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씨네 인터뷰] <보도지침> 배우 봉태규
2017-03-16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갑자기 왜? <씨네21>에서 인터뷰를?” 배우 봉태규는 의아했던 모양이다. 인터뷰 장소로 오는 내내 매니저와 <씨네21>이 인터뷰하자고 한 ‘저의’를 추측해본 것 같다. “예전에는 인터뷰 전날이 돼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이번엔 오랜만이라 그런가. 만나자는 이유가 나조차 궁금했다. (웃음)” 배우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배우가 듣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기자의 대답은 ‘배우 봉태규가 궁금하다’였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최근 봉태규는 Mnet <싱스트리트>에 출연해 밴드 봉키즈(봉태규, 서사무엘, 로바이페퍼스)의 보컬로 노래했고, KBS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1에서는 사는 모습을 공개하며 성별을 떠난 가사노동하기에 대해 말했다. 인스타그램에선 패셔니스타로 더 알려졌다. 그사이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에 출연했지만 영화 속 봉태규는 <미나문방구>(2013) 이후엔 볼 수 없었다. 그런 봉태규가 4월21일 시작하는 연극 <보도지침>을 통해 배우로서의 활동에 재시동을 걸려 한다. <보도지침>은 전두환 정권하에서 당시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고 무죄판결을 받게 된 사건을 극화한 것이다. 봉태규는 보도지침을 폭로한 기자 김주혁 역을 맡았다. 묵직한 사회파 드라마 속 봉태규의 얼굴이라니. 데뷔작 <눈물>(2000)에 이어 <방과후 옥상>(2006), <두 얼굴의 여친>(2007) 등에서 봉태규는 2000년대 초·중반의 지질하고 나약한 청춘의 얼굴이었다. 비루한 청춘에 대해 쉬이 동정하거나 두둔하지 않는 방식의 연기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임상수 감독은 “마스크가 되게 괴상한데 아주 귀엽기도 하고, 천하지 않은 귀한 끼가 있는 얼굴이라고 봤다. 천박한 10대 악동을 연기해도 일정한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당시의 봉태규를 말하기도 했다. 연기에 대한 자기 고민의 시간을 거친 뒤, 봉태규는 어떤 표정을 보여줄까. 그것이 궁금했다.

-<씨네21>과는 2009년 <청춘 그루브>(2010) 촬영현장에서 만난 뒤로 정말 오랜만이다.

=그때가 벌써 언젠가. <청춘 그루브> 이후의 인터뷰들은 대체로 상당히 방어적이었다. 한동안 내가 그랬다. 아내(사진작가 하시시박.-편집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성격, 생각 등 내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그런 뒤 <씨네21>과의 오랜만의 만남이라 어떤 말을 하게 될까 나조차 궁금하더라.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1에서 ‘살림은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라는 등 성 역할에 따른 가사노동에 대해 소신 있게 말하고 익숙하게 가사노동을 해 호감을 갖게 된 시청자들이 많은 걸로 안다.

=그렇게 봐주셨다면 다행이다. 아직까지도 배우가 예능 활동을 하는 데 대해 염려의 시선이 많지 않나. 한때 나도 정극배우가 돼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능 프로그램이 내게 들어온 여러 작품 중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배우’라기보다는 더 넓은 범주에서의 예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1 때 방송에 나가지 않은 내용 중엔 보다 솔직한 발언도 많았다. 제사를 준비하면서도 그런 말을 했다. 여성들은 자신의 조상도 모시지 못하는데 남의 조상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게 아닌가. 어머니에게도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으셔도 된다, 내가 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어머니 입장은 또 그게 아니더라. 아들을 둔 어머니들끼리 하는 대화방에선 아내가 욕을 많이 먹는 모양이더라. 아들을 고생시킨다는 게 이유다. 중요한 건 내가 이런 게 문제라고 말만 할 게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해야 하는 거다. 시청자들도 기가 막히게 그걸 아신다. 평상시에 그런 문제를 생각하고 직접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방송에서 티가 났을 거다. 결혼하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됐고 그게 자연스레 방송에 비친 것 같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면 그건 전적으로 아내 덕이다.

-연극 <보도지침>으로 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 정권 차원에서 행한 언론 통제라는 점에서 시의성이 있는 작품이고, 묵직한 사회파 드라마다. 배우 봉태규의 그간의 코믹한 이미지와 상당히 다른 방향이다.

