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뒤에 집에서 혼자 먹는 도시락과 맥주 한캔에 만족하는 남자. <오버 더 펜스>의 요시오는 조용한 지방 마을에 살면서 마치 도를 닦듯 아무것도 즐기려 하지 않는 인물이다. 오다기리 조에 최적화된 역할 같다. 너무 특이해서 오히려 평범한 일상의 배경이 되어버리는 독특한 그만의 표현력은 이 영화에서도 십분 활용된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잔잔할 것 같으면서도 폭발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오다기리 조는 오답 같은 정답의 연기를 보여준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졌던 인터뷰를 전한다.
-신작 촬영 때문에 멀리서 왔다고.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신작 <에르네스토> 촬영 때문에 몇달 동안 쿠바에 머물렀다가 바로 부산에 왔다. 체 게바라와 함께 게릴라 활동을 했던 일본계 볼리비아 이민 2세 프레디 마이무라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 사토 야스시의 자전적인 소설이 원작인데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정도의 부담은 없었나.
=야마시타 감독이 20대였던 주인공 나이를 40대로 각색했다. 내가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게 해주려고 그랬다고 하더라. 요시오라는 인물 자체가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라곤 하지만 더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요시오는 소박해 보이지만 상처가 많고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요시오를 연기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가 아주 보편적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아오이 유우가 연기하는 사토시는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또 망가지기도 하는데 요시오는 그런 점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 드러나면 사토시와의 관계에 관객이 흥미를 잃을 것 같았다. 평범한 척하는 연기라고나 할까. 속은 비정상이지만 애써 웃어넘기려는 모습을 신경 썼다.
-사토시와의 데이트 장면이나 심지어 싸우는 장면에서도 예측 불허의 연기가 튀어나온다. 두 사람이 합을 짜는 과정이 궁금했다.
=둘 다 사전에 아무런 짜임 없이 연기하는 걸 좋아한다. 아오이 유우와 <무시시> 이후 10년 만에 다시 만난 현장이었는데도 여전히 서먹서먹했다. 그래서 별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고. 상대의 연기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연기하는 게 현장의 재미였다. 의논 없이 했다. 대본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 수정하는 정도였다.
-어느새 아버지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자신의 나이를 언제 실감하나.
=요즘에 내가 잘 못 먹는다. (웃음) 예전에는 현장에 가면 도시락을 두개씩 먹곤 했는데 그렇게 먹지 못할 때 나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DVD로 예전 영화를 볼 때도 지금의 나이를 자각하게 된다. <오버 더 펜스>는 주인공이 나와 또래여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이었다. 40대만이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 이번 영화를 돌아보면, 내가 이제야 이런 연기를 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
-출연작 중에서 <밝은 미래>(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2003)를 가장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앞으로도 영화에서 실제 당신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맡게 된다면 어떤가.
=작품을 고를 때는 직감으로 선택한다. 이게 재미있겠다 싶으면 도전하는 거다. 이 영화의 인물 나이가 20대 중반이니까 지금 내가 20대 중반의 나이를 연기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게 재미있고 의미가 있다면 얼마든지 하겠다.
-스스로 넘어보고 싶은 자신만의 한계가 있다면.
=사실 나는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나의 한계라고 생각하며 산다.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다른 직업도 가져보고 싶다. 인생에는 다른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물론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어 하는 것에 이 직업이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만둬야 할 필요까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