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개인의 탄생
2017-03-22
글 : 김혜리

※<문라이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토니 에드만>

68세대 리버럴 아버지는 구조조정 전문가로 일하는 딸의 삶이 진정 안녕한지 어느날부터 적극 간섭하기 시작한다. 영화가 1/3이 넘어가도록 부녀는 닮은 데라곤 없어 보인다. <토니 에드만>의 기업 컨설턴트 이네스(산드라 휠러)는 창백하고 마르고 단단하다. 그녀는 피로도 상처도 딱 붙는 비즈니스 슈트와 킬힐로 동여매고 다닌다. 반면 은퇴 교사인 이네스의 아버지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는 덥수룩하고 육중하고 느리적거린다. 이네스는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정답을 말하려고 긴장하고, 빈프리트는 상대가 예상치도 못한 말을 하려고 벼른다. 부녀가 이루는 시각적 대조는, 한쪽이 벌거벗고 한쪽이 특별하게(?) 차려입은 후반의 한 대목에서 정점을 이룬다. 하지만, 이 아버지와 딸은 결국 얼마나 닮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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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도 먹고 먹이는 행위가 중요한 영화다. 식사가 그냥 대화 장면에 마땅한 맥락이 없어서 들어가는 설정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고비와 계기가 되는 음식들은 모두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일용할 양식이다. 못살게 구는 친구들을 피해 창고에 숨은 어린 샤이론(알렉스 히버트)을 후안(마허샬라 알리)이 데려가 처음 마주 앉은 장소는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처럼 보이는 동네 음식점이다. 통 말이 없는 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후안이 장난삼아 쟁반을 뺏자 꼬마는 놀랍게도 대들거나 대답을 들려주는 대신 고개를 푹 숙이고 차라리 먹기를 포기한다. 주인공이 얼마나 일찍 단념을 받아들인 인물인지 단적으로 드러나는 찰나다. 그날 저녁 후안과 테레사(저넬 모네이)의 집에서 샤이론은 다시 접시 하나에 담긴 간소한 식사를 한다. 그에게 대리 부모역을 하는 후안과 테레사의 식탁에서 샤이론은 오렌지 주스 한잔을 앞에 두고, 평범한 튀김에 포크를 놀리며, 자신에 대해 처음으로 고백하고 질문한다. 후안과 테레사가 샤이론에게 준 것 가운데 따뜻한 음식과 깨끗한 시트는 “네가 어떤 사람이 될지 결코 남이 결정하게 하면 안 된다”라는 교훈만큼이나 중요하다. 극중에서 샤이론은 곤히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두번의 아침을 엄마와 사는 집이 아니라 테레사의 집 침대 위에서 맞는다. 세월이 흘러 3부에서 성인이 된 샤이론에게 한끼를 만들어주는 이는 오랜 친구이자 유일한 사랑인 케빈(안드레 홀랜드)이다. (공교롭게도 후안의 고향인) 쿠바 음식점 요리사로 취직한 케빈은 십수년 만에 재회한 샤이론에게 ‘셰프 스페셜’을 대접한다.

