각할 수 있다. <김씨표류기>도 도시의 숨겨진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소년 파르티잔>과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소년 파르티잔>의 중정이 외부에서는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공간이라면, <김씨표류기>의 밤섬은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숨겨진 장소라는 것이다.
한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한 남자 김씨(정재영)는 죽는 데 실패하고 밤섬에 표류한다. 구조받기를 포기한 이후, 김씨는 밤섬에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다. 무인도 밤섬에 고립된 김씨는 수렵과 채취를 통해서 살아간다. 그가 밤섬에서 구할 수 있는 대부분은 도시로부터 버려진 쓰레기들이다. 김씨는 버려진 오리배를 발견해서 집으로 사용하고, 각종 쓰레기를 수거해서 생존해 나간다.
2005년, 충청북도 연기군에 50만명의 행정중심 복합도시를 만들기 위한 국제현상 설계가 진행되었다. 현재는 세종시라고 불리는 이 행정중심 복합도시는 국제현상이 진행되고, 불과 10여년이란 짧은 기간 만에 실체적인 도시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한 도시가 그렇게 빨리 만들어지는 놀라운 경험과 함께, 세종시는 특별한 구조로 계획된 도시이다.
국제현상에 1등으로 당선된 5개의 도시계획 프로젝트 중에는 동일한 개념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2개 존재한다. 안드레스 오르테가의 ‘The City of the Thousand Cities’와 장 피에르 뒤에리그의 ‘The Orbital Road’는 똑같이, 거대한 녹지를 둘러싸는 환형 형태의 도시를 제안하고 있다. 중심에서 밖으로 커져가는 형태가 일반적인 도시의 역사에서, 중심이 자연으로 남겨진 환형도시는 특별한 사례이다. 이 두 계획은 중심도로를 따라서 양옆으로 상업시설과 업무시설 그리고 배후 주거시설을 계획하는 선형도시(linear city)의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링 형태의 도시를 계획하고, 그 내부는 녹지로 남겨둔 구조이다. 중앙을 비워두는 방식은, 중심으로 몰리는 교통과 수요를 밖으로 분산시켜, 도심의 과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도시구조는 녹지와 도시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숙제를 남긴다.
오르테가와 뒤에리그는 똑같이 중심녹지를 논으로 이루어진 경작지로 남겨놓았다. 도시 속 경작지는 주변의 도시와 연관된 존재이다. 도시 속에서 농업의 생산은 즉각적인 지역의 소비로 연결된다. 중심을 농경지로 남겨둔 이유가 진지하게 도시농업을 염두에 두었는지, 아니면 계획할 당시의 현장 상태를 단순하게 적용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일반적인 공원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최대인구가 50만명인 도시를 위해서 뉴욕의 센트럴파크보다 더 큰 공원을 계획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센트럴파크는 고층건물들로 빽빽한 맨해튼의 밀도에 의해서 그 특징이 드러나는 공원이다. 프레드릭 옴스테드가 설계한 센트럴파크는 도시와 분리된 ‘전원’이라는 개념으로 계획되었다. 나는 정돈된 논으로 표현된 오르테가와 뒤에리그의 중앙 녹지공간에서 도시와 공원의 새로운 관계, 생산이 가능한 공원을 상상한다. 모든 시민이 일정한 크기의 땅을 입양해서 자신의 텃밭을 가꾸고, 농경지와 레저시설이 혼재한 새로운 형식의 공원, 즉 공공의 목적과 개인의 이익이 하나가 된 공간이다.
안과 밖의 세상이 관계맺는 방식
<소년 파르티잔>의 아이들은 놀이처럼 보이는 훈련을 통해서 청부살인 기술을 습득하고, 이 아이들의 청부살인은 중정 공동체가 도시 속에서 유지될 수 있는 실질적인 경제행위가 된다. 엄마와 함께 공동체에 들어온 알렉산더(제레미 샤브리엘)는 살인의 대상이 된 한 남자가 보여준 친절함 때문에 혼돈을 느낀다. 외부 세계가 다가왔을 때 공동체의 안정성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소년 파르티잔>에서 외부 세계에 연결되는 매개체가 총이라면, <김씨표류기>에서 그것은 쓰레기다. 쓰레기는 유용성을 잃어버린 물건이다. 이전에는 가치가 있었지만 현재는 그 가치가 사라진 물건, 도시에서 자신의 쓸모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김씨는 자발적으로 이 쓸모없음의 세계를 선택한다. 그리고 쓰레기 덕분에 밤섬에서 살아나가고, 또한 쓰레기 때문에 밤섬에서 쫓겨난다.
영화와 건축 모두, 도시 속 숨겨진 공간이라는 구조는 필연적으로 안과 밖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안과 밖의 세상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은 이러한 공간구조를 이용하는 서사의 중요한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