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세 노인을 통해 노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옴니버스영화 <길>
2017-05-10
글 : 김수빈 (객원기자)

순애(김혜자)는 걸핏하면 전자제품을 고장낸다. 아들뻘인 수리 기사들을 집에 불러다 밥을 먹여 보내는 것이 순애의 낙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상범(송재호)은 매일 출근 시간만 기다린다. 어린 손녀를 혼자 힘들게 길러온 그는 최근 카페 일을 시작한 참이다. 상범은 예쁘고 상냥한 직업 코디네이터(지안)에게서 일을 배워나가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에 반해 수미(허진)는 살아갈 이유를 잃은 인물이다. 얼마 전,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그는 며느리의 원망과 더해만 가는 죄책감에 아들을 따라 죽기로 결심한다. 이들은 찬란했던 청년 시절을 함께 보낸 사이다.

<길>은 세 노인을 통해 노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옴니버스영화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각 인물의 전사(前史)를 짧게 훑거나 아예 생략해버리고 세 인물이 처한 현실을 부각시키는 데 공을 들인다. 영화에서 강조하려는 것은 노인들이 느끼는 고립감이다. 세 인물은 모두 가족들과 단절된 채 홀로 생활을 영위해나간다. 자녀들은 부모들을 외면해버리거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이외에도 영화에 등장하는 젊은 세대들은 무력하거나 노인들을 구박하는 모습들이다. 그런 현실에서도 세 노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희망을 찾으려 노력하고, 마지막 에피소드에선 젊은 세대마저 포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메시지를 담아내는 방식이 그리 흡인력 있지는 않다. 고단한 현실과 대비하기 위해 플래시백으로 제시되는 과거 신은 진부한 청춘영화의 한 대목 같고 지나치게 느린 영화적 리듬 탓에 메시지들이 그리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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