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어느 배급사의 송년회 풍경. 그곳 배급사에서 영화 몇편 찍었던 인연으로 직원들이 항상 자기네 대표는 부르지 않고 나를 불러 홍어탕에 소주로 조촐하게 한해를 마감하는 자리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잠시, 금세 표정들이 굳어진다. 배급사가 곧 문 닫을 처지에 놓였다고 토로한다. 월급은 차곡차곡 밀렸고, 더이상 손 벌릴 곳도, 곳간도 텅 비어 도저히 차기작들을 배급할 여력이 없단다. 마지막 회식 자리가 된 듯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시네마달’ 이야기다. 국내 유일의 독립다큐멘터리 배급사를 표방하며 2008년 설립 후 현재까지 200여편이 넘는 다큐멘터리를 배급해왔던 곳이다. 곁에서 지켜본 바 워낙에 가진 게 없어 항상 위기였고 문 닫는다는 소문이 수시로 돌았지만 언제나 보란 듯이 그 자리를 지키며 한국 다큐멘터리의 견인차로 엔진을 돌려왔었다. 믿기지 않아 배급사 대표에게 정말이냐고 물어보았다. 그토록 자존심 강한 사람이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떨구는 걸 처음 봤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답은 뻔하다. <다이빙벨>을 비롯한 ‘세월호 영화들’ 때문이다. <다이빙벨> <나쁜나라> <업사이드 다운>으로 이어지는 연이은 세월호 다큐영화들을 개봉한 곳이 시네마달이다. 그렇게 덩치 큰 부산국제영화제마저 <다이빙벨> 한편 때문에 모질게 할퀴었던 박근혜 정부가 아니던가. 한편도 아니고 연달아 세월호 영화들을 세상에 내놓는 배급사가 얼마나 미웠겠는가.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에 따르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시네마달의 내사를 직접 지시했다. 직원들 통장 내역까지 샅샅이 뒤진 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고분고분 독립영화 배급-마케팅을 지원했을 리 만무할 터다. 털어봤자 먼지밖에 없는 이 영세 배급사는 지난 몇년간 영진위 지원이 모두 끊긴 채 고사되어 끝내 단말마에 당도했던 것이다.
‘블랙리스트’를 통해 문화계를 검열하고 입막음하려던 박근혜 정부, 시네마달의 경우만 보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 보인다. 곧 문을 닫게 생겼기 때문이다. 현재 독립영화인들은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와 별도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영진위 블랙리스트’를 공개하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세월호 영화 때문에 굴지의 국제영화제를 뒤흔들고, 영세 배급사의 목을 조르고, 심지어 관련 영화인들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려 정부 지원에서 배제했던 박근혜 정부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 유치찬란함 덕에 독립영화계는 불신과 상처만 남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시네마달이 없어지는 건 독립영화계의 큰 손실이다. 그동안 대추리, 용산, 강정, 밀양,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4대강, 세월호 등 한국의 낮고 아픈 자리들의 속내를 지치지 않고 들려줬던 배급사의 아득한 상실. 돈 안 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설움을 보듬다가 그렇게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 아마도 시네마달의 이 운명은 한국의 그 낮은 자리들의 가혹한 처지를 상징하는 날것의 풍경일 것이다. 지난해 겨울의 촛불만큼이나 뜨겁게 2017년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고통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