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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싱글라이더> 이주영 감독
2017-03-02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싱글라이더>는 <밀정>에 이은 워너브러더스코리아의 두 번째 배급작이자 이창동 감독의 시나리오 지도, 배우 이병헌이 시나리오에 반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 제작 하정우((주)퍼펙트스톰필름), 최근 극장가에 흔치 않은 장르인 드라마의 도전이라는 점 등 제작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잘나가는 증권사 지점장에서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은 재훈(이병헌)의 시선을 통해 성공 위주의 경쟁구도 속에서 사느라 정작 중요한 가치를 잃고 있는 현대인을 조명한다. 광고감독으로 활동하다 불현듯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전문사 과정에 입학해 영화 연출의 길에 접어든 이주영 감독 개인의 경험 역시 <싱글라이더>에 영향을 미쳤다. 반전을 활용한 독특한 플롯 전개 안에 울림인 동시에 각성이자 고백의 톤을 이병헌의 안정된 연기에 차분하게 실어나른다.

-제작, 배급, 캐스팅 등 이 영화를 표현하는 화려한 수식 중 광고계 출신 감독의 입봉작이라는 점에서, ‘감독이 제일 약한’ 영화였다. (웃음)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더라. 누구지 하고 궁금해했지만 내가 털어도 뭐가 나올 게 없는 정말 신인이다. (웃음) 난 하정우씨도 모르고 계약하고 나중에 알았다. 작품은 제작비 25억원으로 크지 않지만 영화 시작할 때 워너 로고가 주는 영향이 아무래도 세더라. 톱배우가 참여해서 제작이 빨리 진행된 케이스다. 그런데 전체 28회차 중 23회차를 호주에 가서 찍었고, 호주 체류기간이 한달도 안 됐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15분만 넘기면 호주 스탭들에게 오버차지를 줘야 하니 정말 매일 즉석밥 먹으면서 쉬지 않고 일했다. 광고 촬영했던 헌팅, 경험들이 이번에 큰 도움이 됐다. 첫 작품이고, 아쉬운 점이 왜 없겠냐마는 후회는 없다.

-원작이 있는 드라마를 각색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이야기가 탄탄했다. 어떻게 이야기를 쓰게 된 건가.

=광고회사를 다니다 잘린 경험이 있다. 부당해고라는 생각에 화가 나서 사장님을 찾아갔다. 복수하겠다는 심정으로. 그게 시작이었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회의를 느끼고 영화 공부하러 대학원에 갔고,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해고당한 직원의 복수극으로 가면 장르가 완전히 달라진다. (웃음) 감독님의 현실은 재훈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톤으로 보이는데, 그 ‘투쟁여행’에서 찾은 게 무엇이었나.

=사장님이 그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광고 촬영을 하고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서 즉흥적으로 비행기 티켓을 결제했는데, 갑자기 산 표라 환승시간이 잘 안 맞아 가는 데 3일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분노의 감정이 수그러들었고, 피곤한 마음도 들더라. 그 정도로 화가 난 것도 나한테 보편적인 감정도 아니었고, 기분 때문에 거기까지 간 게 아니었을까. 이 영화 제목이 원래 <기분>이었다. 재훈의 상황에 내 이야기도, 내 주변 사람 이야기도 많이 투영했다.

-증권회사 직원을 소재로 했다. 재훈은 소위 ‘기러기 아빠’다. 안정된 소득으로 가족 모두를 영어권 국가에 유학 보낸 가장이다.

=광고회사 생각도 안한 건 아니다. 안정적이고 화려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상위 10%. 주변에서 많이 보았던 잘나가는 광고감독, 대행사 사람들을 생각했다. 광고계에서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사람들 생활이 재훈 부부와 비슷했다. 나도 한때는 그 10%에 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고. 재훈의 직업을 증권사 지점장으로 설정한 건 시나리오 쓸 즈음 ‘동양 사태’(2013년 동양그룹이 동양증권을 통해 개인투자자 4만여명에게 1조3천억원대의 사기성 기업어음과 사채를 발행해 피해를 입힌 사건)를 접하면서였다. 그 큰 부채를 직함도 높지 않은 사람들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 사태가 충격적으로 다가오더라.

-증권회사 지점장이었다 추락한 재훈과 워킹홀리데이로 2년간 모은 돈을 사기당한 지나(안소희)가 호주에서 만나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쩌면 만날 일 없는 동떨어진 두 사람이 만나는데, 둘의 접점을 무엇이라고 봤나.

=재훈은 가족을 유학 보내 상류층 궤도에 오르는 게 최상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지나도 재훈과 같은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사이 얼마나 아껴 돈을 모았겠나. 그런데 환차액을 조금 더 받으려는 생각에 발목을 잡힌다. 투자와 환전 모두 비슷하다고 봤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약한 지점이 아닐까. 미래를 준비하는 게 필요 없는 건 아니지만 다들 그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사는 게 고단하다고 봤다. 이런 사회적인 환경, 시스템이 결국 개인을 고립시키는 거라고 본다. 개인을 부추기고 경쟁시키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재기할 수 없게 눌러버린다. 나 역시 그런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고, 부당하다고도 생각한다.

