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씨네 인터뷰] "보편적인 얘길 했다고 생각한다" - <우리 손자 베스트> 김수현 감독
2016-12-08
글 : 윤혜지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김수현 감독의 블랙코미디 <우리 손자 베스트>는 당혹스럽다. 주인공인 교환(구교환)과 정수(동방우, 동방우는 배우 명계남의 새 이름이다)는 각각 사회적 약자 혐오, 지역감정 조장 등 기형적인 이념을 담은 게시물을 제작·유통하는 웹사이트 일베저장소(이하 일베)의 헤비 유저와 극우 반공주의와 국가주의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회원을 모델로 했다. 교환과 정수의 안쓰러운 작태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만든다. 하지만 관객은 금세 끝간 데 모를 그들의 혐오스러운 행동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영화는 현재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폐 중 하나인 일베와 어버이연합을 집요하게 관찰한다. 대상에 대한 상세한 서술이 눈에 띄지만 결론은 유보적이란 인상을 준다. 영화에 대해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오랜만에 또 한편의 장편을 내놓은 김수현 감독을 만났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전작 <연소, 석방, 폭발 대적할 이가 없는>(2012)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다른 때에 비하면 그리 오래 쉰 것도 아니다. (웃음) 노동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영화 일은 거의 안 했다. 영화를 슬슬 해야겠다 싶어지니 여러 이슈가 눈에 들어오더라. 때마침 전주에서 프로젝트 제안이 와서 다행이었다.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로 선정돼 한정된 시간과 조건 안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연출 과정은 어땠나.

=감독이 하고자 하는 얘기에 대해 요구하는 게 아예 없어서 오히려 부담이 됐다. (웃음) 그래서 방만해질 뻔했는데 다행히 영화제 개막에 맞춰야 한다는 시간적인 제약이 있어 통제가 됐다. 외려 나 때문에 주변에서 고생을 많이 했을 거다.

-소재가 명백히 일베저장소와 어버이연합을 떠오르게 한다. 소재 선정의 이유와 그들 집단에 관한 사전 취재 과정은 어땠는지 묻고 싶다.

=소재가 가진 약간의 선정성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보편적인 얘길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베에 관해 알게 된 건 일베가 사회적 문젯거리로 떠오르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같은 맥락에서 청년 세대의 또 다른 모습을 다룬, 장강명 작가의 소설 <표백>도 나는 조금 늦게 읽었다. 관념적이란 인상도 있었지만 청년 세대의 절망과 혼란을 정확하게 짚는 지점이 있더라. 그때 느낀 바가 많았고, 청년 세대의 절망과 벼랑에 내몰린 듯한 느낌을 영화화하는 데 나로선 일베라는 소재를 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일베 회원들이 그렇게 특이하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했다. 기저엔 비슷한 아픔과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버이연합이 모티브가 됐던 어버이별동대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억눌리고 이상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일베 회원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공통된 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했다.

-<우리 손자 베스트>가 다루고 있는 정서가 청년 세대의 절망을 이야기하는 보편적인 방식일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관객도 있을 것 같다. 오히려 청년 세대의 보편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전화 영어 과외 일을 동시에 하며 도미토리 형태의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티파니(전여빈) 캐릭터에 더 가까운 게 아닌가 싶다.

=나는 티파니가 일종의 곁가지라고 생각했다. 러닝타임을 줄여야 한다고 하면 티파니 부분을 가장 먼저 편집했을 것 같아서다. 다만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면 주제를 전달하기에 산만하더라도 뭐 하나 빼지 않고 종합적인 얘길 늘어놓기 수월할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요즘 계층간 혐오가 심각한 상황이고, <우리 손자 베스트>가 혐오의 대상을 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장점은 있다. 다만 그 대상을 사회가 어떻게 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소통을 하든 처벌을 하든 방치를 하든 적극적으로 그 대상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대상을 대하는 감독의 시선이 거기까지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내 기준으로서도 용해되기 어려운 대상이기는 했다. 사회학적으로 접근해 그들 존재에 대한 인과를 규명하는 것이 내 몫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잘못된 방식으로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병든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세상이 일베나 어버이연합을 탄생시킨 것이지, 일베나 어버이연합이 세상을 이 꼴로 만든 건 아니잖나. 일베가 지역감정을 적극 옹호하고 있지만 그들이 지역감정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보편’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점은 이런 거다. 그들의 유희에 드러나는 약자 혐오, 여성 혐오가 지금 어떤 방식으로 소화되고 있는가. 우리 부모님 세대, 나의 세대 역시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제 주입받아온 세대다. 특정 정서를 강제 주입받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과정엔 큰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의 보편의 문제라 말하고 싶다.

