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가 되는 영화들은 보통 인생의 어느 한 모멘텀과 그 영화가 잘 맞아떨어져서 인생에 각인되는 영화일 텐데 나는 어릴 때부터 영화 보기를 좋아해왔고 심지어 25년간 영화 마케팅 일을 해왔기 때문에 한편을 꼽는다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1년에 20편 내외의 영화를 마케팅하며 그 영화들로 기뻐하고 슬퍼하고 좌절하고 환희하면서 보내는 삶이라 그 어느 하나 내 인생의 영화가 아닌 것들이 없기에 오늘은 어떤 녀석을 소환해볼까 시작한 고민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영화평론가였던 남편은 자신을 영화로 이끌었던 강렬한 한편의 인생 영화로 <나쁜 피>를 단 1초의 주저함 없이 얘기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난 그가 부러웠다. TV로 영화를 보아왔던 내게 초등학교 1학년 때 스크린이라는 거대한 경험을 하게 해주었던 <황금박쥐>부터 잠자고 있던 사춘기 소녀의 연애 세포를 일깨워주며 잠 못 드는 밤을 선사했던 <사관과 신사>, 눈물 콧물 다 빼며 원없이 펑펑 울려 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의 힘을 느끼게 해주었던 <람보>, 내게 고고학자라는 구체적인 꿈을 갖게 해주었던 가장 애정하는 시리즈인 <인디아나 존스> 등등 동시에 떠오르는 영화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대표작이 없는 허전함이란….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아니, 제목에 <에린 브로코비치>라고 다 써 있는데 대체 그 영화 얘긴 언제 나와?’라고 슬슬 인내심과 밀당을 할 것 같아 이제 그 영화 얘기를 해보려 한다.
32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리 많지도 않은 나이인 것을 그때는 뭐가 그리 조바심이 났는지. 영화사 기획실에서 일하다 홍보사를 만들어 독립하고 나름 3, 4년 잘나가다 문을 닫고 앞으로 뭘 하고 살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던 시절. 그 당시엔 영화 마케터로 취업할 수 있는 회사도 극히 적었고 회사를 다시 만들자니 첫 사업 실패로 인한 부담감이 너무 컸고 30살이 넘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하던 때였다. 통장 잔고의 압박과 함께. 그때 마케팅사를 같이 해보자는 아는 분의 부름으로 ‘영화인’을 만든 지 반년 만에 만나게 된 영화가 바로 <에린 브로코비치>이다.
두번의 이혼 경력, 세 아이, 통장 잔고 16달러가 전부였던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여자가 우연히 일하게 된 변호사 사무실에서 서류 정리를 하다 대기업의 비리를 발견하고 피해 주민들을 도와 승소한 실화를 그린 영화였다. 그때 그녀의 나이 32살. 사전 시사를 하며 얼마나 울었던지. 밑바닥을 치며 당장 하루 앞이 보이지 않는 하루하루를 살면서도 어쩜 그렇게 당당하고 씩씩하게 받아내는지. 그게 오기일 수도 악일 수도 있겠으나 그런 에린의 모습을 응원하게 만드는 줄리아 로버츠는 어쩜 그리 예뻐 보이는지! 돈이 필요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 그녀를 성공적인 삶으로 이끈 것은 직업이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가 맡은 서류 정리만 열심히 했다면 그녀는 적당한 급여로 생활비를 벌었겠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몰입하며 자신의 삶을 구제한 것이었다. 용기, 뻔뻔함, 끈기 그런 것들이 내 막연한 두려움에 위로와 희망과 투지를 주었던 것 같다. 잔고보다 중요한 것은 의지이며 월급 자체보다 월급을 받으며 나를 개발하고 일깨울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도 함께.
어떤 이는 그건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기회는 환경이 주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을 더 강하게 각인시켜준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 이 영화는 나뿐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이들, 특히 여성들에게 감동을, 용기를,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인생 영화를 묻는 질문에 이 영화를 꼽았던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때 용기를 준 영화였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내 인생의 영화들은 많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영화와 함께하는 삶이기에.
이 글을 쓰며 앞으로 다가올 내 인생의 영화들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려본다.
신유경 영화 마케팅사 영화인 대표. 여행을 즐기며 요리를 취미로 26년째 영화 마케팅을 하고 있는 두산 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