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앞둔 경성. 가난한 마술사 석진(고수)은 갈 곳이 없어 방황하던 하연(임화영)과 우연히 만나 곧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얼마 안 가 하연은 어떤 물건을 숨긴 일 때문에 큰 위험에 빠지고 만다. 분노한 석진은 ‘승만’이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복수를 계획한다. 한편, 해방 후 어느 법정에서는 시체가 없는 기묘한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이 벌어지고 있다. 검사 태석(박성웅)과 변호사 영환(문성근)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열띤 법적 공방을 벌인다. 그리고 마침내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증인으로 등장하며 과거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그리고 그처럼 치밀하게 계획되고 잔인하게 실행된 살인사건이 사실 누군가가 설계한 고도의 속임수를 알게 된다.
<기담>(2007)의 정식 감독과 <이웃사람>(2012)의 김휘 감독이 연출 크레딧에 함께 이름을 올린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전개되는 독특한 이야기 흐름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런 전개는 원작 추리소설인 <이와 손톱>(빌 S. 밸린저 지음, 1955)에서 빌려온 것으로, 영화는 교차편집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서로 다른 시간대의 이야기를 조율한다. 이를 통해 재판정에 선 현재 인물의 진술은 과거의 사건에, 그리고 과거 사건의 플래시백은 현재 재판 중인 사건에 또 다른 시점을 제공하며 하나의 사건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만든다. 즉 조금씩 어긋나는 두개의 이야기가 서로 간섭하여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194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그 시대를 화면에 고스란히 구현해낸 독특한 구조의 프로덕션 디자인도 눈길을 끈다. 해방기의 화려함과 모던함을 엿볼 수 있는 남도진(김주혁)의 클럽과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주 무대인 석조저택은 상반된 분위기로 만들어졌다. 일제 잔재와 함께 미국 문물이 들어온 시기여서 그 믹스 매치에 집중했다. 범인의 정체와 사건의 전말이 후반부로 접어들며 다소 싱겁게 밝혀진다는 건 아쉬움으로 남지만, 공들여 설계한 플롯의 톱니바퀴가 관객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짜맞추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