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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스플릿> 최국희 감독
2016-11-24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스플릿> 촬영현장(<씨네21> 1066호 기획 기사 ‘도박 볼링의 세계가 펼쳐진다-최국희 감독의 <스플릿> 촬영현장’ 참고)에서 만난 최국희 감독은 불도저 같았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규모가 꽤 큰 내기 볼링 장면을 찍고 있었는데, 신인답지 않게 진행이 빠르고 노련했다. 모니터 위에 전자시계까지 놓고 진행할 만큼 각오도 단단했다. “원래 성격이 약간 급하기도 하고,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목표 분량을 다 소화할 수 없으니까. (웃음)” 최국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스플릿>은 한때 잘나간 볼링 선수였지만 어떤 사건을 겪으며 나락으로 떨어진 철종(유지태)과 자폐 성향을 가진 볼링 천재 영훈(이다윗), 두 남자가 파트너가 되어 일생을 건 내기 볼링 시합에 나가는 성장담이다. 때로는 드라마를 섬세하게 구축하고, 때로는 볼링 시합을 경쾌하게 묘사하는 솜씨가 최국희 감독을 꼭 빼닮았다. 그는 “스코어는 다소 아쉽지만 적은 회차에 적은 예산으로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다”고 데뷔작을 내놓은 소감부터 말했다.

-개봉작이 11월에 몰려 경쟁이 치열하다. 시국도 어수선하고.

=뉴스가 영화보다 더 재미있으니…. (웃음)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집 앞 볼링장에 갔다가 본, 우스꽝스러운 폼으로 볼링을 치는 어느 아저씨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의 어떤 면모가 인상적이었나.

=영화 속 영훈보다 더 이상한 폼이었다. 볼링장 사람들의 시선을 끌 정도였다. 잘 치는 건 아니었지만 공이 계속 레인 한가운데로 갔다. 엄청난 노력을 한 것 같았다. 볼링공을 레인에 굴린 뒤 아무도 없는 의자에 하이파이브를 하고 주먹을 쥐더라. 되게 쓸쓸해 보이면서도 신기한 광경이었다. 집에 와서 당시 준비하던 시나리오를 쓰다가 그 아저씨가 생각났다. 얼마나 외로울까, 아니면 즐거울까. 우리에게는 외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에게는 볼링 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매우 영화적인 이미지였다.

-그런데 서사를 이끌어가는 건 그 아저씨를 모델로 만든 영훈이 아닌 루저 철종이다.

=주인공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변해야 한다. 그런데 자폐 성향을 가진 친구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말아톤>의 주인공도 초원이(조승우)보다 초원이의 엄마(김미숙)라고 생각한다. <레인맨>도 동생인 찰리(톰 크루즈)가 변하지, 형인 레이먼드(더스틴 호프먼)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훈을 이용하기 위해 영훈에게 접근하는 철종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건가.

=순수한 남자가 있다. 그는 볼링 천재다. 주변에서 누군가가 그의 볼링 실력을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어 개과천선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시나리오를 쓸 때 볼링 공부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볼링은 어떤 스포츠인 것 같나.

=볼링공을 굴려 핀에 맞히면 되니까 보통 사람들에게는 간단한 스포츠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운동신경과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 것 같고. 초보자도 운이 좋으면 스트라이크를 할 수 있고. 하지만 볼링은 멘털 스포츠다. 레인의 나뭇결들이 총 스물몇개다. 선수들은 그 결들을 네 등분한 뒤 열 몇 번째 결에서 왼쪽에 서 볼링공을 굴린다. 아주 미세한 차이가 승부를 가르는 스포츠다. 레인마다 조금씩 달라 볼링공을 굴려보고 아니다 싶으면 공을 바꾸거나 레인을 옮겨다니기도 한다. 그걸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게 되게 힘들었다.

-볼링이 멘털 스포츠인 걸 보여주기 위한 사건들이 있던데. 영훈이 좋아하는 10번 레인으로 옮기기 위해 철종이 레인에 물을 일부러 엎지르기도 하고.