-교환과 정수는 관심과 인정욕구에 목마른 인물들이다. 교환에겐 단순히 ‘관종’(관심종자)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복잡한 자기파괴와 분열의 정서가 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지목하는 대사에서 교환은 피해자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다가 젊은 나이에 죽은 것에 질투한다.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나만의 상상과 가공이 아니라 실제 존재했던 것들이다. 일베의 동시접속자 수가 한때는 100만명이라고 했다. 전부 헤비 유저는 아니겠지만 그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과 그들의 유희에 대한 방조가 그 정도는 됐다는 거다. 그리고 밝혀두지만, 교환은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청년이다. 교환의 가정은 딱히 특별할 것이 없는 집이다. 나의 연출 실수였는지 모르겠지만, 교환의 집을 콩가루 집안으로 생각하고 교환이 그래서 비뚤어진 거라고 여기는 시선도 있는 것 같다. 정수는 교환과 조금 차이가 있다. 나로선 지난 근현대사를 70년쯤 겪어온 삶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그들이 시대를 버텨낸 방식에 대해 말하는 것이 더 어렵다. 청년 세대가 느낄 한계와 절망도 납득하지만, 70대 노인들은 물리적으로 그 자신이 놓인 현실을 어떻게 해볼 방편조차 없는 세대다. 과격하고 고집스러운 한편 삶에 대한 정확한 지혜와 소신도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그런 얘길 다 하지 못한 게 아쉽다.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면 교환을 그렇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교환의 양태가 아무리 한심하고 비상식적이라도 그게 단순히 개인의 환경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일베를 대하는 시선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환이 요가를 연습하는 것은 스스로 중심을 잡아보려는 시도로 봐도 무방할까.

=영화에서 요가의 목적은 자위를 하기 위해서가 다다. (웃음) 교환이 성적 욕구를 푸는 방식은 변태적이다. 동물의 자위를 보고 따라한다든가 몸을 기형적으로 구부려서라도 혼자 뭘 해보려는 시도 자체가 되레 그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자위 방식에 대해 정상, 비정상을 따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그 모습은 지금까지 교환이 남에게 고통을 준 것만큼 자신도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걸 나타내고 싶어서였다.

-여성 캐릭터들과 남성 캐릭터들의 차이가 현격하다. 김상현 성우는 사실상 이 영화에서 가장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사람이다. 교환의 여동생 미선(이봄)과 티파니는 냉소적이지만 성실히 할 일을 하면서 산다. 교환의 엄마와 박카스 할머니 숙희(박명신)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나도 의도한 건 아니었다. 이 영화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대체로 자기 상황을 건강하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해결하더라. 배우들에게 많이 맡겼는데 그들이 잘해줘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남성 캐릭터들은 기존 남성 문화에서 출발한 인물이 대부분이어서 그 속의 불편함들이 눈에 띄는 것 같다.

-정수의 모습은 교환의 미래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후반부에 교환은 머리를 밀고 광화문광장에 나가 해괴한 춤을 추며 “나 자신이 팩트”라고 말한다. 교환이 정수가 되는 미래를 버리고 새 출발을 한다는 의미인가.