=흔히 사람들이 봤을 때 내가 잘할 거라고 기대하는 희극 연기로 돌아와야 했다면 부담이 더 컸을 거다. 그렇지 않아 좋았다. 또 요즘 언론이 굉장히 중요하잖나. 예컨대 해직 기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복직을 못함으로써 우리가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했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보도지침>은 언론 구성원, 그 귀한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다. (연극 데뷔작인) <웃음의 대학>(2009) 때 운이 좋았다. 300석, 500석, 1천석 규모의 소·중·대극장 공연을 두루 경험했다. 그러면서 소극장 공연에서의 아쉬움이 남았었다. 극장이 작으면 흔히 말하는 무대 발성까지 하지 않아도 배우가 관객에게 연기를 전달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이 있다. 예컨대 목소리를 죽이면 관객이 되레 무대에 집중한다. 이번 <보도지침>에선 그런 걸 시도해보려 한다.

-기자 김주혁 역을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작품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한국 현대사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어왔다. 언론사 총파업과 해직 언론인들에 관한 팟캐스트도 굉장히 많이 찾아 들었고.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예상 가능한 톤의 연기만 생각했을 거다. 실화라는 점에만 초점을 맞추면 연기 톤이 너무 비장해질 것 같기도 하다. 현재의 언론인들이 처한 상황, 그 분위기를 알고 그걸 자연스레 연기에 녹이려 한다.

-요즘 지향하는 연기 방식이 생긴 건가. 과거와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을 것 같다.

=예전엔 온·오프되듯, 연기할 때와 평상시의 모습에 일부러 거리를 뒀다. 지금 현재 가장 연기를 잘하는 분을 꼽으라면 김창완 선배를 말하겠다. 라디오 방송에서도 연기할 때와 같다. 어떻게 하면 바로 지금의 내 목소리, 평상시의 내 표정을 최대한 캐릭터와 밀착시킬까가 지금 내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연기의 방향이고 내 고민이다. 상황도 극적인데 배우의 연기까지 극적일 필요가 있을까. 얼마 전 톰 포드 연출의 <녹터널 애니멀스>(2016)를 보면서 영화의 모든 대화 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카페 등에서 보이는 대화 신과 분명 달랐다. 인물의 목소리의 볼륨의 차이가 있다. 내가 주목하는 리얼리티는 그런 거다. <잠수종과 나비>(2007)를 봐도 상황은 극적인데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것을 보여준다. 대사 읊조리는 것도 그렇다. 이런 방식이 솔직하고 리얼하다고 본다. 아, 근데 이런 게 요즘 흐름과 안 맞는 거 아닌가. (웃음) 그래도 한동안 연기를 하지 않다보니 안 좋은 버릇이 자연스레 없어진 건 다행이더라. 위기의 순간마다, ‘그렇지, 이거지. 자 받아라!’라며 쓰던 연기 테크닉이 있었는데 그게 없어졌다. (웃음)

-이번 연극에서 최근 지향하는 연기 방식을 처음으로 시도하고 그 반응을 확인하게 될 텐데.

=그렇다. 무대 연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욕을 먹을 수도 있다. 연출가와 얘기를 나누며 최대한 그 부분은 잘 만들어가고 싶다. 자기 확신이 있냐고? 그보다는 내 욕심이다. 하지만 확신이 될 수 있도록 잘해야지. 배우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직업이니 나의 확신을 타인에게 설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 설득이 안 되는데 고집 부리고 싶진 않다. (관객이) 선호하는 배우라면 내 방식대로 밀고 갈 수 있을 텐데. 자주 얼굴을 비추면 그 배우의 방식에 관객이 익숙해지면서 만들어지는 설득력이라는 게 있으니 말이다.

-현재 대중이 선호하는 배우가 아니라는 자기평가를 내린 건가.

=지금은 아니지 않겠나. 호감과 선호는 다른 거니까. 내 인스타그램의 팔로워가 6만7천명 정도 된다. 내가 옷을 차려입고 찍은 사진을 올리면 많게는 4천여명이 ‘좋아요’를 누르지만 내가 연기를 한다고 올리면 1천명 정도 넘긴다. 한동안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게 싫어서 연기가 아닌 딴 일을 많이 했다. 글을 썼고, 그게 조만간 책으로 묶여 나온다. 패션에 더 집중했고 그쪽 분들을 더 알게 됐다. 인과응보다. 하하. 그때 배우로서 뭔가를 더 했으면 더 좋은 배우가 될 수도 있지 않았겠나.