=레인에 섰을 때 상대 선수들이 훼방을 놓거나 조롱하는 장면도 있다. 볼링을 치는 사람들은 그게 상대 선수에게 얼마나 큰 부담감을 주는 행동인지 안다. 볼링 에티켓이 있는 이유다. 양쪽 레인에 두 선수가 동시에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그 경우에는 왼쪽에 있는 사람이 레인에서 내려와 기다려야 한다.

-내기 볼링 취재도 했나.

=1980년대에 내기 볼링이 많았다고 하더라. 영화 속 내기 볼링 시합과 달랐다. 그 당시에는 한판에 얼마씩 걸고 했다더라. 돈 대는 사람은 마주(馬主), 선수는 말(馬)로 불렸고. 한판에 1천만원 내기를 했다는 사람을 만나 여러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1천만원이 걸리면 애버리지가 200점인 선수도 100점대로 떨어질 만큼 떨면서 친다고 하더라.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버디무비의 공식에 충실하다. 철종과 영훈, 어두운 과거를 가진 두 남자가 서로의 파트너가 되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공들여 묘사돼 있다.

=마케팅 때문에 포스터도, 예고편도 볼링이 강조돼 있지만 이 영화는 버디무비 형식을 갖춘 성장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철종이 처음에는 영훈을 이용하기 위해 영훈에게 접근했지만 결국 마음을 열게 되지 않나. 그 과정을 완만하게 구축하기 위해 그래프를 그려놓고, 그 그래프를 가이드 삼아 연출했다.

-볼링 시합이 프리미어리그 축구 중계처럼 앵글이 다양해 박진감이 넘치더라.

=특히 볼링공과 핀이 부딪칠 때 나는 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볼링공과 핀이 부딪치는 장면을 자동차 추격 신처럼 찍으려고 했다. 핀이나 볼링공에 카메라를 심는 등 별의별 시도를 다 했던 것 같다. 차를 쫓아가는 슈팅카를 고안해 만든 그립 장비를 레인에 굴리기도 하고. 볼링공이 엄청 빠르지 않나. 카메라가 구르는 볼링공을 쫓아가 담아낸 장면도 있었다. 어쨌거나 기술적인 완성도만큼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스트라이크만큼이나 핀 하나나 둘을 남기고 나머지 모두 쓰러뜨리는 장면도 어려웠을 텐데.

=그건 컴퓨터그래픽으로 잘 못하면 티가 나서 웬만하면 실사로 다 찍는 게 목표였다. 10번 핀만 남는 어떤 장면은 테이크를 100번도 넘게 간 적도 있다. 아무리 굴려도 10번 핀만 남기고 쓰러뜨리는 게 불가능하더라. 나중에는 나도 나서서 볼링공을 굴렸다. (웃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를 졸업했다고. 대학 때 전공이 뭐였나.

=외대 아랍어과 95학번이다. 수업을 거의 듣지 않고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제대한 뒤 영화를 공부하고 싶어 위스콘신주립대학 영화과에 들어갔다.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연출부에 지원했는데 아무도 안 시켜주더라. (웃음) 그래서 영상원 전문사에 가서 2008년에 졸업했다.

-데뷔작을 찍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8년이나 걸렸으니까. 영상원을 졸업한 뒤 조감독을 했는데 영화가 엎어졌다. 그래서 다른 영화사에서 시나리오를 쓰다가 각색 작업에 들어갔을때 <스플릿>을 만들었다.

-영화를 본 초등학생 아들의 반응은 어떤가.

=시나리오부터 읽어서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한다. ‘이 부분에서는 리얼리티가 떨어져’ 그러고. (웃음) 그래도 아빠의 영화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이미 서너번 봤는데도 누구와 또 보러 간다고 얘기하더라.

-차기작은 준비하고 있나.

=생각은 계속 하고 있다. 딱 두 페이지 썼다. (웃음) 아직 무슨 작품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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