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people] <눈길> 이나정 감독
2017-03-09
글 : 이예지
사진 : 오계옥

“영애야, 살아 있니.” 작고 여윈 손이 벽을 두드린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던 소녀들. 그들이 걷는 눈길이 훤하고 서럽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눈길>은 2015년 KBS 2부작 단막극 드라마로 먼저 방영됐다. 재편집해 영화로 개봉한 까닭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눈길>을 연출한 이나정 감독은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2015),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2012)를 공동 연출하고 <드라마 스페셜-연우의 여름>(2013) 등을 연출한 KBS 드라마국 소속 PD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그와 <눈길>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기존 드라마 단막극으로 반영된 작품을 재편집해 영화로 개봉했다.

=KBS에서 처음부터 영화로 기획했다. 방송 콘텐츠는 일본에서 보여주기 어려운데, 영화면 영화제에 가거나 상영을 하기가 더 쉽더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드라마 기획 단계에서부터 영화적 컨셉을 잡았다.

-위안부 소재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류보라 작가가 <눈길> 기획안을 가져왔을 때, ‘더 늦기 전에 해야 하는’이란 말에 공감이 가더라. 이후 여러 자료를 찾아봤는데, 당시 소녀들이 남긴 기록들을 본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엄마가 보고 싶다”, “한국에 돌아가면 공부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 등 우리가 어렸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이 소녀들이 나와 다르지 않게 느껴졌기에 만들어봐야겠다는 용기가 났다.

-자극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을 최대한 배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직까지 위안부 생존자들은 마음에 상처를 품고 있는데, 그걸 영화적 스펙터클로 표현해버리면 되겠나. 영화적 볼거리로 소비해버린다거나 소재주의로 흐르지 않기 위해 대본 쓸 때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일본군을 표현할 때도 하나의 개인 인격체, 특정한 가해자로 그리지 않고 군국주의하의 전쟁이란 비극 속에 하나의 덩어리처럼 표현하기 위해 실루엣, 뒷모습, 풀숏 등으로 찍었다.

-찍는 과정에서도 미성년자 배우들을 많이 배려했다고.

=아동 성폭력 장면을 찍을 때 어떻게 찍어야 상처가 안 되는지에 대해 해외 사례와 촬영 방식들을 열심히 찾아봤다. 그 장면이 어떤 목적인지 배우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찍으려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공간에 있다거나 직접적인 접촉이 있어서는 안 되더라. 일본군과 아이들이 방 안에 있는 장면은 컷을 따로 찍어 붙였고, 일본군이 벨트를 매거나 옷을 추스르는 등 성적인 것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찍을 때는 아이들이 없는 상태에서 찍었다. 성적인 것을 연상시키는 소품이 아이들과 한 공간에 있지 않도록 경계했다.

-위안부 소재에 사려 깊게 접근한 한편, 종분(김향기), 영애(김새론)라는 캐릭터성이 강한 인물들로 풀어내 흥미롭게 볼 수 있더라. 배우 이미지와도 딱 맞았다.

=작가님과 나는 <연우의 여름>부터 같이 했는데, 둘 다 서로 다른 두 인물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에 흥미를 갖고 있다. 캐스팅도 우리가 생각한 캐릭터를 그대로 구현할 수 있게 돼 기뻤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김)향기와 (김)새론이의 실제 성격은 반대다. 향기는 극중에서 밝고 적극적인데 실제 성격은 차분하고, 새론이는 극중에서 쓸쓸하고 서정적인데 실제로는 말괄량이에 에너제틱하다. 어찌됐든 균형이 잘 맞았다. (웃음) 디렉션을 주지 않아도 현장에서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며 만들어가더라.

-차기작은 뭔가. 영화를 계속할 생각인가.

=KBS 드라마 <쌈 마이웨이>를 준비 중이다. 세상의 조연으로 살아왔던 아이들이 다시 한번 꿈을 위해 달리는 경쾌한 이야기다. 드라마는 여자 캐릭터 위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는 남성 캐릭터 위주인 게 아쉽게 느껴진다. <우리들>(2015)이나 <미씽: 사라진 여자>(2016)처럼 여성 캐릭터가 주축이 되는 영화가 많으면 좋겠고, 나도 그런 영화를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