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피해자의 고통을 과거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연대의 가능성을 넓히다 <눈길>
2017-03-01
글 : 이예지

가난하지만 씩씩한 종분(김향기)은 부잣집 막내딸에 공부도 잘하는 영애(김새론)가 마냥 부럽다. 일본으로 유학간다는 영애를 보고 자신도 가고 싶다고 엄마에게 떼를 쓸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종분은 느닷없이 집으로 들이닥친 일본군에 끌려가 열차에 내던져진다. 거기엔 일본으로 유학을 간 줄 알았던 영애도 있다. 함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게 된 종분과 영애. 끔찍한 현실 속에서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집으로 돌아갈 날만을 꿈꾼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살아남았던, 혹은 돌아올 수 없었던 소녀들에게 보내는 연서 같은 작품이다. 소녀들이 옆방에 있는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는 손짓은 애틋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눈길은 하염없이 길고 서럽다. 재현의 윤리에도 충실하다. <눈길>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비극을 물리적으로 전시하지 않는다. 그들이 당한 직접적인 폭력 장면은 배제되고, 은유적으로만 전달된다. 사려 깊은 만큼 극적인 재미도 있는 작품이다. 꿋꿋한 ‘캔디’ 종분과 고고한 ‘아가씨’ 영애라는, 전형적으로 대비되면서도 매력적인 두 소녀를 설정해 캐릭터의 재미를 주고, 두 소녀의 관계가 변화해가는 모습을 포착하며 관계성을 흥미롭게 파내려나간다. 여기서 올곧은 두눈을 가진 김향기와 목이 긴 사슴마냥 고고한 김새론은 배역 그 자체로 보인다.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세대를 확장해,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을 과거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연대의 가능성을 넓히려 한 것도 의미 있는 시도다. 2015년 KBS에서 2부작 단막극으로 방영된 후 영화로 재편집돼 개봉하는 작품으로, <드라마 스페셜-연우의 여름> 등을 연출한 이나정 PD의 영화 입봉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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