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 수사물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액션이 근사한 영화더라.” <공조>를 본 많은 이들이 전하는 관람평이다. 짜릿한 낙하 액션부터 절도 있는 주체격술까지, 남북 형사들의 공조수사를 조명하는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 시퀀스로 보는 이들의 눈을 자극한다. 이러한 액션이 가능했던 데에는 <최종병기 활>(2011), <용의자>(2013) 등 충무로 액션영화 장르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던 무술팀 ‘트리플 A’의 활약이 한몫했다. 트리플 A의 대표인 <공조>의 오세영 무술감독과 이 작품의 카스턴트를 담당한 서정수 코디네이터, 북한 형사를 연기한 배우 현빈의 테스트 촬영을 담당한 이재남 무술팀원을 만나 주요 액션 시퀀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트리플 A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기사 말미의 인터뷰를 참고하시길.
주체격술과 시스테마
오세영 무술감독은 <공조>의 액션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데에는 영화 제작자인 윤제균 감독의 제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타이 액션영화 <옹박: 무에타이의 후예>(2003)처럼 몸과 몸이 부딪히는 강렬한 물리적 에너지의 액션영화를 만들어보자는 게 윤제균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었다. <옹박> 스타일의 맨몸 액션을 소화하려면 배우가 물리적 충격을 있는 그대로 감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기 때문이었다(<옹박>의 주연배우 토니 자 역시 무에타이와 가라테, 태권도 등을 두루 섭렵한 만능 무술인이다). <공조>의 무술팀은 북한 형사 림철령(현빈)이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점에 착안해 북한의 군사무술인 주체격술을 기본으로 하는 액션을 고안했다. 주체격술 자체가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무술은 아니다. 북한 출신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액션영화, <용의자>(역시 오세영 무술감독이 참여했다)와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등이 이미 주체격술을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이들 영화와 <공조>의 차이점이 있다면 <공조>쪽이 보다 긴 호흡으로 주체격술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절도와 강직함의 무술인 주체격술에 화려함을 덧붙이는 건 러시아의 특공무술인 시스테마다. “소련의 물리학자들이 경호원들을 위해 고안한”(오세영 무술감독) 무술인 시스테마는 “얼마만큼의 힘으로 어느 정도의 충격을 가했을 때 상대방이 어떤 타격을 입는지”를 과학적으로 설계한 무술이다. 오세영 무술감독은 시스테마 액션을 설계하며 러시아 본토에서 시스테마 지도자 자격을 공인받은 유일한 무술인, 유대경 시스테마코리아협회장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캐릭터와 밀접하게 호흡하는 액션
<공조>의 무술팀 스탭들은 배우 현빈의 뛰어난 스턴트 실력이 <공조>의 롱테이크 액션 시퀀스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한다. 현빈이 연기하는 북한 형사 림철령은 한때 상사였던 북한 특수부대 출신 차기성(김주혁)에게 모든 것을 잃은 인물이다. 림철령의 분노와 집요함은 대사가 아니라 그가 선보이는 몸의 움직임에 의해 전달되어야 한다는 게 김성훈 감독의 생각이었고, 감정을 실은 액션을 선보이기에는 빠르고 현란한 편집보다 롱테이크 촬영이 더 적합했다. 현빈의 스턴트 파트너로 주체격술과 시스테마를 함께 연습한 이재남 무술팀원은 액션 연기에 임했던 현빈의 모습을 이렇게 소회한다. “현빈씨와 트레이닝을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잘못하면 창피 당하겠는데?’ 이름 있는 배우들과 함께 무술을 연습하다보면 건성건성하는 분들도 간혹 있는데 현빈씨는 달랐다. 무술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반했고 더 열심히 합을 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한편 “대사량이 많았던”(김성훈 감독) 남한 형사 강진태(유해진)가 선보이는 액션은 ‘생존형’에 가깝다. “본격적으로 무술을 익힌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액자를 깨거나 테이블을 집어던지는 등 ‘올드’한 액션을 선보인다는 정도의 컨셉만 잡았다. 그런데 유해진 배우가 굉장히 스마트하더라. 본인이 캐릭터를 구축한 다음 강진태라는 인물이 할 법한 액션을 오히려 무술팀에 제안했다. 림철령이 보여줬던 ‘휴지’ 격투 장면(64쪽 ‘무기가 될 수 있는 그 소품’ 참조)을 강진태가 따라한다는 설정도 유해진 배우의 아이디어였다. 림철령은 되는데 강진태는 안 되는, 난감한 상황으로부터 코믹함을 유도하려 했던 것 같다. 대단한 센스다.”(오세영 무술감독)
이태원에서의 추격 액션
‘그놈’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 차기성의 부하 박명호(이동휘)는 남북 공조수사의 중요한 단서다. 그 역시 차기성, 림철령과 마찬가지로 한때 특수부대 출신이었기에 도주하는 박명호를 추격하는 과정이 순탄할 수만은 없다. 대한민국의 도심, 그 가운데서도 혼잡한 이태원을 배경으로 하는 추격 액션 시퀀스는 <공조> 무술팀이 가장 공들여 완성한 장면이기도 하다.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부분인데 김성훈 감독과 함께 박명호의 동선을 짜다보니 액션의 규모가 커졌다. 배우(현빈)가 차에 매달리는 장면을 찍으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부터 시작해서 박명호가 탈출하는 계기를 무엇으로 잡을 것인지까지 김성훈 감독과 끊임없이 상의했다.”(오세영 무술감독)
