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우리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2014)를 무려 줄리엣 비노쉬로부터 훔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아연실색했다. 배우 마리아(줄리엣 비노쉬)의 대본 연습을 매니저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이 거드는 장면은 압권이다. 스튜어트와 비노쉬의 이 신은, 연극의 리딩인 동시에 마리아와 발렌틴의 진실이 담긴 암묵적 대화로 성립해야 한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극중 아마추어답게 지나치게 세련되지 않으면서도 예리하게 흐름을 탄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그녀 안에 언제나 존재했던 과민성과 몽환적 기운을 마침내 스크린에 구현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과 <퍼스널 쇼퍼>(2016)에서 다시 손을 잡았다. 2016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이 영화에 대한 평자들의 반응은 갈렸으나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에 대한 불만은 드물었다. 2016년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가진 그녀와의 인터뷰를 이제 전한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전작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 이어 <퍼스널 쇼퍼>에서도 배우의 어시스턴트 역을 맡았다. 어시스턴트라는 직업이 퍼스낼리티에 끼치는 영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진심으로 타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뒷자리에 물러나 있는, 고용주를 모든 면에서 본인보다 앞에 두는 직업이다. 따라서 고용한 사람의 목적이나 그의 예술을 실현시키고 싶다는, 진심에서 나오는 동기가 없다면 매우 피로하고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이다.
-스타인 당신의 경우 쇼핑을 대신해주는 ‘퍼스널 쇼퍼’가 있나.
=레드카펫 행사 등에 협찬이 있고 스타일리스트가 있지만 쇼핑 대행은 미친 듯이 부유한 사람들이나 쓰는 매우 드문 어시스턴트다. 동시에 옷은 배우인 나의 일에서 매우 중요하다. 옷은 당신을 나이 들게 할 수도 있고 힘을 불어넣을 수도 있고 심각한 데미지를 줄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패션에 관심이 있나.
=시간을 들여 연구하거나 투자하지는 않는다. 물론 예술의 한 형식으로서 패션에 관심을 갖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패션에는 특유한 반짝거림과 유혹이 있고 우리는 모두 예쁜 것에 열광하는 인간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인기와 주목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부류가 끼어드는데 개중에는 겉치레에만 몰두하는 괴상한 사람도 많다.
-<퍼스널 쇼퍼>가 다루고 있는 심령술(spiritualism)에 대한 입장은.
=<퍼스널 쇼퍼>는 다분히 고독과 고립에 관한 영화다. 혼령과의 교감은 그 안에서 뭘 보느냐에 따라 타인을 매우 가깝게 느끼게 만들기도 하고 극한의 고독에 빠뜨리기도 한다. 남에게 설명하기 힘든 만큼 고립을 부르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안에서 평온을 찾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정의할 수 없는 힘의 존재를 믿는다. 예컨대 우리가 어떤 대상에 즉각적으로 소름이 끼친다거나 끌리는 현상은 후천적 이성의 소관이 아니다.
-영화를 준비하며 영매나 패션에 대해 따로 리서치를 했나.
=관련자 인터뷰를 하진 않았지만 심령술과 관련해서는 보통보다 공기 중에 떠도는 기운에 예민하고 언어로 규정 가능한 확실성을 덜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음을 안다. 또한 <퍼스널 쇼퍼>의 모린은 관습적 의미의 영매는 아니다. 이를테면 심령술로 영업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녀에게 강령은 오빠를 찾는 과정의 사적인 발견이다. 패션에 관해서는, 13살 때부터 연기를 했기 때문에 여성배우를 위한 쇼핑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익히 알고 있다. 협찬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상대로 “이 바지 좀 잘라도 되나?” “재제작할 수 있나?” “그냥 챙기고 잃어버렸다고 해” 같은 대화가 오가는 일이다. (좌중 웃음)
-촬영지가 파리였는데, 어떤 경험이었나.
=파리에 가면 내가 투명해진 듯하고 살아 있다고 느낀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즐기는데 파리에 가면 이상한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퍼스널 쇼퍼>를 찍는 동안은 일주일에 엿새, 하루에 16시간 촬영하며 두달 반 동안 단 5일만 쉬어서 긴장을 풀 시간이 없었다. 줄곧 스위치를 끄지 않은 상태였고, 그런 혹독함이 영화에서도 느껴진다. 몸을 바로잡을 시간이 없었고 불면증으로 막바지엔 체중도 줄고 몹시 아팠다. 그러나 동시에 극한상황에서 오히려 발생하는, 아무것도 감당하지 못할 게 없다는 이상한 기분도 느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 같은 판타지에서 연기하다가 사실적 연기로 옮겨가는 경험 아니었나.
