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아 로사 감독의 데뷔작인 <마데이누사>(Madeinusa, 2006). 제목을 띄어쓰기하면 ‘Made In USA’다. 하지만 영화의 이야기나 배경은 미국과 전혀 관련이 없다. 영화가 시작되면 페루의 산꼭대기에 자리한 외딴집의 한 소녀가 보인다. 집안 살림을 하고 짬이 나면 거울을 보며 예쁘게 치장하고 바깥세상의 화려함을 동경하는 소녀의 이름은 마데이누사다. 영화는 순수한 산골 소녀의 아름다운 이야기일 거라 추측하게 하지만 술 취한 부족장 아버지가 들어와 마데이누사 옆에 누워서 하는 말로 그 기대를 무참히 깨뜨린다. 아버지는 누워 있는 딸 마데이누사의 볼을 비비면서 말한다. “난 너랑 잘 거야! 네 첫 남자는 나야! 넌 절대로 처녀성을 간직하고 있어야 해!” 아니, 아버지란 작자가 어떻게 딸에게 그런 행동을 하려 하지!!! 영화를 보면서 생겼던 분노는 마을 사람들이 믿고 있는 종교 때문이라는 사실에 더 혼란스러워진다. 이 부족은 예수가 죽고 다시 부활하기 전까지의 3일, 신이 없는 그 공백의 3일 동안 인간은 어떤 나쁜 짓을 해도 된다고 믿고 있다. 그 3일 동안 축제를 벌이면서 온갖 나쁜 짓을 하는데, 축제 기간에 부족장인 아버지는 종교라는 방패 뒤에 숨어 딸에게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영화는 그 뒤로 우연히 마을에 들른 도시 청년을 마데이누사가 사랑하게 되면서 파국을 맞는다. 도저히 글로 옮기기 두려울 정도의 막장 드라마는 마데이누사가 아버지를 죽이면서 끝을 맺는 것 같더니, 결국엔 마데이누사가 자신이 사랑했던 청년을 아버지를 죽인 범인으로 지목하고 마을을 도망치듯 떠나면서 끝이 난다. 사랑했던 청년에게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뒤집어씌우곤 죄책감 하나 없이 동경하던 큰 도시로 향해 가는 설렘만이 가득한 마데이누사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 아버지가 종교를 방패 삼아 욕망을 채운 것처럼 자신의 죄 또한 종교적으로 면죄받았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데이누사>는 종교와 인간의 욕망 관계를 너무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종교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종교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 영화다. 하지만 이런 일이 페루의 산골 마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한 사건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일까? 학식 높은 권력자들 사이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잠깐. 왜 내가 이 영화를 인생의 영화 중 하나로 쓰고 있지? 분명 다른 영화도 있을 텐데…. 작업실 책상 뒤편에 켜져 있는 TV,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가 궁금해 뒤를 돌아본다. 뉴스는 끝이 나고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서 만들어 먹는 예능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다시 글을 마무리 지어야겠다. 클라우디아 로사는 <마데이누사> 이후 두 번째 영화 <밀크 오브 소로우: 슬픈 모유>(2009)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고, 만드는 영화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감독이 되었다. 또 <밀크 오브 소로우: 슬픈 모유>의 촬영감독 나타샤 브레이어는 박찬욱 감독의 단편 (2014)의 촬영감독이 되었다. 왠지 나랑 인연이 있나, 라는 묘한 착각이 들게 한다.
이계벽 영화감독.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 조감독 출신으로, 장편 <야수와 미녀>(2005), <럭키>(2016)를 연출했고, <커플즈>(2011), <남쪽으로 튀어>(2013)의 각본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