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김영진의 영화비평] 궁극의 인간긍정 영화 <우리 손자 베스트>
2016-12-15
글 : 김영진 (영화평론가)

김수현 감독의 <우리 손자 베스트>는 개봉 첫주에 극장을 거의 잡지 못했다. 대기업 멀티플렉스 체인에선 이 영화를 거의 거부했다. 예술독립영화 체인인 CGV아트하우스에선 한개의 스크린도 배정받지 못했다. 듣기로는 그 회사 직원들이 이 영화를 혐오하는 정도가 심해서 얘기도 꺼내보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이 상황이 몹시 가슴 아픈데, <우리 손자 베스트>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장편제작 프로젝트인 JCP 세편의 영화 중 한편이고 영화제에서 첫 공개했을 때 반응이 가장 좋았던 작품이며, 이 영화를 본 몇몇 평론가들도 단연 올해의 문제작이라고 칭찬했던 수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지도록 열심히 부추긴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우리 손자 베스트>의 초고 시나리오만 보고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JCP 작품으로 선정할 때만 해도 이 영화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후의 후유증을 염려한 사람들이 영화제 내부에서도 다수였다. 영화제에서 대는 1억원의 제작비로는 턱도 없어서 여기저기 추가 투자를 제의했지만 다 거절당했다. 인디플러그의 고영재 대표가 나서서 나머지 제작비와 배급을 맡기로 하면서 겨우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모자라는 제작비에 비하면 촬영 과정은 순조로웠다. 촬영 전 결과에 반신반의했던 조용규 촬영감독은 모처럼 영화다운 영화 만들기에 자기 재능을 보탠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마침내 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 우리가 염려 반 기대 반으로 예상했던 이 영화에 대한 격렬한 반대같은 것은 없었다. 1년 반 전에 파격적으로 보였던 이 영화의 설정은 현재의 탄핵 정국에선 오히려 심심해 보인다. 그런데 혐오라니? 이 영화의 흥행은 망할 것이 분명하므로 나는 지금부터 조사를 쓰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젊고 늙은 두 남자의 공통점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언뜻 봐서는 혐오감을 주는 인물일 수도 있다. 일베를 지칭하는 너나 나나 베스트의 회원인 주인공 청년 교환(구교환)은 인터넷에 극우적 선동질로 가득 찬 글 게시물과 음란한 이미지들을 올리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한심한 백수이다. 그의 다른 가족들도 정상 범주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교환이 집에서 햄버거를 시킬 때 교환의 여동생 미선(이봄)은 안방에서 엄마(김소희)의 목을 조르며 죽여버리려고 한다. 미선은 퇴근한 아빠(김중기)에게 엄마를 죽일 뻔했다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고 아빠는 그런 미선의 행동을 전혀 비난하지 않는다. 이들 가족은 곧 해산한다. 모두 집을 나가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도 486세대인 듯한 교환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아들이 너나 나나 베스트 사이트에 올린 온갖 허접한 게시물들을 살펴본다. 회사 선배에게 교환의 아버지는 말한다. 이제 진짜 혁명을 해볼 생각이라고. 그는 가족을 무너뜨리는 게 혁명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상한 인물은 또 있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나돌아 다니다가 교환이 우연히 알게 된 어버이 별동대 대장인 정수(동방우)가 바로 그 사람이다. 정수는 탑골공원을 주무대로 종북 척결 시위 등을 주도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낙원동 일대에서 낮술로 시간을 보낸다. 영화는 교환과 정수의 생활동선을 번갈아 보여주는데 이윽고 그들은 할아버지와 손자 비슷한 관계를 맺게 된다. 교환과 정수는 우리가 인터넷의 익명 게시판이나 지하철, 도시의 시위 현장에서 직간접으로 접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감독 김수현이 취재하고 상상한 이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자주 충격을 준다. 젊고 늙은 두 남자의 공통점은 여성관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교환은 여동생의 팬티를 입고 자는 모습을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한다거나 자신의 고객/소비자 신분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실수를 범한 회사 여직원에게 몸을 요구하는 따위의 행동을 한다. 정수는 탑골공원 근처에서 몸을 팔며 살아가는 할머니 숙희(박명신)를 거의 버러지 대하듯 학대하며 자동차가 후진할 때 숙희를 드러눕게 해 다친 것처럼 위장하고 보상비를 받는 도구로 사용한다.