추격전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번화가인 이태원이라는 점이 관건이었다. 차량 30대에 200여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는 이 장면을 제한된 시간 안에 찍기 위해 모든 스탭이 초긴장 상태였다고 한다. 현빈이 본촬영에 나서기 전 림철령 역의 테스트 촬영을 맡았던 이재남 무술팀원은 “새벽 2시 반부터 리허설을 시작해 8차선 도로의 몇 백미터 되는 거리를 열번 이상은 뛰어야” 했고, “달리는 차량 속 스탭들이 잡고 있는 와이어에 의지해 차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야 했다”고 고백한다. 한편 림철령이 박명호를 쫓아 달리는 차량 사이로 위험천만하게 질주하는 장면에서는 오세영 무술감독이 이끄는 무술팀 트리플 A에 소속된 무술감독들이 총동원되었다. <악의 연대기>(2015)의 김신웅 무술감독과 <끝까지 간다>(2013), <퀵>(2011)의 최동헌 무술감독, <하이힐>(2013)의 최태환 무술감독과 드라마 <무정도시>(2013)의 김상용 무술감독은 달리는 차량을 직접 운전하거나 차량들이 충돌하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카스턴트에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적절한 순간에 차를 멈출 수 있어야 하고, 적절한 순간에 충돌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스턴트 액션을 설계한 서정수 코디네이터의 말이다.
고공 낙하 액션
저렇게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무사할까? <공조>의 등장인물들에게는 중력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추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건물 혹은 고가도로 아래로 서슴없이 뛰어내리는 ‘낙하 액션’은 위험천만해 보이면서도 통쾌하다. 관객의 ‘설마’를 가볍게 무시하고 낙하하는 장면을 ‘진짜’로 보여줬을 때의 쾌감. 김성훈 감독이 무술팀에 요구한 건 이처럼 리얼리티에 근접한 액션이었고 고공 낙하 액션 시퀀스는 부상 방지를 위한 치밀한 설계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오세영 무술감독은 “와이어를 설치했지만 기본적으로 아래에 무엇이 있을지를 보지 않고 뛰어내리기에 굉장히 위험할 수 있는 액션”이라고 설명한다. 낙하 액션에 직접 참여한 이재남 무술팀원은 “5~6m 높이의 건물에서 정확한 목표지점에 착륙하기 위해 테스트를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나중에는 자신감이 생겼다”라며 촬영을 거듭할수록 와이어를 당기는 힘을 줄여나갔다고 말했다. 림철령과 박명호가 높은 곳에서 떨어진 뒤 착지하는 과정의 물리적인 충격이 리얼하게 느껴졌다면 그건 무술팀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과 정교한 와이어 액션 덕분일 것이다.
무기가 될 수 있는 그 소품
박명호의 흔적을 좇아 들어간 사무실에서 철령과 진태는 명호와 마약을 거래하는 조직폭력배들과 마주한다. 이때 선보이는 철령의 액션이 압권이다. 그는 임기응변으로 사무실에 놓인 종이컵에 휴지말이를 집어넣은 뒤 이 소품만으로 거대한 몸집의 조직폭력배들을 일망타진한다. 시나리오상에서 이 장면에 사용되는 소품은 빈칸으로 남아 있었다. ‘무기처럼 보이지 않되 무기가 될 수 있는’ 소품을 찾는 건 오세영 무술감독과 무술팀 스탭들의 주요한 고민이었다고 한다. “원래는 잡지를 돌돌 말아서 그걸 이용해 액션을 설계해볼까 했었다. 그런데 잡지는 너무 흔하잖나. 다양한 소품을 고민하다가 문득 예전에 TV에서 종이컵 위에 자동차를 올리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만큼 종이컵의 강도가 상당하니 그 속을 꽉 채우면 상당히 강도가 센 무기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종이컵 액션’의 아이디어를 낸 서정수 코디네이터의 말이다. 물에 휴지를 적신 종이컵으로 거구의 등장인물들을 녹다운시키는 전무후무한 액션 장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터널 액션
림철령과 강진태가 도주하는 차기성을 쫓아 속도감 넘치는 추격전을 벌이는 터널에서의 카체이싱 장면은 <공조>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오세영 무술감독은 “벽이 있는 터널이라는 공간의 특수한 구조를 이용해 차가 벽을 타고 넘어가는” 액션 시퀀스를 구상했지만 “제작 여건상 세트로 제작된 터널이 아니라 실제 터널을 활용해야 했기에” 생각만큼 화려한 장면을 연출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장면은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관계를 액션으로 형상화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차기성이 타고 있는 차량은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모조리 부수고 지나가는 반면, 철령과 진태가 타고 있는 차는 그가 부숴놓은 것들을 피하거나 케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컨셉이었다.”(오세영 무술감독) 카체이싱 장면을 설계한 서정수 코디네이터는 터널에서 울산대교로 이어지는 액션 시퀀스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처음 합의한 속도는 60km였는데 촬영하다보니 100km까지 나오더라. 김주혁씨나 현빈씨의 경우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총을 쏘는 장면이 있었기에 속도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액션 연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무리 없이 소화해줬다.”(서정수 코디네이터)
<공조>의 액션을 만든 사람들
무술팀 트리플 A를 소개합니다
<공조>의 이재남 무술팀원, 서정수 카스턴트 코디네이터, 오세영 무술감독(왼쪽부터).