=장르영화에서도 나는 늘 리얼하게 연기하려고 했다. 페이크는 한 적이 없다. 원작이 있는 경우 책을 읽은 관객의 기대와 통제욕구가 있는데 나는 그런 요구에 방어막을 치고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또 <퍼스널 쇼퍼>의 심령술은 판타스틱한 요소로 보이지만 직접 신비체험을 한 많은 사람에게는 엄연한 리얼리티다. 그런 관점으로 연기했다.
-극중에 문자 보내는 장면이 많은데, 클로즈업된 손도 당신의 것인가.
=문자 교환도 생생한 상호작용이어야 하고 하나의 캐릭터이므로 휴대폰을 만지는 손의 인서트 컷이 전부 나의 클로즈업과 다름없길 바랐다. 긴장감과 이해의 감정, 질문의 태도를 손의 움직임에서도 전달받아야 하므로 대역을 쓴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어떤 순간에는 손의 떨림이 보이는 숏이 있다.
-실생활에서 문자 중독증은 없나.
=요즘 사람들 같은 보통 수준이지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본인 전화를 작동해 보이며- 이렇게 아무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본다. 목적 없이 그냥 시간만 보고 “음, 3시23분이네, 멋지군” 한다. (좌중 웃음) 스마트폰을 소유하면 볼 것도 없으면서 연신 들여다보는 행동이 디폴트다. 나는 소셜 미디어 계정은 없지만 문자 보내기는 좋아한다. 물론 대면만남만큼 깊이는 없을 테지만 문자가 일종의 새로운 언어라고 느낀다. 어떻게 구두점을 찍고, 단어 사이는 몇칸을 띄우고, 상대방이 답문자를 보내는 동안 떠오르는 점의 개수가 전하는 감정. 그런 것들이 흥미로워서 내가 보내는 문자의 포맷에 신경을 많이 쓴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도 문자를 애용하나? 그는 어떤 연출자인가.
=메일은 쓰는데 문자는 자주 안 하더라. 적어도 아사야스 감독의 한 버전은 잘 알게 됐고 우리 사이에 일을 쉽게 만드는 친밀함이 생겼다. 매번 정확히 단어로 규정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동의한다(agree each other). 아사야스와 있으면 내가 정말 보이고 있다는(visible) 기분이 든다.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알며 동조하고 북돋워준다. 그런 경험은 배우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대단히 근사하다. 아사야스 감독은 나를 안전한 장소에 데려다놓고 몰입할 수 있는 잠재력을 준다. 거장 중에는 미친 듯이 통제하고 배우의 연기를 소유하려는 감독도 있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접근법이다. 그러나 아사야스는 감독으로서 영화 프로세스의 시동을 걸되 영화를 관리하려들지는 않는다. 영화의 경로는 감독이 완전히 책임지지만 걸음 하나하나는 배우가 결정할 수 있다.
-피곤해 보인다. <퍼스널 쇼퍼>의 캐릭터에 너무 밀착했던 건 아닌가.
=나는 성격배우가 아니라 캐릭터 안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은 연기자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탈진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스토리의 속성 때문에 무척 피곤했다.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을 통틀어 모린은 아주 일시적으로만 자신에게 쾌락을 허락한다. 몸을 고되게 만들어 사고를 멈추기 위해서다.
-당신은 젊고 크게 성공했다. 커리어를 위해 어떤 일 선택 기준을 갖고 있나.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 지난 2년 동안 5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퍼스널 쇼퍼>가 그 마지막이다. 다음 일은, 얼마 전 제작비를 다 모은 단편을 연출하는 것이다. 배우와 감독은 언제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다니기 때문에 휴식이 없다. (안정된) 직업을 가졌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단편은 어떤 이야기인지 말해줄 수 있나.
=잠정적으로 <워터>라는 가제로 부르고 있다. 직선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단편은 나만의 영화학교다. 이 영화를 통해 실험하고 싶었고 내 스탭들을 만나고 싶었다. 출발은 4년 전 머리를 스쳐간 이미지였는데 왜 그 이미지가 중요한지 풀어내는 데에 2년이 걸렸다. 이제는 이미지를 넘어 꽤 구체화됐고 촬영준비를 끝냈다. 주제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10분짜리인데(2017년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된 영화 제목은 <워터>가 아닌 <컴 스윔>으로, 최종 완성 버전은 17분이다.-편집자) 무엇에 관한 영화인지 말해버리면 남는 게 뭐 있나. (좌중 폭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