애틀랜타에서 마이애미까지 먼 길을 운전해온 샤이론이 식당에 들어설때 딸랑거리는 방울 종 숏으로 시작해 샤이론과 케빈이 가게 문을 닫음과 동시에 울리는 방울 종 숏으로 마무리되는 재회의 식사 시퀀스는, 그 자체로 밀봉된 낙원이다. 시간의 밀도는 올라가고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진실이 옷깃을 푼다. 그래, 어쨌든 저들은 무사히 어른이 됐어. 이렇게 될 일이었어. 여태 샤이론의 30년 인생을 따라온 관객은 처음으로 휴식을 맛본다. 주크박스 덕택에 우선 왕가위 영화가 떠오르지만, 참았다 내쉬는 긴 날숨과도 같은 이 아름다운 시퀀스는 궁극적으로 비밀스런 안온함으로 가득한 허우샤오시엔의 러브 스토리 <쓰리 타임즈>의 1부로 기억을 이끌어간다. 그러나 감정의 협상은 어디까지나 미묘하다. 샤이론은 오랜만에 먼저 연락해온 케빈이 반갑고 한 공간에 있음에 행복하지만 그의 진의를 몰라 조심스럽다. 이미 20년 전 “(네가 약하지 않단 걸) 난, 알아. 하지만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잖아”라고 샤이론을 통찰했던 케빈은, 기억 속 친구가 얼마나 그대로인지 얼마나 변했는지 살핀다. 샤이론이 메뉴에서 고를 건지, ‘셰프 스페셜’을 먹을 건지 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자기를 바라보자 “여전하구나?”라고 미소 지으며 결정을 대신하는 케빈의 얼굴에서는 일종의 안도가 읽힌다. 배리 젠킨스가 두는 신의 한수는, 뜻밖에도 주방으로 들어가는 케빈을 따라가 굽고 데우는 동작을 찬찬히 지켜보는 연출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요리는 미식과 거리가 멀다. 데운 밥과 치킨, 구운 양파가 전부다. 영화는 넌지시 말하는 중이다. 서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박한 음식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이 시간과 바꿀 만한 것은 없다고. 음식을 올린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케빈은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포도주를 가져온다. 마시다 남은 하우스 와인, 겹쳐진 두개의 투박한 플라스틱 컵은 <문라이트>식 스페셜 디너의 완벽한 마무리다. 둘의 삶에서 어쩌면 길이 중요할 수도 있는 대화는 손님들의 주문과 계산, 전화 벨소리로 연신 끊겼다 이어지길 반복한다. 그리고 샤이론의 품성처럼 부드러운 점프컷이 조각난 시간을 봉합한다. 배리 젠킨스는 대화의 단절을, 숭고한 시간에 틈입하는 일상을 부정하지 않은 채 호흡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지 않은 채 시퀀스 바깥으로 걸어나간다. 나는 줄곧 숨죽이며 마음을 졸이고 다음 순간 감독의 현명한 판단에 감탄하며 케빈과 샤이론의 재회에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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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년 성장담인 <보이후드>와 <문라이트>를 비교하려는 충동은 자연스럽다. 특히 10살 샤이론이 당장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스쳐가는 경험을 스크랩한 <문라이트>의 1부는 인생의 ‘스냅 숏’을 이어가는 <보이후드>의 양식과 비슷한 점이 있다. 말하나마나 차이도 명백하다. <문라이트>는 세명의 배우가 다른 나이대를 연기하는 일반적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보이후드>와 달리 대체로 샤이론의 성장에서 결정적 이벤트를 따라간다. <문라이트>의 관객은 유년의 끝이 언제인지 정확히 지목할 수 있다. “아저씨, 마약 팔아요?” “우리 엄마, 마약 해요?” 후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어린 샤이론이 말없이 화면 밖으로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저씨가, 내가 싫어하는 엄마를 싫은 사람으로 만든 원인의 제공자라는 괴상한 진실에 직면한 것이다. 세상의 모순과 삶의 비논리성과 마주친 그날 샤이론은 유년을 뒤로한다. 그러나 가장 피상적이고도 결정적인 두 영화의 차이는 주인공의 인구적 조건에 있다. 메이슨(엘라 콜트레인)은 텍사스 중산층 이성애자 백인 소년이고 샤이론은 마이애미 빈민가 게이 흑인 소년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18년간 치명적 비극이나 상실이 나오지 않는 <보이후드>의 서사를 향한 비판에 대해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대다수는 우여곡절이 있지만 대체로 평탄하게 여기까지 왔다”라는 요지의 대답을 했으며 그것이 <보이후드>가 충실한 리얼리티다. 한편 마약, 빈곤, 범죄는 <문라이트>가 재현하는 인구집단의 특별할 것 없는 현실이다. <보이후드>는 일상성을 앞세운 예술영화, <문라이트>는 소수자의 ‘비참 포르노’ 사회문제 영화라고 가를 수 없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샤이론과 메이슨의 성장은 객관적 조건이나 문화를 바꾸는 위업은 아니나 본인 뿐만 아니라 그들을 염려하고 돌본 타인들에게 매우 귀중한 일이다. 30살 무렵의 샤이론은 객관적으로 마약을 거래하는 범법자지만 자기를 부양하고 정체성과 화해하고 꼭 해야만 하는 말을 발화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개인이 되었다. 두 영화는 희극도 비극도 아니다. <문라이트>가 훨씬 어두운 이야기지만 아픔과 외로움이 대종인 시간 속에서도 햇살과 바다는 아름답고, 행복한 찰나는 더욱 눈부시다. 두 영화 가운데 어느쪽이 더 희망적인가를 논하는 것은 내게 부질없어 보인다.

<히든 피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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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코스트너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흰 와이셔츠에 타이를 매고 옆 가르마를 탄 케빈 코스트너는 항상 1960년대에서 방금 도착한 사람처럼 보인다. <JFK>와 <D-13>에 이어 코스트너는 <히든 피겨스>에서 세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캐릭터 뒤쪽에서 다시 한번 60년대 공공기관원으로 분한다. 나사(NASA)의 책임자 엘 해리슨은 당대 많은 백인이 그랬듯 본인이 차별하는 줄 모르는 차별주의자다. 그는 캐서린(타라지 P. 헨슨)의 능력을 높이 사면서도, 유색인종 직원들이 매일 겪는 불이익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마침내 찾아온 엘의 각성도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능률의 차원에서 일어난다. 우주 탐사 경쟁자 소련에 패배한 큰 이유가, 유색인 멤버들의 능력을 충분히 북돋우고 활용하지 않아서임을 발견한 것이다. 케빈 코스트너의 연기는 말 그대로 ‘적당’하다. 강렬한 연기로 개과천선한 백인 남성 인물을 연기해 영화의 메시지를 훔치려 들지도 않고, 초점 거리 밖으로 물러나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기도 한다. 코스트너는 몇몇 장면에서 엘을 주변으로 밀어내도록 블로킹을 제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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