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ituary]
[추모] 레아 공주, 포스의 영으로 돌아가다
2016-12-30
글 : 조재휘 (영화평론가)
캐리 피셔 Carrie Fisher 1956~2016

배우로서 캐리 피셔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레아 공주(Princess Leia)라 하면 바로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1977) 이래, 루크 스카이워커, 한 솔로와 더불어 시리즈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각인된, 은하계의 자유를 위해 싸우던 공주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19살의 캐리 피셔는 남성주인공의 구원을 기다리는 전통적인 여성상에 그칠 뻔한 레아 공주의 배역에 적극적으로 운명을 개척해가는 능동성을 부여해 보다 입체적이고 당찬 매력을 지닌 캐릭터로 소화해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처럼 영화의 등장인물을 넘어 시대의 문화적 상징으로 각인된 배우 캐리 피셔가 2016년 12월27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0살. 12월23일 런던에서 출발한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 안에서 발작을 일으키고 입원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인 데비 레이놀즈(1932~2016) 또한 딸의 부음을 듣고 난 뒤 호흡곤란 증세로 병원에 이송되어 뒤를 따르듯 28일 84살을 일기로 별세했다.

15살 때부터 연기를 해왔지만 캐리 피셔는 그리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간 배우라 보긴 어렵다.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1983)으로 시리즈가 일단락된 이후 여러 작품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레아 공주로 굳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깨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우디 앨런의 <한나와 그 자매들>(1986) 정도를 제외하면 필모그래피의 대부분을 조연 내지 단역으로 전전해야 했다. <블루스 브라더스>(1980)에서는 제이크(존 벨루시)에게 버림받은 복수를 하고자 총을 들고 쫓아가는 광기 어린 전 여자친구 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꾀했지만 비중이 적었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에서도 샐리(멕 라이언)의 친구 마리 역할로 잠시 등장하는 아주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명성을 안겨준 <스타워즈> 시리즈가 아이러니하게도 배우로서의 경력에 발목을 잡은 셈이 된 것이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에서 레아 공주로 돌아온 건 팬으로서는 감격스러운 일이지만, 배우 본인에게 있어선 실로 얄궂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

파란만장한 가정사

캐리 피셔는 1956년 10월21일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의 연예인 집안 2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대에 프랭크 시내트라와 견주던 팝가수 에디 피셔였고 어머니는 뮤지컬영화의 고전 <사랑은 비를 타고>(1952)로 유명한 데비 레이놀즈였다. 유년기는 보통의 행복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엄청난 바람둥이로 곳곳에서 염문을 퍼뜨리고 다니던 에디 피셔는 가정에는 소홀한 무책임한 가장이었고, 당대의 스타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불륜 관계를 맺으면서 가정의 평화는 파탄나고 만다(심지어 테일러는 데비 레이놀즈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기에 이 불륜은 교황청으로부터도 비난받았다). 이혼이 있은 후 캐리 피셔는 줄곧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며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았고, 2010년 에디 피셔가 임종하기 직전에야 병문안을 가서 부녀간에 화해할 수 있었다. 유년기에 겪어야 했던 불안한 가정환경은 훗날 마약중독과 이혼 등 그녀가 겪을 개인사의 방황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청소년기의 캐리 피셔가 연기 이외에 몰두한 것은 바로 문학이었다. 가정사의 불행을 잊으려는 듯 다양한 고전문학을 섭렵하고 시 창작에 열중했던 이 시기의 경험은 그녀에게 문필가로서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게 된다. 1973년 캐리 피셔는 어머니인 데비 레이놀즈가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인기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리바이벌한 <아이린>에서 사교계에 막 진출한 상류층 여성 역할을 맡으며 처음 공연의 경험을 가졌고, 런던의 왕립중앙연극담화원(Central School of Speech and Drama)에서 18개월간 체계적인 연기 수업을 받는다. 할 애시비 감독, 워런 비티 주연의 <바람둥이 미용사>(1975)에 단역을 얻어 영화계에 데뷔하게 되는데, 연기자로서의 활동을 병행하면서 학업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나중에는 세라 로런스 대학에 진학하지만 이 또한 졸업장을 얻지는 못하고 중도에 그만두어야 했다. 이 무렵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를 송두리째 뒤바꿀 ‘어떤 작품’에 출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스타워즈> 시리즈였다.

<한나와 그 자매들>

<스타워즈>의 후유증, 그리고 작가의 길로

레아 공주 역의 캐스팅에 있어서 캐리 피셔와 마지막까지 경합한 후보는 조디 포스터였다고 한다. 이때 조지 루카스는 캐리 피셔가 지닌 나이에 맞지 않은 성숙한 인상과 기품이 공주이면서 능숙한 정치가인 레아의 캐릭터에 적합하다고 여겼고, 계산은 맞아떨어졌다. 영화는 천문학적인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그녀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찾아온 유명세의 부담은 젊은 배우로서는 다 감당해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 촬영 중에도 약물에 의존하는 일이 잦았으며, 링고 스타와 조지 해리슨이 출연한 TV영화 <링고>, 브로드웨이 연극 <신의 아그네스>에 출연하는 등 활동영역을 넓혀나갔지만 레아 공주로 굳어져가는 이미지를 극복할 순 없었다. <스크림3>(2000)에서 ‘레아 공주와 닮은’ 촬영소 자료실 관리자로 단역 출연해 “조지 루카스와 동침해 배역을 따냈다”는 투의 대사를 던지며 스스로를 조롱거리로 삼는 등 <스타워즈> 시리즈에 대한 애증을 드러내곤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약물중독 치료(친구 존 벨루시의 요절이 약물을 끊는 결정적인 계기였다)를 위해 병원과 재활원을 오가던 캐리 피셔는 80년대 후반 들어 문필가로 전업하면서 경력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1987년에 출간된 <변방에서 온 엽서>(Edge of Postcards)는 자신의 인생사를 바탕으로 쓴 반(半)자전적 소설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이를 원작으로 한 마이크 니콜스의 영화 <헐리웃 스토리>(1990)의 시나리오 또한 손수 집필한다. 그외에도 여러 편의 소설과 논픽션을 써내 베스트셀러에 올리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성공적으로 다졌고, 크레딧에는 표기되지 않지만 할리우드영화의 각본을 다듬고 교정해주는 대본 닥터로 활약해 <리쎌 웨폰>(1987), <시스터 액트>(1992), <후크>(1992), <라스트 액션 히어로>(1993), <웨딩 싱어>(1998) 등의 각본을 손질하기도 했다(작가로서의 유작이 된 <프린세스 다이어리스트>에서는 <스타워즈> 출연 당시 해리슨 포드와의 비밀 연애를 털어놓아 화제가 되었다).

2016년 7월에 촬영을 마치고 편집과 후반작업 중인 <스타워즈 에피소드8>가 캐리 피셔의 공식적인 유작이 될 예정이다. 누가 뭐래도 그녀의 배우 경력 중 가장 빛났던 역할은 역시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 이래 쭉 맡아온 레아 공주 역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명배우의 반열에 두기는 어렵지만, <스타워즈> 시리즈를 사랑하며 성장해온 이들에겐 지워지지 않을 불멸의 아이콘으로 오랫동안 함께할 것임이 분명하다. 어둠의 포스가 다시 은하계를 위협하는 이 절박한 시기에 레아 공주는 지상에서의 일을 마치고 우주로 돌아가 포스의 영이 되었다. 그리울 것이다. “포스가 함께하길.”(May the for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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