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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보통사람> 김봉한 감독
2017-03-30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김봉한 감독은 인터뷰 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고 말했다. 장편 데뷔작이자 코미디영화 <히어로>(2013) 이후 약 4년 만에 내놓은 영화라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모태펀드로부터 투자를 거의 받지 못해 만만치 않은 펀딩 과정을 겪었고, 세상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개봉조차 불투명했던 영화가 아닌가.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영화 <보통사람>은 1987년 형사 성진(손현주)이 안기부의 기획 수사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누구나 기획 수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고, 그럼에도 영화는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한 사람은 보통사람이라고 강조한다.

-1975년 전국을 돌며 17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김대두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신문의 ‘오늘의 역사’ 코너에 ‘최초 연쇄살인마 김대두’라는 기사가 눈에 띄어 찾아봤다. 연쇄살인마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을까. 과거 기사를 찾아 읽었는데 이상했던 건 그가 잡히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검거 기사들이 일제히 쏟아졌다는 사실이다. 팩스가 거의 없었고, 전화 연결도 잘 안 되던 시절인데, 짐작건대 그를 잡고 있다가 기사를 내보낸 건 아닐까. 이상했다. 김대두의 국선 변호사를 찾아가 만났는데 그때 그 얘기를 하기 싫어했고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그분은 김대두를 착한 사람이라며 옹호하더라. 그분을 통해 김대두가 교도소에서 빼곡하게 쓴 글을 입수해 읽었는데 초등학교도 안 나온 사람이 맞춤법도 틀리지 않고, 오타도 없었다. 55일 동안 17명을 죽인 살인마가 그런 정신 상태일 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김대두의 행적이 전남 광산에서 서울까지 이어져 있는데, 그에게 서울은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이자 목표가 아니었을까. 사람을 죽여서라도 서울에 가겠다는. 그것은 희생을 감수하며 앞으로 나아갔던, 당시 권력의 중심에 있던 ‘그분’과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초고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김대두와 그를 쫓는 형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원래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1975년이라고 들었다. 1987년으로 바꾼 이유가 무엇인가.

=1975년이 배경이었던 버전은 이야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우울하고 암울했다. 아무리 부딪혀도 깨지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이야기였다.

-유신 암흑기였던 1975년보다 6월 민주화항쟁이 일어나는 1987년이 희망과 변화를 표현하기 수월했던 이유도 있었나.

=그런 의도도 있었다. 확실히 1987년으로 바꾸니까 드라마틱한 장치들을 많이 시도할 수 있었다. 카타르시스까지는 아니지만 보통사람이 이뤄낸 성취와 그럼에도 세상이 변하는 건 어렵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펀딩 과정에서 난관이 많았다던데.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간 투자자들마다 투자에 난색을 표했다. 시나리오가 안 좋아서 투자가 안 됐을 수도 있겠다. 보통 펀딩 진행 과정에서 모태펀드가 들어오지 않나. 지인도 자그마한 창투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와서 ‘(투자를) 못해주겠다’는 거다. 이 영화가 세상을 바꾸는 작품도, 정치적인 작품도 아니고,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인데. 최근 변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풍경과 비교하며 시의성 있는 이야기라고 얘기하는 분도 있다. 시나리오작가나 감독이 시의성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쓰는게 아니거든. 시의성을 예측할 수 있다면 글을 쓸 게 아니라 작두를 타야지. (웃음)

-제작과정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 없나. (웃음)

=없다.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다. (웃음)

-손현주의 어떤 모습이 성진 역에 필요했나.

=(손)현주 형이 <더 폰>(감독 김봉주, 2015) 찍을 때 시나리오를 드렸다. 최근 스릴러 장르를 많이 찍었는데 현주 형의 과거 드라마 속 소시민 모습을 더 좋아한다. 그의 사람다운 면모를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성진이 베트남전에 참전해 실수로 베트콩을 죽인 트라우마를 고해성사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는데 편집에서 잘려나갔다. DVD에 꼭 넣을 생각이다. 다음 작품에서는 액션영화 찍자고 꼬드기고 있다. (웃음)

-장혁이 맡은 안기부 실장 규남의 모델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인가.

=의도했다. 김기춘 전 실장을 염두에 두고 재구성한 캐릭터임을 드러내는 대사가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잘 찾아보시라. (웃음)

-추재진 기자(김상호)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이 있나.

=사회 초년생 시절, 사회부 기자 생활을 잠깐 했었는데 더러워서 못하겠더라. 경찰서를 출입했는데 아주 힘들었다. (웃음) 추 기자는 누굴 모델로 삼아 만든 캐릭터는 아니다. 다만 그가 정권의 거대한 힘에 맞닥뜨리게 되는 과정에서 모델로 삼은 인물은 의문사한 고 장준하 선생이다. 그때 그 시절 자료들을 보면 지금 풍경과 꼭 닮았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성진이 발발이 잡으러 간다고 경찰서를 나간 뒤 청량리역 앞에서 관제 데모에 동원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장면도 있었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설정한 장면이 아니라 그 시절 직접 본 풍경이었다.

-성진의 아내 역을 맡은 라미란은 말을 못하는 인물이라 대사가 없는데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전달이 되더라.

=그의 마음이 온전히 전달된다. 자막이 따로 필요 없다.

-안기부 기획 수사의 희생양인 태성 역을 맡은 조달환도 인상적이었다.

=(조)달환에게 살을 뺄 것을 주문했다. 나약함을 최대한 보여야 정권의 억압과 폭력이 극대화될 수 있으니까. 매일 몇 킬로그램을 뺐다고 보고해왔다. 달환이가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오르가슴을 두번 느꼈는데 하나가 <드라마 스페셜-추한 사랑>, 또 다른 하나가 <보통사람>이라더라. (웃음)

-이 영화는 먹고살기 위해 권력에 이용당했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밑바닥까지 추락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반성하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 당시 아버지들은 ‘많이 벌어다줄게’라며 큰소리치지 않았나. 자신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차압 딱지가 온 집안에 붙고, 남은 가족들은 지하 단칸방으로 내몰리고. 저마다 직업만 다를 뿐이지 아버지들은 그런 선택을 할 때 다른 가족들과 상의하지 않잖나. 어떤 의미에서 못된 아버지다. 하지만 성진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자신의 잘못을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판타지다. 그런 아버지가 실제로 어디에 있나. (웃음)

-태성은 기획 수사의 피해자고, 성진 또한 어떤 면에서 희생양이다. 영화는 보통사람 누구나 정권이 자행한 기획 수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려는 듯하다.

=영화 속 사건이 최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똑같지 않나(이 사건의 피고인 유우성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편집자). 무고한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는 사실을 영화 속 과거 사건을 통해 명확하게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속 사건이 2017년 한국 사회의 풍경과 닮았다는 얘기도 많다.

=촬영할 때만 해도 올해 개봉하긴 어렵겠다 싶었다. 세상이 조금 바뀌고 있다고 해서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럼에도 어느 시대든 보통사람은 살아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차기작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놀면서 시나리오를 많이 썼다. 다음 영화는 액션영화를 할까 생각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세월호 사건처럼 관군이 구해줄 줄 알았다가 왜군과 맞설 수밖에 없었던 의병들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야 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열심히 준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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