=정수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요다 같은 존재다. 정수는 교환이 딛고 일어서야 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정수가 교환의 미래일 거라 보는 건 너무 나간 거다. 뭐랄까, 내 입장에서 주입식 교육의 산물, 세뇌된 철학과 신념으로부터 결별하려는 거다. 후반부에 정수와 교환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사회가 용인한 일이 아니더라도 영화적으로 교환에겐 긍정적인 일이란 생각을 했다. 어딘가에 이끌리듯 추는 춤은 교환이 음성적으로 자신을 가두던 과거보다는 어쨌든 바깥으로 나가 자기표현을 할 수 있게 된 거다. 교환은 그냥 햇볕을 쬐여주고 싶었다. 어떤 자기 표현을 하든 그게 몸을 쓰는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도 홀로 생각만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가끔 몸을 쓰는 노동을 하면서 약간 개운함을 느끼곤 한다.

-열패감이 짙게 드러나는 구교환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구교환과는 어떻게 만났나.

=감독에게 좋은 배우랑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것만 한 축복이 또 없을 거다. 시나리오 쓰는 동안은 무조건 물리적인 나이가 20대인 배우가 교환 역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제작자인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의 추천이 있기도 했고, 캐스팅 기간 중에 구교환이 연출과 연기를 겸한 <연애다큐>(2015)를 봤다. 재밌고 적당한 가벼움이 있는 기분 좋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구교환과 통화를 했고, 또 바로 술 한잔을 했다. 영화 얘긴 안 하고 사는 얘기만 많이 나눴다. 연기에 대한 사전 협의 같은 것도 없었고 무작정 촬영하고 아니다 싶은 건 편집에서 걷어냈다. 구교환은 견성과 묘성을 다 갖고 있는 연기자란 생각이다. 강아지처럼 익숙한 패턴의 연기도 할 줄 아는데 고양이처럼 예상할 수 없는, 단순히 순발력으로 뭉뚱그려 말하긴 어렵지만 테두리를 넘어서지 않는 독특한 신선함이 있다.

-동방우(명계남)의 합류는.

=예산과 환경이 넉넉지 않은 작품에 선뜻 협력해줄 분이 많지 않았기에 새삼 명 선배가 고맙다. 명 선배가 정치적으로 어떤 이미지였는가를 생각하면 자신에게 부담이었을 캐릭터이기도 한데 아주 조금의, 시나리오와 나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신 거라 생각한다. 촬영 전에도, 촬영 중간에도 명 선배는 꾸준히 “수현아, 이 영화를 왜 찍는 거니” 물으셨다. 나중에 영화를 보시고는 별 말씀이 없으셨는데 스스로 답을 보신 게 아닌가 싶다. 내가 기억하는 명 선배는 힘이 넘치고 입담도 좋으신 ‘꾼’이었는데 스크린으로 크게 보니 어느새 피로해지고 나이가 드신 게 보여 속상했다. 내가 이 영화를 계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 현실적인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명 선배는 자기 때문에 투자가 어려웠던 걸로 오해받을까봐 혼자 울기도 하셨다. 그분의 연기가 어떻고 하는 게 내겐 중요한 게 아니다. 작품을 같이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대중의 귀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성우로 익숙한 배우 김상현은 전작들 <창피해>(2010), <연소, 석방, 폭발, 대적할 이가 없는>의 중심 인물이기도 했다.

=이 영화의 구원투수다. (웃음) 세 작품을 같이했으니까 개인적으로도 잘 알고, 서로의 호흡도 잘 아는 사이다. 김상현씨가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난 그걸 받아 안기만 하면 됐다. 상현씨가 합류하고 그 캐릭터의 시나리오가 싹 바뀌었는데도 바로 연기를 잘해줬다. 아쉬운 점이라면, 목욕탕에서 교환이 상현씨를 포박하고 동영상을 찍으며 특정한 발언을 해주길 요구하는 장면이 있다. 잠시 뒤 상황이 역전돼서 상현씨가 교환을 포박하고 똑같은 걸 요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상적인 인물’인 상현이 비슷한 방식으로 교환에게 복수를 한다는 게 캐릭터를 좀 무너뜨린게 아닌가 싶어 미안했다.

-차기작을 보려면 또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까.

=촉이 느린 편이라 아마 그럴 거다. 지금은 아무 계획도 없다. 개인적으로도 할 일이 없다. 누적된 스트레스를 푸는 데에 노동이 참 좋은데, 겨울이라 일감도 잘 안 나오더라. 일단은 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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