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토요일, CGV 청담씨네시티에서는 3040 싱글족들을 위한 특별한 영화 관람 행사, ‘영화로 통하는 Movie Talk'가 열렸다. KB국민카드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4DX 영화 관람으로 시작해 토크콘서트, 디너파티까지 네 시간동안 이어졌다. 이 날의 상영작은 개봉 전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이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이다. 코미디언 김기리가 토크콘서트의 포문을 열었고, 본격적인 대화는 <씨네21> 주성철 편집장의 진행과 함께 김혜리 기자가 영화에 얽힌 사연과 감상들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해 11월, 직접 런던 촬영현장을 취재하고 뉴트 스캐맨더 역의 에디 레드메인을 인터뷰했던(1065호 <씨네21> 참고) 김혜리 기자의 이야기는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토크콘서트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지면에 옮긴다.
호그와트 출신 마법사 뉴트 스캐맨더의 여정을 따라가는 <신비한 동물사전>은 뉴욕을 무대로 한 1편을 시작으로, 총 5부작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김혜리 기자는 “굉장히 만족스런 5부작의 시작”이라며 시리즈의 서막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신비한 동물사전>은 조앤 K. 롤링이 창조한 해리 포터 세계의 일관성을 흔들지 않고 테마를 견지해나가는 영화다. 10여 년간 여덟 편의 <해리 포터> 시리즈를 꾸준히 만들어오며 이 세계에 친숙해진 프로덕션팀이 참여했기 때문에 영화의 만듦새도 안정적이다.”
김혜리 기자는 조앤 K. 롤링이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한 <신비한 동물사전>이 “시간 순서상 <해리 포터> 시리즈보다 앞서므로 직접적인 속편도 아니고, 등장인물이 다르기에 직접적인 프리퀄도 아니”라고 말했다. “조앤 K. 롤링의 머릿속엔 ‘포터 유니버스’라는 마법 세계가 있다. <신비한 동물사전>은 마법사와 인간이 공존하는 이 공동체의 역사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다. 두 시리즈는 각기 다른 영화여도 가정한 현실은 하나다.” <해리 포터 >와의 연결 고리는 <신비한 동물사전>을 즐기는 주된 재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뉴트 스캐맨더의 장점을 알아주고 칭찬해줬던 교수가 덤블도어라는 대사가 나온다. <해리 포터 > 시리즈에서 호그와트의 교장이었던 덤블도어가 <신비한 동물사전>에선 교수로 재직 중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는 ‘마법의 동물 돌보기’ 수업이 있다. 그 수업의 교재가 ‘마법의 동물사전’이었고, 보석을 좋아하는 동물 니플러는 수업에서 일종의 교재였다. <해리 포터>시리즈에서 덤블도어 교장 대신 강압적인 엄브릿지 캐릭터가 호그와트에 들어왔을 때, 학생들이 엄브릿지 선생의 방을 어지르려고 이용한 마법동물이 바로 니플러다.”
