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영 매거진>에 연재된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만화를 오시이 마모루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뒤, <공각기동대>가 SF와 사이버펑크물에 끼친 파급력은 절대적이었다.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은 물론,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TV애니메이션, 소설, 게임 등 가능한 모든 장르로 제작된 원작의 ‘무게’는 무거웠다. 제작사 드림웍스가 기획 개발에만 6년 넘게 투자했다는 후문이다. ‘원작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한 루퍼스 샌더스 감독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2012)을 연출한 후 지난 3년간 온전히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의 미래세계를 스크린에 구현하는 작업에 매진했다.
-원작에 대한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었고, 참여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대학 시절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를 접했다. 당시 유일하게 꽂힌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5년 전쯤 시나리오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내가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작자 스티븐 폴과 몇번 연락했다. 처음에는 내가 찍은 광고 영상이 좋다고 했고, <공각기동대>를 실사로 만드는데 관심 있는지 물어왔다. 두말할 것 없이 하겠다고 했다. 특히 리메이크라기보다 원작을 각색하는 차원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새롭게 표현할 지점에 대한 구상도 중요했겠다.
=이 정도 규모의 영화를 할 때는 사실 거의 모든 것이 도전이다. 이 영화는 여타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과는 다르다. 여성이 주인공이고, 꽤 잔인하고 장엄하다. 또한 상당히 제한된 예산 안에서 영화의 스케일, 디테일, 디자인 등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 공각기동대의 세계를 현실성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등등 모든 것이 고민거리로 다가왔다.
-할리우드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리메이크한 예가 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3년 동안 나 역시 많은 것을 걱정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좋건 싫건 간에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공각기동대’니까. 우리가 만들어낸 공각기동대가 자랑스럽다. 나는 미국인이 아니고 런던에서 자랐고 세계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남들보다 국제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또 영화감독으로 이러한 국제적인 시각이 작품을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아시아 문화가 꼭 아시아에만 있어야 할까? <매그니피센트 7>(감독 안톤 후쿠아, 2016)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연출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촬영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어떤 조언이나 격려의 말을 하던가.
=“이 영화는 당신의 버전이어야 한다”고 말해주더라. 다른 사람이 할 것 같은 영화는 만들지 말라고 조언해줬다. 하나의 망가(manga)에서 시작된 <공각기동대>는 이제 3개의 애니메이션, 27개의 TV시리즈, 그리고 수많은 책이 되었으며 이 영화도 그 유산 중 하나로 나의 독창성을 존중한다고 했다.
-<매트릭스>(1999), <제5원소>(1997) 등 원작의 영향을 받은 영화가 이제 SF의 고전이 되었다. 원작의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어떻게 발전시켰나.
=각색 작업을 하는 동안 폰 해킹(phone hacking)이 큰 이슈였다. 사람들이 휴대폰에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쉽게 해킹당했다. 아이폰을 손에서 뇌로 이전시키면 한 사람의 사상, 아이디어가 모두 카피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은 기술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너무 순수하게 아이클라우드를 믿고 있지만, 내가 어디를 가는지,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등 모든 것이 그 디바이스 안에 있기 때문에 뭔가 자신의 뇌에 침투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속편에 대한 계획은.
=사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공각기동대와 함께한 3년은 정말 미친듯이 힘들었고, 열정적이었다. 애착이 많이 가는 작품이다. 다른 사람이 속편을 만드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