<용의자>와 <최종병기 활>, 그리고 <퀵>. 한국 액션영화의 계보 속에서 새로운 방점을 찍었다고 평가받을 법한 작품에는 늘 이들의 존재가 있었다. 오세영 감독이 이끄는 무술팀 ‘트리플 A’ 이야기다. ‘올 어바웃 액션’(All About Action)의 약자를 뜻하는 트리플 A는 이준익 감독의 천만 영화 <왕의 남자>(2005)를 첫 작품으로 화려하게 출발했다. 지금 현재 트리플 A에 소속되어 있는 스턴트맨은 모두 30명이다. 무술팀 경력만 33년차, 트리플 A의 대표작들을 진두지휘한 베테랑 스턴트맨 오세영 감독과 성룡의 무술팀인 성가반에서 활동하는 이인섭 대표가 함께 팀을 이끌고 있다.
오세영 무술감독은 무술팀 트리플 A의 차별화된 특성이 “구성원들의 다채로운 색깔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획일화된 무술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야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소화할 수 있기도 하고. 주짓수가 특기인 친구에게 굳이 다른 무술을 강요하지 않는다. 단, 영화적으로 봤을 때 매력적이고 멋진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14살 무렵 성룡 영화 <취권>(1978)을 보며 쿵후를 배우기 시작했고, 오뚜기무술단의 막내로 17살 때부터 무술팀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오세영 무술감독은 ‘성룡 사단’의 운영 방식을 현장에서도 적용하려 한다. “성룡 영화의 엔지 장면을 보면 성룡이든 홍금보든 원표든 늘 즐겁게 웃고 있다. 나는 영화 현장은 다 그렇게 돌아가는 곳인 줄 알았다. (웃음)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큰소리를 내지 않으려 한다. 화를 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공조>의 카스턴트를 담당한 서정수 코디네이터는 고등학생 시절 오세영 무술감독과 같은 체육관을 다니던 사이다. <형사: Duelist>(2005)와 <구타유발자들>(2006), <퀵>과 <최종병기 활> 등에 무술팀으로 참여한 그는 <용의자>를 기점으로 트리플 A에 합류했다. 이런 장면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현란했던 지동철(공유)의 자동차 액션 장면에서 카스턴트를 맡았던 이가 바로 서정수다. <공조>에서도 오세영 무술감독이 액션의 큰 밑그림을 그리면 그 밑그림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설계하는 건 서정수 코디네이터의 몫이었다. “카스턴트로는 국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실력이다. 뭐랄까. 타고난 감각이 남다르다. 나는 아이디어를 막 던지는 스타일인데, 그 아이디어가 현실화되게끔 기가 막히게 액션을 디자인해온다.”(오세영 무술감독)
아직 트리플 A 소속은 아니지만 오세영 무술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스턴트맨 이재남은 <공조>에서 현빈의 대역과 테스트 촬영을 맡아 늘 동선을 함께했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했지만 평소 무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서울액션스쿨 15기로 등록했다. 남다른 신체비율 덕분에 현빈과 이정재(<빅 매치>), 김수현(<리얼>) 등 톱스타의 대역을 맡았다. 연기자 못지않은 신체적 조건과 이종격투기부터 주체격술까지 다양한 장르의 무술을 소화하는 그를 두고 오세영 무술감독은 “미래 한국영화의 액션을 맡을 차세대 주자”라고 평했다. “또래 친구들 가운데 가장 핸섬하고 스마트하다. 그게 가장 중요한 점 아닌가.” 덧붙이자면 인터뷰 장소에 나온 세 사람은 중국 출장으로 인터뷰에 함께하지 못한 김태강 무술감독(오세영과 함께 <공조>의 공동 무술감독 크레딧으로 올라 있다)의 부재를 크게 아쉬워했다. <공조>의 캐릭터에 맞는 액션을 설계하는 데 그의 역할이 주요했기 때문. “우리끼리 인터뷰에 나간다니까 김태강 감독에게 ‘흑흑’이라는 문자가 왔다. 좋은 액션을 만들어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꼭 좀 써달라.”(오세영 무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