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송정률 / 제작연도 1979년
1979년 어느 날, 당시 일곱살이었던 나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감독 송정율, <오발탄>을 연출한 유현목 감독이 제작했다)을 보러 광화문 근처의 어느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 제목이 괴상하긴 했지만 태권브이가 나온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 태권브이다. 국적이 한국인 지구 평화의 수호자. 전 국민이 최소한 주제가 정도는 다 안다는 그 태권브이 말이다. 극장은 태권브이를 영접한다는 기대와 흥분에 휩싸인 일곱살짜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미래의 인류는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멸망의 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인류는 이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한다. 그 결과 탈레스별에 대기오염 제거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각 나라에서 전함을 보낸다. 하지만 항해 도중 파괴되거나 실종되기를 반복한다. 이에 한국의 김 박사는 이순신의 거북선을 본뜬 최강의 우주전함을 설계한다. 이 전함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태권브이의 부품이 필요한 상황이다. 훈이와 영희가 울면서 반대하지만 김 박사는 태권브이를 해체하기로 결정한다. 태권브이의 목, 팔, 다리가 차례로 분해되어 거북선 안으로 들어간다. ‘태권브이가 죽다니… 저렇게 죽다니… 지구 따위를 왜 지켜야 하는 거야? 태권브이가 없는 지구에 무슨 의미가 있어?’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솟았다. 대성통곡하는 아이도 있었다. 거북선이 탈레스별을 향해 출발했지만 일곱살짜리들은 이미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지루한 시간이 흘러가며 영화는 종반부로 치닫고, 거북선은 최대의 위기에 빠진다. 외계인 거대 로봇을 만난 것이다. 차라리 외계인을 응원하고 싶은 일곱살짜리들의 마음이 통했는지 거북선은 파괴 직전에 몰린다. 그때 반전이 일어난다. 힘차게 태권브이의 주제가가 울리더니, 거북선의 배 아래쪽이 열리며 태권브이의 팔, 다리, 머리 등이 튀어나온다. 그러고 차례로 합체! 완벽한 부활! 일곱살짜리들은 거의 동시에 의자 위로 뛰어올라 태권브이 노래를 합창하기 시작했다. 가슴은 감동으로 벅차오르고 뺨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며칠 뒤 나는 동네 일곱살짜리들을 모아놓고 침을 튀겨가며 부활한 태권브이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집 할아버지가 나타나더니 지금이 웃고 떠들 때냐며 철없는 것들이라고 혀를 차시는 게 아닌가. 박정희 대통령이 심복인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TV에서는 모든 방송을 중단하고 박정희의 영정을 배경으로 장송곡이 흘러나왔다. 장장 일주일 동안이나! 아마 일곱살짜리들은 대통령의 죽음보다 만화영화를 방송해주지 않는 것이 더 슬펐을 것이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2017년 3월 11일. 광화문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탄핵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사람들이 쏘아올린 축포의 불꽃이 광화문 하늘을 수놓자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일곱살짜리들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번졌다. 그 광경은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에서 태권브이가 부활하던 장면만큼 아름다고 감동적이었다. 폭죽 소리에 맞춰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러보았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정의로 뭉친 주먹 로보트 태권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 두팔을 곧게 앞으로 뻗어 적진을 향해 하늘 나르면 멋지다 신난다 태권브이 만만세 무적의 우리친구 태권브이.’
김태윤 영화감독. <잔혹한 출근>(2006)으로 데뷔.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이야기를 다룬 <또 하나의 약속>(2013),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그린 <재심>(2017)을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