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2일(금)부터 6일(화)까지 제5회 무주산골영화제가 열린다. 무주 예체문화관 대공연장과 덕유산국립공원 대집회장 등에서 열리는 무주산골영화제는 독특한 관람환경, 흥미로운 부대행사, 친근한 느낌의 상영작으로 매해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는 우리 사회의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억눌렸던 상상력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컨셉으로 총 72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다양한 장르, 다양한 국가에 걸쳐 있는 상영작 목록과 영화인과 음악인이 함께 기획한 다채로운 부대행사들은 벌써부터 영화제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주목할 만한 한국 독립영화들
먼저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한국 독립영화들이 눈에 들어온다. 2014년 <새출발>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장우진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춘천, 춘천>(2016)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의 초청을 받고 있다. 관광지인 동시에 누군가의 고향이기도 한 춘천이라는 도시의 독특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포착한 이 영화는 정교하게 배치한 플롯,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그리고 문득 비집고 들어오는 낯선 이미지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선사한다. 무기력과 슬픔 사이의 어떤 감정을 묵직한 손길로 건드리는 <춘천, 춘천>은 아마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영화 중 하나일 것이다.
<논픽션 다이어리>(2013)를 연출했던 정윤석 감독의 신작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도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다. 2인조 펑크록밴드 ‘밤섬해적단’이 펼친 지난 몇년간의 활동을 기록한 이 영화는 음악다큐멘터리인 동시에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웠던 공간들을 기록한 ‘사회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서울대학교 총장실, 용역깡패들에게 둘러싸인 명동의 어느 건물, 제주 강정마을 등 다양한 공간에서 소리 지르며 노래하는 밤섬해적단의 모습은 통쾌한 카타르시스와 변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한 우울한 분노를 함께 전달한다. 단지 현장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감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재가공한 감독의 적극적인 개입도 중요한 감상 포인트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정식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김일란, 이혁상 감독의 <공동정범>과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한 임태규 감독의 데뷔작 <폭력의 씨앗>도 만날 수 있다.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공동정범>과 군대 내 폭력 문제를 그린 극영화 <폭력의 씨앗>은 영화가 어두운 현실의 도피처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무주산골영화제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폴 버호벤, 미셸 공드리… 영화제에서 만나는 반가운 이름들
국내 개봉을 앞둔 외국의 신작들도 무주에서 미리 만날 수 있다. 개봉한다는 뉴스만으로도 시네필을 들뜨게 했던 폴 버호벤의 <엘르>(2016)는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을 맡은 범죄물이다. 자신의 집에서 마스크를 쓴 정체 모를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다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한 영화는 관객이 예상할 수 있는 답들을 하나씩 피해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성폭행과 살인, 사도마조히즘과 근친에 대한 암시 등 모든 ‘자극적’인 소재를 130분의 상영시간 안에 밀도 높게 채워넣은 <엘르>는 비슷한 소재의 장르영화에 대한 폴 버호벤의 자신만만한 도전장이며, 한 인물의 설명할 수 없는 내면에 대한 대담한 스케치다. 또한 클로드 샤브롤의 <의식>(1995)과 미하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2001)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이자벨 위페르의 탁월한 연기는 <엘르>를 봐야 할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프랑스에서 현지 스탭들과 작업해 많은 화제를 모았던 <은판 위의 여인>(2016), 그리고 <재키>로 주목받았던 파블로 라라인 감독이 파블로 네루다의 삶을 장르영화 속에 녹여 만든 <네루다>(2016)가 무주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작은 모니터에서 보던 영화를 커다란 극장 스크린에서 사람들과 함께 감상하면 어떤 기분일까. 칠레의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 알멘드라스 감독이 만든 <헛소동>(2016)은 넷플릭스와 다운로드 서비스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영화다. 이 독특한 법정영화는 어이없는 이유로 뺑소니 교통사고에 연루된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용의자의 치열한 두뇌싸움이나 정의감 넘치는 변호사의 맹활약 같은 건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현실의 씁쓸한 논리와 답답하게 느껴지는 주인공의 맥빠지는 대응이 있을 뿐이다. 나아가 이 모든 과정을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한 시선으로 포착한 감독의 연출은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의미층을 만들어낸다.
또한 정정훈 촬영감독이 참여했으며 2015년 선댄스영화제 관객상(드라마)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던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감독 알폰소 고메즈 레존), 두기봉 감독의 과감한 CG 사용이 흥미로운 누아르 <삼인행: 생존게임>(2016)도 무주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무주산골영화제의 반가운 부분은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관객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작품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셸 공드리의 낭만적인 감수성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마이크롭 앤 가솔린>(2015), 매력 넘치는 여성 권투 선수가 주인공인 다케 마사하루 감독의 <백엔의 사랑>(2014), 실뱅 쇼메 감독의 아름다고 슬픈 애니메이션 <벨빌의 세 쌍둥이>(2003) 등이 그 이름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반가운 영화는 아이슬란드에서 만들어진 긴장감 넘치는 ‘동물 활극’ <램스>(감독 그리머 해커나르손, 2015)다. 조용한 마을에서 양을 키우며 살아가는 두 노인이 주인공인 이 영화는 ‘양을 지킨다’는 간단한 줄거리를 통해 의외로 긴장 넘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상영시간 내내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아직 소개하지 못한 작품이 많다. 초여름과 잘 어울리는 기타노 다케시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1991), <기쿠지로의 여름>(1999), 그리고 많은 사람의 향수를 자극할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1998)도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음악영화의 대명사인 <원스>(감독 존 카니, 2006)와 <헤드윅>(감독 존 카메론 미첼, 2001)도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무주산골영화제에 독특한 개성을 더해줄 특별 프로그램도 있다. 개막 공연인 <레게이나 필름, 흥부>는 <만추>의 김태용 감독이 총연출을 맡은 공연으로, 한국 최초의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인 <흥부와 놀부>(1967)에 레게와 판소리를 입힌 공연이다. 설명만으로는 어떤 모습의 무대일지 전혀 상상이 안 가는 만큼 더욱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자리이다.
영화 상영 외에도 한국 전통 불꽃놀이인 ‘낙화놀이’ 체험, 반딧불이 탐사 등의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미처 설명하지 못한 자세한 내용들은 무주산골영화제 홈페이지(www.mjff.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