이들의 반인륜적 행각이 곧 이 영화의 플롯이지만 영화는 가끔 멈춰 서서 이들의 내면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교환이 아무도 없는 자기네 텅 빈 집에 정수를 데리고 가서 아빠가 쓰던 선글라스를 정수에게 선물로 주고 선반에서 양주를 꺼내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영화는 일시적이지만 이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온기 있는 시선을 띤다. 교환에게 자신의 몸에서 노인 냄새가 나느냐고 물으며 푸념하는 정수의 말에서 우리는 정수의 꼴보수 행각이 사회로부터 배제된 것 아니냐는 피해의식과 필사적으로 주류 기득권의 의식을 몸에 장착해 위장하고 살아가려 드는 생존본능을 읽는다. 덩달아 자기 생각을 털어놓는 교환의 말은 더욱 상상하기 힘든 것에 속한다. 지옥에 가면 힘든 게 반복된다고 하는데 물에 빠져 죽은 세월호 아이들은 10대까지만 지옥을 경험한 것이니, 가장 예쁠 때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죽은 것이니 좋은 게 아니냐고 그는 말한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자기 비하와 상대방 모멸밖에 없다고 여기는 교환은 자기 비하의 역설적 표현으로 세상을 모멸하며 세상이 나아질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믿음에 침을 뱉고 싶어 한다.

혐오스럽기보단 슬픈 장면들

이런 장면들 다음에 감독 김수현은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교환이 정수와 방에서 자고 있을 때 거실에서 신음소리가 들린다. 교환은 어머니가 낯선 남자와 식탁에서 정사를 나누는 것을 문틈으로 엿본다. 그때 교환은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교환에게 이것은 잔인한 고통이다. 그때까지 컴퓨터를 통해 수많은 음란물을 엿봤던 교환에게 자기 어머니의 실제 정사가 눈앞에 펼쳐진다. 교환의 안전했던 관음증은 이제 안전하지 않다. 여자를 지배하는 환상에 소용되었던 교환의 관음증은 대면하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정사라는 원초적 장면과 부닥친다. 쾌락으로 멍해진 채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어머니의 시선이 교환의 시선과 만나고 교환이 혼돈에 빠졌을 때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수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지만 실은 자고 있는 척한 것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건 정수의 어른으로서의 배려였다. 정수가 교환이라는 아이가 받은 정서적 충격을 알면서도 아는 척하지 않는 것은 입만 열면 상스런 욕설로 상대방을 면박주는 평소의 정수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지만, 정수는 교환에게서 이미 육친의 정과 비슷한 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냉탕과 열탕을 오가듯이 김수현의 인간 관찰기는 이후로도 비슷한 패턴으로 전개된다. 어머니의 정사를 보고 정신적으로 내상을 입은 교환은 정수가 자주 가는 선술집에서 낮술을 하며 전화로 영어를 지도하는 티파니와 통화를 한다. 교환은 이 젊은 여자가 자신이 묵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그가 자주 가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티파니도 그 사실을 모른다. 이들은 인접한 공간에 있지만 늘 떨어져 있다. 낮술에 취한 교환이 평소답지 않게 간신히 성립되는 영어 문장으로 시를 만들어 노래를 한다. “오늘 나는 네 꿈을 꿔. 하늘에서 네가 춤을 추는 꿈, 나는 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어, 나의 심장 소리를 들어봐.” 유치하지만 슬프게 울려 퍼지는 교환의 노래를 들으며 티파니는 3시간 후에 자신이 일하는 편의점으로 오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묘사된 교환의 외로움은 다른 인물에게로, 관객 입장에서 서서히 퍼져 나간다. 교환이 술 마시는 낙원동 선술집 근처에서 역시 낮술에 취한 할머니 숙희가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택시를 잡지 못하고 술에 취해 뻗은 교환을 자기 방에 데려간 숙희는 교환이 자게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간다. 다시 김수현식의 잔인한 인간 관찰기가 시작된다. 숙희가 간단한 먹거리를 사들고 방에 돌아왔을 때 교환은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 숙취로 몽롱한 상태에서 교환은 어머니의 정사 장면을 떠올리며 자위를 한다. 숙희는 깔깔댄다. “우루사를 먹으랬더니 비아그라를 먹었어.” 그러고는 멘소래담 연고로 교환의 상처난 얼굴을 발라주고 다시 그걸 교환의 성기에 바르면서 교환의 자위를 도와준다. 이 장면은 끔찍하다. 교환의 발기된 성기에 올라타면서 숙희는 울부짖는다. 양색시 시절 낳았던 미군의 아기가 마당에서 흙을 먹고 있었던 기억, 누가 있었으면 좋았겠는데 아무도 없었던 절망감을 털어놓으면서 숙희는 죽은 자기 아이가 컸으면 교환만큼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가 방을 훑으면 ‘리퍼트 대사님을 사랑합니다’라는 헤드라인이 적힌 신문기사가 벽에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근친상간이라는 환상이 실현되는 것 같은 충격을 주는 이 장면에 구원자로서의 미국 대사를 칭송하는 집회 기사가 접합되는 것은 썩은 아버지와 무능한 아버지 사이에서 갈 곳을 잃은, 정신적으로 고아 상태인 이들을 혼란스럽게 비추는데 그걸 견디기 힘들다는 듯이 교환은 쌍욕을 하며 숙희를 내치고 다시 거리로 나와 방황한다. 그때 티파니는 오지 않는 교환을 기다리며 편의점에서 고구마를 먹고 있다. 심술궂은 듯 외설스럽고 차가운 장면 연결이지만 나는 이런 장면들이 혐오스럽다기보다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슬펐다.

