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이정렬의 <변호인> 국가란 국민입니다
2017-03-08
글 : 이정렬 (법무법인 동안 사무장)

감독 양우석 / 출연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임시완 / 제작연도 2013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나라 최고법인 헌법, 그중에서도 제일 앞에 나오는 제1조가 정하는 바다. 법률을 전공했다는 필자는 물론이거니와 정의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아끼는 조항이다. ‘민주’라는 말,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말 모두 대한민국, 즉 우리나라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라는 것을 표방하고 있다.

즉, 헌법 제1조를 보면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말이어서, 이에 따르면 국민은 주체, 국가는 객체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우리는 학교에서 국가를 구성하는 3대 요소에 대해 배운 바 있다. 국민, 영토, 주권이 그것이다. 이렇게 배웠던 필자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 영화는 바로 <변호인>이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송강호)는 수사관인 증인 차동영(곽도원)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혼란스러웠다. 국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일 뿐이라고 배웠는데, 국민이 바로 국가라니…. 아무리 영화라 하지만 그래도 변호사가 중고생도 아는 지식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나 싶었다. 아니, 송 변호사가 증인의 증언 태도나 내용에 화가 난 나머지 흥분해서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영화를 한번 더 보았다. 그 장면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집중해서 보았지만,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송 변호사는 왜 그렇게 이야기했을까? 송 변호사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을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한번 더 보았다. 세 번째.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송 변호사는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그 이야기가 나온 상황을 보자. 증인이었던 차 수사관도 국가 그리고 충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고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고, 게다가 고문까지 했으면서도 그것이 자기 나름의 국가에 충성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송 변호사는 이것을 지적했던 것이다. 국가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바로 국민을 위해서 아닌가? 그런데 국가를 지키겠다고 하면서 그 국민에게 고통을 주다니…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닌가? 송 변호사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하고 있었다. 그래서 ‘국가란 국민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던 것이다.

영화 <변호인>을 처음 접했을 때 필자는 20년 넘는 국가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휴식 중이었다. 판사 생활을 마쳤으니 이제는 변호사로 활동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판사로 재직하는 동안 많은 상처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과연 우리나라에서 법치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대한민국이, 법조계가 법과 원칙대로 운용되고 있는지 깊은 회의감을 안고 있었다. 더럽고 추악해 보이는 우리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변호사등록신청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변호인>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아니 우리 국민으로부터 오랜 시간 받아온 혜택과 은혜를 국민에게 돌려드리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되었다. 변호사등록신청을 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행히 법무법인 사무장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주 만족스럽다. 남들은 말한다. ‘부장판사까지 한 사람이 뭐 하러 사무장을 하느냐’라고 말이다.

변호사가 더 나은 것인지, 사무장이 더 나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어느 자리에 있든, 어떤 직책을 가지든,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를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변호사등록이 언제 될지, 아니 되기는 할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필자는 국민들에게 받았던 혜택을 갚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좋다. 이것이 바로 영화 <변호인>이 필자에게 준 영향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 인생의 영화라 할 만하다.

이정렬 법무법인 동안 사무장. 전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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