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직 직장인 구재필(한성천)의 하루는 오늘도 빡빡하게 돌아간다.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와는 양육권을 놓고 싸우는 중이고, 장모는 수시로 전화해 막말을 퍼붓는다. 연속으로 승진에서 미끄러져 짜증나는데 상사는 실적으로 쪼아대는 것도 모자라 부정까지 독촉한다. 그나마 재필의 사정을 이해하는 동생 재숙(황보라)은 갑자기 큰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피로한 퇴근길, 집에 돌아와보니 난데없이 별거 중이던 아내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다. 경찰은 막무가내로 재필을 용의자로 묶어둔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지만 재필의 머릿속은 상사가 시킨 업무를 출근 전까지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소시민>은 세상의 수많은 소시민들의 이미지로 시작하고 끝을 내는 영화다. 재필은 그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입사 때의 청운의 꿈 따윈 멀리 던져버리고 오로지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주어진 일을 한다. 한성천은 특유의 억울해 보이는 표정, 처진 어깨와 느릿한 걸음, 어떠한 의욕도 호기심도 없어 보이는 얼굴로 아주 보통의 직장인을 성실히 연기한다. 재필을 둘러싼 상황도 현실감이 넘친다. 황당하기까지 한 영화 속 사건들은 뭘 어떻게 하면 저 지경까지 갈 수 있나 싶지만 살다보면 가끔씩 나의 일만 이렇게 꼬이고 꼬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장된 캐릭터들이 편의적으로만 쓰였단 인상을 남기는 점은 아쉽지만 영화는 그보다 강력한 공감, 가끔은 ‘냅다 퇴사를 지르는 용기’도 필요함을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