-재훈과 아내 수진(공효진)에게서 오는 케미스트리가 다소 헐겁다. 부부 관계는 경제권을 가진 재훈에 의해 일방적으로 만들어지고, 부부의 과거를 보여주는 회상 장면에서도 수진의 반응숏만이 쓰인다. 반전을 위해 부러 의도한 장치인가 싶기도 하다.

=이병헌, 공효진 배우와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나는 재훈이 떠올리는 부부의 과거를 수진이 호주에 오기 2년 전으로 한정했다. 그렇다면 둘이 가진 아이가 4~5살 정도인데, 보통 그 나이의 아이를 둔 부모의 경우, 맞벌이를 하더라도 육아는 엄마 몫이다. 그런 일상이 쌓이다보면 더이상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게 된다. 그들 부부에게도 좋았던 시기가 있었겠지만 부부로서는 서로에게 소홀한 시간이었다.

-반전이 주는 충격효과가 꽤 센 영화지만 초반부터 그 반전이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할 정도로, 설정들을 보여주고 간다. 꽁꽁 숨겨 막판에 비밀을 꺼내놓는 것과는 조금 다른 전개였다.

=사실 이 영화에 CG가 좀 사용됐는데, 그 반전을 위한 장치였다(반전이 드러나는 부분이라 이 기사에서는 어느 부분이 CG인지 밝히지 않겠다). 나는 숨기지 않는 방향으로 영화를 찍었다. 편집으로 관객을 속이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적당한 지점에서는 관객이 알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반전을 알고 보더라도 회자가 될 수 있는, 가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플롯의 구조로 볼 때 연상되는 소설이나 영화가 있는데, 참고한 작품이 있었나.

=플롯적으로 영향받은 건 없다. 사람들이 언급하는 영화나 책을 참고하지도 않았다. 그보다 시나리오 쓸 때 샘 멘데스의 <아메리칸 뷰티>(1999), 우디 앨런의 <블루 재스민>(2013) 같은 작품을 많이 봤다. 비슷한 지점은 없지만 가족, 어긋나는 관계 등에 대한 부분에서였다.

-시나리오를 본 이병헌이 관심을 표하면서 캐스팅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혹 내 인생의 운을 다 끌어다쓴 게 아닐까 걱정이 들더라. 이번 작업하면서 이병헌 배우가 가진 영화에 대한 애정을 실감했다. 촬영 끝나면 숙소 들어가서 시나리오를 정독하고 아침에는 나한테 꼭 뭐라 하고. 많이 혼났다. 그 때문에 딴생각할 틈이 없었다. (웃음) 첫 영화에 너무 큰 배우와 작업을 했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작업을 할지에 대한 길을 보여주었다.

-반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지도교수였던 이창동 감독은 초고 때 계속 ‘재미없다. 더 재미있게 못 쓰냐’고 퇴짜를 놓았다고.

=이건 아닌 것 같다, 다시 해와라, 왜 못 바꾸지, 이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셨다. 상심해서 1년간 시나리오를 접었었다. 영화를 더이상 하면 안 되겠다 하는 상실감도 컸던 때였고, 그동안 내가 뭐했지 자괴감도 들고 막 그러던 때였다. 그렇게 1년여를 보내다가 아는 분이 시나리오 좀 보여달라고 하셔서 꺼내보았다. 시나리오 쓰면서 그분 아들 이야기를 넣어서 궁금해하신 거였다. 그분도 영화하시는 분이었는데 시나리오 보더니 꼭 영화로 만들어보라고 권하시더라.

-완성된 영화에 대해 이창동 감독은 뭐라던가.

=아직 못 보셨다. 사실 선생님 도움이 컸다. 그때 지적을 받으면서도 매 장면이 아까워 빼지를 못했다. 그런데 1년 지나고 영화를 하겠다 결심하고 다시 영화를 보니 버릴 게 보이더라. 재훈이 호주로 가족을 찾아간 분량이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한달이었다. 감독님이 재미없다고 하셔서 그게 보름이 되고, 결국 7일이 됐다. 감독님이 말한 ‘자의식’이 이런 거구나 싶더라.

-영화 안 하는 사이에는 계속 광고 일을 했었나.

=삼성 갤럭시노트2, 쌍용자동차 티볼리 광고 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딱 ‘먹고살 만큼만’ 했다. 왜냐하면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두 마리 토끼 잡겠다고 하다가 나중에 하고 싶은 영화를 못하게 되고 싶지 않았다. 영화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었다. 솔직히 나는 학교에서 쓴 시나리오가 선정되고, 제작도 빨리 하게 된 거라 그 기간이 아주 오래 걸린 건 아닌 것 같다. 이창동 감독님이 정신교육을 잘 시켜주신 것 같다. 멋있고 화려한 게 우선이라 생각했던 성향도 많이 바뀌었고, 영화를 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끼쳤다. 앞으로 인간의 이야기도 살리면서, 내가 해왔던 영상 연출의 장점도 같이 살릴 수 있는 영화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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