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30일 줄리 크리스티, 케빈 맥도널드, 키라 나이틀리, 테리 길리엄 등은 웨스트민스터 공작인 휴 그로스베너 경에게 편지 한통을 보냈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2월26일(현지시각), 런던 메이페어에 위치한 그로스베너 스퀘어 공원에서,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이란 출신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세일즈맨>을 상영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다. 이 행사는 영국 영화산업을 이끌고 있는 감독과 배우들이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해 반발하면서 기획된 것으로, 그로스베너 스퀘어는 런던 내 미국 대사관 건물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이들은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특히 관용과 연민, 다문화 가치를 인정하는 런던에서 미국 정부의 그 같은 행정명령이 얼마나 시대착오적 발상인지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트럼프가 이슬람 7개국으로부터의 입국을 90일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하면서 영화 <세일즈맨>의 감독과 출연진, 스탭들의 시상식 참여는 불투명한 상태다. 아스가르 파르하디는 참석을 거부하겠다고 성명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편지에는 올해 아카데미 베스트 다큐멘터리 후보에 오른 <더 화이트 헬멧츠>의 프로듀서 조아나 나타세가라도 이름을 올렸다. 시리아 민방위 조직인 ‘화이트 헬멧츠’의 리더 라에드 살레와 사진작가 칼레드 카팁 등이 이슬람 7개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시상식 참석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나타세가라는 ‘화이트 헬멧츠’가 지난 노벨 평화상 단체 후보에 올랐었음을 밝히며,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휴머니스트들이, 테러리즘 위험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미국에 입국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라며 상황을 비꼬기도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이 편지의 서명란에 사인한 영화계 주요 인사들은 안드레아 아놀드, 조슈아 오펜하이머, 글렌 클로스, 마이크 리, 리들리 스콧, 앨리슨 오언 등 50여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