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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석조저택 살인사건> 김휘 감독
2017-05-18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정체성도, 미래도 모든 게 불분명했던 1940년대 중·후반의 조선. 그곳에서 시체조차 찾을 수 없고, 목격자조차 오리무중에 빠진 살인사건 하나가 벌어진다. 빌 S. 밸린저의 소설 <이와 손톱>을 영화로 옮겨온 서스펜스 스릴러물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배경이다. 영화는 한편에선 살인사건을 파헤쳐가는 법정공방이 벌어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마술사 이석진(고수)의 사랑과 복수의 서사가 교차로 편집돼간다. 영화 개봉 다음날, 부산을 거점으로 작업하고 있는 김휘 감독을 서울에서 만났다. <해운대>(2009)를 비롯한 여러 편의 영화를 각색해온 경험과 <이웃사람>(2012)을 시작으로 장르영화 연출을 하며 얻은 노하우를 살려 <석조저택 살인사건> 작업을 마쳤다. 장르영화로 영화시장의 틈새를 노리겠다는 그의 계획도 들어봤다.

-대통령 선거일에 개봉해 전국 관객 8만4108명이 들었다.

=상영관이 적어서 걱정했는데 보신 분들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래도 다행이다. 첫 주말까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전작인 <퇴마; 무녀굴>(2015)이 워낙에 크게 실패해서 그런가. 아직까지는 마음이 편하다. (웃음)

-정식 감독이 각본과 촬영을 마친 뒤에 후반작업에 합류해 영화의 완성을 책임졌다. 이 영화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역할을 정확히 파악해야 했을 텐데.

=제작사와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하나는 원작이 잘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의 구조적인 틀, 그러니까 영화에서 이석진의 이야기와 법정공방이 교차편집으로 구성돼가는 그 재미를 잘 그려보자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후반부에 석진이 복수를 행할 때 스릴러와 서스펜스적 장치들을 최대한 살려내보자는 데 있었다. 나 역시 원작 소설을 재밌게 읽었고 그간 장르영화를 연출해온 경험이 있으니 해볼 수 있는 것들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편집의 묘를 살리기 위한 방법은 뭐였나.

=원작과 차이를 줘가며 ‘내가 뭔가를 더 해야지’ 할 건 없었다. 다만 후반부에 전혀 다른 듯 보였던 두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질 때의 편집점을 어떻게 가져갈까를 고민했다. 소설로 보는 것과 영화로 보는 건 전혀 다르니까. 자칫 소설의 반전이 영화에서는 고리타분하고 전형적으로 보일까봐 이를 경계했다. 사실 관객이 영화를 보기 전에 취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많다보니 영화 매체로서 서스펜스 장르를 독보적으로 보여주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후반작업 과정에서 배우들과 의견 교환을 많이 하려 했다고 들었다.

=고수, 김주혁씨를 만난 게 행운이었다. 특수효과가 많이 쓰이다보니 현장 사운드를 살릴 수 없는 경우가 많아 후시녹음을 해야 할 게 상당했다. 고수씨는 이틀여의 시간을 다 쏟아가며 영화 한편을 다시 찍듯 연기에 몰두해줬다. 김주혁씨의 경우는 극중에서 캐릭터가 확 변화해야 했기에 목소리 톤을 달리해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게 필요했다. 현장과는 또 다른, 후시 과정에서 시도해볼 게 많았고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함께해줬다.

-<이웃사람> 때도 ‘편집실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마케팅 테이블에서 재구성되는 영화가 싫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런 고민은 여전한가.

=투자사와의 마케팅 논의 과정에서 영화가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걸 경계한다는 의미였다. 그때도 그랬지만 한국 영화산업 내에서 드라마 장르가 홀대받고 있지 않나 싶다. <이웃사람> 때 처음 내가 생각한 건 서스펜스 드라마였다. 개인의 갈등이 그려지고 장애물을 뛰어넘어 클라이맥스로 가면서 그 갈등이 해소될 때의 카타르시스를 그리는, 일종의 드라마투르기를 따르고 싶었다. 근데 소위 극장 시장에서는 그런 드라마 장르가 소구성이 없다고 판단내려진 것 같더라. 뚜렷한 작품 색깔이 없을 때 드라마라고 말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드라마 장르를 제대로만 판다면 또 그것에 맞춰 마케팅 전략을 짠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웃사람> 때만 해도 투자사와 작품의 방향에 대해 논쟁하는 게 나로서는 부당하고 힘든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잘 설득하고 전략을 다시 짜며 작품을 끝까지 완성해가는 것도 현재의 산업 구조 아래서 감독에게 요구되는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장편 연출작인 <이웃사람>과 <퇴마; 무녀굴> 역시 원작을 각색한 경우다. 원소스를 영화로 옮길 때 어떤 이야기에 끌리나. 혹은 원작에서 어떤 면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각색하길 선호하나.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이랄까? (웃음) 현실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이야기보다는 ‘영화적’ 상황에 끌린다. 영화로 현실을 반추할 수도 있겠으나 영화가 현실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건 다큐멘터리가 잘할 수 있는 일 같다. <석조저택 살인사건>도 그렇다.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최근의 한국영화들을 보면 당시의 역사적 이슈를 통해 시대를 말하는 방식이다. 근데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살인사건이라는 장르적 사건에 집중한다. 독특했고 그게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지 궁금했다. 또 하나는 부산, 울산, 경남을 거점으로 하는 로컬 시네마를 만들어 보고 싶은 내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어떤 면에서 그렇다는 건가.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전수일 감독님이 직접 설립한 동녘필름에서 만든 독립영화 <내 안에 우는 바람>이 1997년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되고, 이후 역시 지역 예술인이라 할 수 있는 이윤택 감독님의 <오구>(2003)가 부산의 영화 자본과 영화인들이 대거 참여해 만들어지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였다.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영화시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부산에서 계속해서 작업해오고 있는 나로서는 로컬 시네마가 현재의 메이저 중심의 영화산업에 대안적 시스템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특히 이 지역에는 극장을 비롯한 인프라, 인력, 관객이 일정 규모 이상 갖춰져 있다. 제작비는 10억원 정도로 낮추고 지역의 자체 배급망을 통해 상영할 수 있다. 얼마 전 부산을 배경으로 <괴물들>(감독 김백준)을 제작했는데 아직은 상업성이 그리 크지 않다.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대중적으로 소구 가능하려면 좋은 이야기가 기본이다. 메이저 시스템과 경쟁했을 때 그들이 신경을 덜 쓰거나 개입할 여지가 적은 장르적 소재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예컨대 호러나 에로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

=부산 근처의 섬을 배경으로 하는 코믹 호러물을 준비 중이다. <퇴마; 무녀굴>과 비슷하게 퇴마사와 조수가 등장하는데,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여름쯤 캐스팅을 시작해 연말 안에 촬영을 마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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