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특집은 지난 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의 한국 감독들과의 만남이다. 물론 올해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많았다. 먼저 한국경쟁부문 대상과 CGV 아트하우스상을 수상한 <폭력의 씨앗>의 임태규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2005)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른바 ‘군대’ 소재 영화로, 외박으로 하루의 시간을 얻은 두 군인이 군대 폭력과 가정 폭력을 오가며 겪는 절망적인 경험을 담았다. 김진황 감독의 <양치기들>(2015)에 출연한 이가섭과 함께 군인을 연기한 정재윤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됐던 박기용 감독의 <지옥도>(2016)의 주인공이기도 했는데,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와 내재된 폭력성에 대한 성찰이라는 측면에서 얼핏 두 영화가 주는 느낌이 비슷했다. 임태규 감독은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연출 전공 5기이고, 박기용 감독은 현재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교수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박기용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장편제작연구과정을 정착시킨 장본인이다. 양쪽 모두에게서 최근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들이 여럿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폭력의 씨앗>에 매형으로 등장하는 배우 박성일은 올해 초청된 또 다른 한국영화인 김성준 감독의 <천사는 바이러스>에서 배우 이영아와 호흡을 맞춰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 8기 졸업 작품인 이현주 감독의 <연애담>과 고봉수 감독의 <델타 보이즈>가 공동으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했었다. <연애담>은 지난해 개봉하여 배우 이상희, 류선영의 엄청난 팬덤을 형성하며 일찌감치 큰 화제를 모았고(<씨네21>에서 집계한 2016년 한국영화 베스트10에 포함됐다) <델타 보이즈>는 오는 6월 8일 개봉예정이다. 놀랍게도 고봉수 감독은 벌써 그다음 작품인 <튼튼이의 모험>을 들고 올해에도 전주를 찾아 대명컬처웨이브상을 수상했다. 배우들과의 호흡이 좋아 올해 2월 촬영에 들어가 열흘간 11회차로 끝냈다고 한다. 전작 <논픽션 다이어리>(2013)에서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을 다루었던 정윤석 감독은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로 ‘이명박근혜’ 시대를 관통해온 청년 세대를 그린다. 말 그대로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몇 안 되는 흥미로운 감독임에 틀림없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하나의 글이라도 더 걸리게끔, 굳이 영화제목 외에 감독과 배우 이름을 일일이 쓰려고 하는데(기자들은 이런 나에게 원고량을 억지로 늘리기 위한 술책이 아니냐고 묻곤 하지만 어쨌건), 특집에서 언급된 더 많은 한국영화를 챙겨보고 논평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그나마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앞서 얘기한 <연애담>과 <델타 보이즈>처럼 영화제 공개 이후 1년 내에 모두 극장 개봉에 성공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폭력의 씨앗>과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외에 김대환 감독의 <초행>은 오는 6월 2일 개막하는 무주산골영화제에서 한국 장편영화 경쟁부문인 ‘창’ 섹션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편, 드디어 장미대선이 끝났다. 올해 전주에 ‘박사모’를 소재로 한 <미스 프레지던트>로 초청받은 김재환 감독은 전작 <MB의 추억>(2012)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다뤘었다. 그럼 다음은 문재인 대통령이냐는 김성훈 기자의 질문에 “상상력이 허락한다면 문재인 대통령도 다루고 싶다”며 “5년 뒤, 그가 자신에 대한 영화를 당당하게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나 또한 같은 마음이다. 그리고 다음날 곧장 김세훈 영진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새 정부 아래 영화계 또한 일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