-지금은 없어진 <씨네21>의 ‘듀나의 배우 스케치’ 꼭지에서 영화평론가 듀나는 봉태규에 대한 애정어린 직언을 한 적이 있다. 요약하면, 봉태규는 “로맨스의 감이 꽤 좋은 배우”인데 “한예슬과의 로맨스가 무르익으려던 바로 그 순간, 정극배우가 되겠다고 <논스톱4>를 떠난 그의 결정에 화가 난다”, 그리고 “그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지금의 스티브 카렐이 그런 것처럼)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로맨스영화에 잘 적응하는 중년의 배우가 되어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마지막 문장의 기대, ‘지금 로맨스영화에서 봉태규를 다시 본다면’에 대한 대답이 궁금해진다.

=그 글을 진짜 좋아한다. 배우를 하면서 후회했던 딱 한순간이 <논스톱4> 하차다. 정극을 해야 한다는 쓸데없는 생각에.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아무도 그걸 얘기해주지 않았는데 듀나 평론가가 딱 꼬집었다. 듀나의 평을 좋아한다. 어서 영화를 해야 듀나의 평을 들을 텐데. 현재 한국영화계에 로맨틱 코미디 제작이 많지 않지만, 하면 정말 잘할 자신이 있다. 음, 내가 뿌린 이미지가 있어서 한동안은 나나 감독님들에게 큰 도전이 되겠지만. (웃음)

-배우는 상당한 감정노동을 한다. 연기가 그러하며 여러 분야의 스탭들과 매 작품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선 조금 편해졌나.

=새 학기 들어가면 되게 힘들어하는 아이였다. 주변 사람들 다 챙기는 게 배우의 미덕이라 여길 때도 있었고. 근데 내가 힘들어지더라. 이젠 그 부분을 놔버렸다. 예전엔 회식 장소엔 반드시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일 때문에 못 가면 못 간다고 정확히 말한다. 반면 한번 마음을 나눈 사람들과는 굳이 연락을 하지 않아도 연이 이어지는 것 같다. 좋은 감정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눈물> <바람난 가족> <그때 그사람들>을 함께한) 임상수 감독님도 그렇고 매니저와도 9년째 함께하고 있다.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2006)의 김성훈 감독님, <두 얼굴의 여친>의 이석훈 감독님도 지금 다 잘돼서 기쁘다. 내가 그때 그들을 신뢰한 게 틀린 선택이 아닌 것 같아서 더욱.

-영화 작업 계획은 좀 잡혀 있나.

=일이 하나도 없을 때도 매니저에게 한번도 말을 꺼낸 적이 없다. 근데 올 초에 처음으로 (뭔가 작업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길 전했다. 그 친구가 되게 묵직하게 받아들이더라. (웃음) 당장은 없지만 해야겠지.

-<싱스트리트>에서 봉키즈가 최종 우승했을 때 “봉키즈는 여기서 끝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그때 동요 미션이 있었다. 작업한 곡을 아들에게 들려주니 정말 좋아하더라. 어른과 아이가 함께 들을 수 있는 동요 앨범을 내고 싶다. ‘구르미’라는 이름의 동화 작업도 구상 중인데 직접 그림을 그려볼 생각이다(봉태규는 대학 진학 시 미술을 전공하려고 했을 정도로 미술에 관심이 많다.-편집자).

-지금 배우 봉태규의 ‘바람 1순위’는 뭔가.

=<눈물> 때 <씨네21>과 처음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땐 부끄러워 말을 못했는데, 당시 내 꿈은 <씨네21>의 표지를 촬영하는 것과 촬영현장에 내 이름이 새겨진 의자를 갖는 것이었다. 다 이뤘다고? 여한이 없다. 지금은 이렇다. 아내는 내가 한 작업들을 알고 있지만 장인, 장모님은 배우로서의 나의 모습을 잘 모르신다. 영화 작업을 해서 VIP 시사회에 장인, 장모님과 아내를 꼭 초대하고 싶다.

-오늘은 어떤 일정이 남았나.

=아내가 2주간 해외 출장을 떠났다. 어서 집에 가서 아이를 봐야 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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