상처를 긍정하기

교환과 정수, 그 밖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행위 때문에 일정한 복수를 당한다. 아까 언급했던 회사원과의 모텔 정사 장면에서 교환은 벌거벗은 채로 사진을 찍히는 굴욕을 당한다. 정수는 현충원 근처 육교에다 김대중의 가묘를 만들고 그걸 해체하는 퍼포먼스를 하다 건장한 청년에게 얻어맞는다. 이런 식으로 그들의 수난은 끝이 없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주변으로부터 모욕을 받는다. 그럴수록 그들의 가짜 자존감은 더욱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듯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에게는 그걸 실행할 능력도 없다. 교환은 평화기원 콘서트에 폭탄 테러를 하려다가 누군가가 먼저 행동한 걸 보고 망연자실해한다. 정수는 자기 인생 최고 목표였던 보훈처로부터 국가 유공자 표창을 받는 데 실패하자 아예 현충원에서 몰래 죽어서 묻히려 든다.

김수현은 이 사람들을 희화화하지 않으면서 가끔 헛웃음이 나오는 블랙 코미디 톤으로 찍었다. 교환이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가족들을 편의점으로 불러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영화속 한 장면을 예로 들면, 이 장면에서 교환은 터무니없이 진지하다. 교환의 여동생은 탈조선하겠다며 공부에 매달리고 있고 교환의 어머니는 주부에서 벗어난 생활에 크게 만족해하고 있다. 교환의 아버지도 가족이 해체되고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 현 상태에 불만이 없다. 그들 부부는 이구동성으로 문제없다고 말한다. 그 상황에서 교환은 아버지의 양복을 빌려달라고 부탁하고 화면이 바뀌면 교환은 말끔하게 양복을 입고 애국가를 큰 소리로 부르고 있다. 웃기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슬픈 이 장면에서 교환의 행동을 이해하는 가족은 아무도 없지만 교환의 어머니만이 그런 교환을 그 상태로 그냥 바라봐준다.

교환의 아버지가 무능한 486세대로 설정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교환은 자신도 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되었지만 실제로 이 괴물이 자기 주변의 현실에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일도 변변한 게 없다. 교환의 가족은 사회의 버팀목이 되는 최소 단위로서의 가정을 형식적으로라도 유지할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것만으로도 혁명의 시작이라고 교환의 아버지는 생각하지만 그게 정답은 아니라고 여기는 관객 입장에서도 별다른 대안의 고리는 없다. 유일하게 이 영화에서 동요하지 않는 인물은 성우 김상현인데, 그는 교환으로부터 목소리를 도용당했을 때 침착하게 경찰에 고발해 교환의 반성을 이끌어내고 나중에 교환으로부터 납치를 당했을 때도 비슷하게 대응한다. 진보라는 가치를 축으로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다고 유일하게 믿는 영화 속 인물인 그는 자신의 신념과 행동에 상응하는 대답을 사회로부터 받지 못하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김상현이라는 인물을 축으로 김수현은 겉으로는 힘세고 강인한 척하지만 실은 누군가로부터 오는 구원의 동아줄을 절실하게 바라고 있으며 동아줄이 내려올 가능성이 줄어들수록 더 과격하게 행동하는 길 잃은 인간들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환부에 시선을 주고 썩어가는 인물들의 상처를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도 김수현은 그걸 긍정한다. 나는 김수현의 그런 태도가 윤리적으로 매우 강인하고 정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교환이 광화문에서 리시버를 꽂고 음악을 들으며 미친 듯이 춤을 춘다. 교환은 “내가 찾은 팩트는 바로 나다”라고 외친다. 교환과 정수를 비롯한 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고름 덩어리의 인간들이지만 그건 우리 사회의 고름 덩어리이기도 하다. 그것들을 뽑아서 치료할 수 있다고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그전에 그 고름 덩어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지그시 볼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들은 무엇보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다만 운이 나빴을 뿐이다. 김수현은 강력한 이미지와 선언을 탑재한 궁극의 인간긍정 영화를 만들었고 독립영화가 독립영화로 존재할 수 있는 윤리적 미학적 태도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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