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민구(김승우)는 이탈리아 토리노국제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초청돼 출국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 안에서 헤어진 연인 민하(이태란)를 우연히 만난 민구는 반가운 마음에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청하지만 민하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게 싱겁게 끝나는 듯했던 두 사람의 재회는 토리노의 거리에서 민구 앞에 민하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면서 다시 시작된다. 뜨거운 포옹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예술에 대한 관심사와 13년 전 함께한 기억들을 나누면서 일주일간의 이탈리아 투어 여행을 시작한다.
영화는 두 가지 목적에 나란히 기댄다. 하나는 관객에게 여행지로서 이탈리아의 명소와 미술관, 와인, 전통 음식 등을 개괄하는 해설서를 제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40대가 되어 재회한 연인의 관계를 로맨틱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영화는 이중 후자에 초점을 맞추며 이탈리아라는 장소가 과거와 현재 이들의 관계를 대변하는 근사한 캔버스가 되기를 바란 것 같다. 40대의 사랑이 다소 무겁게 재현되어왔다고 느낀 이들에게는 단숨에 13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친구처럼 티격태격하는 이들의 관계가 신선하게 다가올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들의 동선을 진득하게 따라가기 위해서는 감정선에 대한 세심한 설정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친한 친구 이상의 감정이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은 이들이 서로에게 탐닉하며 사랑을 말할 때 어색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1999년 <하루>로 단편부문 대상을 받는 등 실제로 토리노국제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박흥식 감독이 이탈리아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녹여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