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입사 전, 영화평론가 공모 당선은 물론 게임비평상공모전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한 경력도 있는 ‘겜수저’ 송경원 기자와 그냥 봐도 게임 캐릭터 같은 윤혜지 기자가 고생한 이번호 특집은 게임 원작 영화들의 찬란하고도 어두웠던 역사다. 개인적으로 보태고 싶은 영화는 대전액션게임 <스트리트 파이터>의 범아시아적 인기에 힘입어 일찌감치 영화화됐던 홍콩영화 <스트리트 파이팅>(원제 ‘초급학교패왕’, 1993)이다. 당시에는 정말 전자오락실에서 열에 아홉은 다 <스트리트 파이터>를 하고 있었고,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깡말랐던 내 별명은 바로 ‘달심’이었다.(-_-;) 아무튼 당시로선 유덕화가 베가, 곽부성이 류, 장학우가 가일, 정이건이 켄, 구숙정이 춘리를 연기하며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했던 <스트리트 파이팅>은 그들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누가 왕정 감독 영화 아니랄까봐 심지어 춘리가 두명이나 등장했던 황당한 영화였다. 몇년 전 <도둑들> 촬영차 방한했던, 바로 그 <스트리트 파이팅>에서 달심을 연기했던 임달화를 인터뷰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보고자 그 얘기를 꺼냈다가, 그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스트리트 파이터>는 본의 아니게 게임 원작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일본 만화 원작 영화인 <성룡의 시티헌터>(1992)에서 멋지게 영화화된 바 있다. 역시 짬뽕 패러디의 대마왕인 왕정 감독이 당대 인기 있는 영화, 만화, 게임까지 다 긁어모았던 것이다. 사립탐정 시티헌터인 성룡이 느닷없이 혼다도 되었다가 곧바로 근육질의 춘리 분장도 한 채 액션을 펼쳤다. 마치 게임 속 캐릭터를 보는 것 같은 액션을 CG로 제법 실감나게 구현해내며 나름 ‘병맛’의 재미를 줬던 영화였다. 어쩌면 이번호 특집에도 쭉 열거되는, <스트리트 파이터>를 영화화한 그 모든 작품들을 통틀어 가장 즐기며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룡의 시티헌터>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얘기가 당연히 아니라, 이번호 특집의 요지처럼 그만큼 게임의 영화화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달았다는 얘기다.
한편, 영화와 게임 이미지의 만남을 기사로 다루는 지금, 시각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독법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존 버거의 사망 소식을 접하는 느낌이 묘하다. 시각예술에 관한 에세이 <다른 방식으로 보기> <말하기의 다른 방법> <보는 것에 대하여> 등을 썼던 그는 탁월한 미술평론가이자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이기도 했다. 오래전 이른바 ‘영화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모 영화비평 교실을 수강했을 때가 기억난다. 강사가 루이스 자네티의 <영화의 이해>와 데이비드 보드웰과 크리스티 톰슨의 <필름아트>는 당장 덮고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와 존 버거의 <이미지>를 읽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거라 했다. <카메라 루시다>에서 특정한 이미지가 나에게 쏘아져 날아오는 화살과 같다는, 즉 이미지란 것에는 이유 없이 끌리지만 뭔가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의미의 푼크툼(punctum), <이미지>에서 “사물을 본다는 행위는 언어보다 선행한다”거나 “이미지는 언어보다도 훨씬 더 정확하고 풍부하다”는 존 버거의 말을 새겨듣는 것이 더 좋을 거란 얘기였다. 따로 또 같이,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해법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이후 존 버거의 책은 언제나 인상적인 가르침을 줬다. 다음호에 그에 관한 상세한 기획기사를 실을 예정이다.
끝으로, 쭉 이어온 #영화계_내_성폭력 연속기획의 일환으로 한국여성민우회와 공동주최로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라는 이름의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자세한 내용은 14쪽 ‘포커스’ 기사 참조). 1월16일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소년회관 3층 바실리오홀에서 오후 2시에 열린다. 중요한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