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을 또 다른 나에게 전하는 위로 <우주의 크리스마스>
2016-10-12
글 : 김수빈 (객원기자)
<우주의 크리스마스>

불우한 환경 탓에 연애도 꿈도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던 서른여덟 성우주(김지수). 고향집에서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던 우주는 엄마가 남긴 편지와 상자 하나를 발견한다. 상자에는 빈센트 반 고흐 화집, 관절인형, 그림엽서 등 우주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을 함께한 물건들이 담겨 있다. 며칠 후 우주는 동네에서 자신과 이름이 같은 두 여자를 우연히 만난다. 스무살 성우주(윤소미)와 스물 여섯살 성우주(허이재)는 모두 엄마의 유품과 똑같은 물건을 갖고 있다. 서른여덟 우주는 두 여자의 인생이 자신의 과거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같은 행로로 전개되는 인생이라면 두 여자의 미래에는 서른여덟 우주가 겪은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같은 운명을 공유하는 세 여인의 이야기다. 여러 세대에 걸친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플라워즈>(2010), <디 아워스>(2002) 같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우주의 크리스마스>는 미래 시점에 해당하는 여인 한명에게 초점을 맞추고 다른 두명의 여인은 그녀의 과거를 상징하는 정도로만 쓰인다. 오히려 캐릭터간의 정보력 차이가 영화의 재미를 유발하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들과 맥이 닿아 있다. 다른 시간 여행 영화와 차별되는 점은 우월한 정보를 가진 주인공이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타인의 삶에 함부로 관여하는 대신 주인공은 그들의 삶을 묵묵히 관찰하다 제 경험을 응축시킨 짧은 조언 정도만을 건넨다. 타인의 삶을 응원하는 주인공의 태도가 무척 성숙하다.

몇몇 허술한 설정은 판타지영화로서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같은 물건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운명을 직감하는 설정은 지나치게 인위적이다. 세 캐릭터의 이름을 하나로 맞춘 것에도 강박이 느껴진다. 전하려는 메시지는 인물들의 대사나 편지 등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고흐와 평행우주는 대사의 단골 소재다. 지극히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대사는 단조로운 톤, 하나같이 느린 발화 속도와 넓은 발화 간격으로 좀처럼 흡인력을 가지지 못한다. 대사의 특성 때문인지 배우들의 연기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 <라이어>(2004)를 연출한 김경형 감독이 오랜만에 내놓은 장편 신작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