김혜리 기자는 ‘포터 유니버스’의 세계관과 저자가 지닌 철학을 중심으로 두 시리즈를 연결시키며 대화를 확장해나갔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인종차별주의 및 파시즘에 대한 저항이 큰 주제였다. 한 때 라이벌이었던 <반지의 제왕>은 고답적인 판타지로서 종족주의적인 측면이 있고 성역할 측면에서도 남성 중심적이다. 여기에 비해 조앤 K. 롤링이 창조한 세계는, 이번 영화에서 4인조 중 여성이 절반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주요 캐릭터의 성비가 조화롭다. 인물들의 모험도 볼드모트가 대변하는 인종주의에 대항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볼드모트는 마법사가 우월하기 때문에 머글을 지배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신이 정점에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파시즘적 지배 형태를 꿈꾸고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반례가 <해리 포터 >의 이야기를 이루는데 이건 <신비한 동물사전>에도 적용된다.” 김혜리 기자는 영화에서 악당 옵스큐러스를 다루는 방식에도 시리즈의 특성이 묻어난다고 봤다. “옵스큐러스란 힘은 마녀나 마법사로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타고난 힘과 개성을 억압할 때 그 압력솥처럼 억압된 에너지가 파괴적인 힘으로, 표면적으론 테러로 나타나는 것이다. 영화는 그게 소년의 잘못이라기보다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소외가 원인이 돼 일어난 결과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해리 포터 와 뉴트 스캐맨더의 비교도 빼놓지 않았다. “해리 포터 라는 인물은 영웅의 숙명을 갖고 처음부터 세상을 구하리라는 인물로 완성돼, 가장 중요한 게 힘이 아니라 그걸 통제할 수 있는 무기와 우정에 대해 배워나가는 존재다. 뉴트는 해리에 비해 리버럴한 시민 정신을 갖고 약자의 입장을 강조하는 전문가적 성격이 있다.” 김혜리 평론가는 외국인, 여성, 노마지처럼 “다원적으로 구성된 인물들이 힘을 합해서 파시즘과 싸워나가는 것”이 5부작의 진행 방향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영화의 중심축을 이루는 에디 레드메인이란 배우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김혜리 평론가는 “배우 자체도 판타스틱 비스트”라 표현했다. “근육을 못 쓰는 인물, 트랜스 젠더 우먼이라는 전작의 캐릭터에 비해선 확실히 특이하지 않은 캐릭터”지만 에디 레드메인은 철저히 공부하고 조사하는 특유의 연기 방식을 고수했다고 한다. “한쪽 다리를 앞으로 내면서 걷는 방식은 야생의 동물을 놀래 키지 않고 접근하려고 훈련된 바디 랭귀지라 볼 수 있다. 에디 레드메인은 트레킹을 하고 실제로 영국에서 자라는 약초를 찾아보며 영화에 직접적으로 쓰이지 않는 부분까지 공부했다.” 배우의 이런 “모범생”같은 연기 스타일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혹자는 에디 레드메인이 직관적 연기가 부족하고 연기하려는 게 너무 보인다고 해서 뛰어난 배우가 아니라 비판한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의 배우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연기를 보는 동안 너무 즐겁다. 연기파라고 불리는 남성 배우 중에서 이런 스타일의 좋은 연기를 하는 배우는 굉장히 드물다. 남성성을 표현하는 많은 방식이 고착화돼 있는데 에디 레드메인은 여기에 고착화되지 않고 자기 연기를 한다.” 김혜리 평론가가 특별히 흥미로운 연기로 꼽은 부분은 “마법 동물이 포유류, 파충류 등 다 종류가 다르다. 실제로는 CG 처리돼 보이지 않아서 마임하다시피 연기를 했다. 하지만 동물의 종류나 크기에 따라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가 다 달라진다.” 이 배우의 퍼포먼스를 구경하는 일이 촬영의 큰 낙이었다는 동료들의 증언까지 보탰다.
토크 행사 말미, 관객석에 질문 기회가 찾아오자 한 관객은 “크레덴스 캐릭터를 체벌하는 장면에서 해리 포터 가 학대당하던 장면이 떠올랐다”며, 영화에서 크레던스에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지 않고 도구를 이용하는 식으로 체벌 방식을 설정한 이유를 물었다. 김혜리 평론가는 “가족 영화 등급이라 구체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두 어른 캐릭터가 크레덴스에게 학대에 가까운 행위를 한다. 메리 루 베어본은 허리띠를 풀게 하고 그레이브스는 몸을 소년에게 기울인 채로 회유하고 협박한다. 이 두 가지 장면에서 성적 학대의 뉘앙스가 있다고 본다.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고 싶어 하는 소년에 대해서, 이미 큰 힘과 지위를 가진 성인 남성이 그런 태도를 취하는 건 퀴어적인 측면이 있다. 아이의 에너지를 억압할 땐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학대가 있다는 걸 짐작하도록 의도된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영화가 품은 이야깃거리에 비해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은 토크 시간은 짧게만 느껴졌다. 관객들은 토크 행사 후 코미디언 김기리의 진행으로 간단한 케이터링과 사연 토크, 경품 추천 이벤트를 즐기며, 영화가 열어준 마법 같은 휴식 시간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