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시 특별전을 맞아 지난 1월 네덜란드 필름 뮤지엄에서 산 자무시 굿즈(?)를 다시 펼쳐 보았다. “고유한 것은 없다. 당신의 영감과 공명하고 상상을 지피는 모든 것으로부터 훔쳐라. (중략) 오로지 당신의 영혼에 직접 말 걸어오는 것들만 골라 훔쳐라. 그러면 당신이 만들어낸 것(과 도둑질)은 진정해질 것이다. 진정성은 무한히 소중하고 완전히 오리지널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훔쳤다는 사실을 감추려 애쓸 것 없다. 오히려 기념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취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디로 가져가느냐다’라는 고다르의 말을 어떤 경우에도 기억하라.” 독창성 결핍에 괴로워하는 모든 사람을 격려하는 이 조언은, 20세기 미학의 주요 선언들로 대사를 대신하는 영화 <매니페스토>(2015)에서도 케이트 블란쳇을 통해 들을 수 있다.
05/01
어느 영화제에나 연일 도전적 예술영화에 응전하느라 지친 관객을 기분전환시켜주는 유쾌한 치어리더 같은 상영작이 있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고봉수 감독의 <튼튼이의 모험>이 그랬다. “얘, 방학했으니까 이제 집에 가서 자!” 교실 뒷줄에서 학기가 끝난 줄도 모르고 엎드려 자고 있는 충길(김충길)을 깨우는 달관한 교사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튼튼이의 모험>은, 세상 무기력해 보이는 이 소년의 레슬링을 향한 불꽃 열정이 심드렁했던 코치와 친구들을 움직여 (그 이름도 친숙한!) 전국대회 토너먼트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충길에게는 <천하장사 마돈나>(2006)의 동구처럼 아들의 운동을 반대하는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남편을 못 견뎌 집을 나간 엄마가 있다. 레슬링을 포기하고 건설현장 일용노동으로 일찌감치 길을 돌린 다문화 가정의 맏아들 승환(백승환), 동네 조직 ‘블랙타이거’ 멤버로서 오직 스왜그 하나 믿고 사는 민재(신민재)가 충길의 두 동료다. 나는 대략 충길이 마을버스 기사로 전직한 코치 상규를 설득하느라 운전석 뒷자리에 붙박이로 앉아 정자세로 읍소할 즈음부터 <튼튼이의 모험>에 그만 정이 들어버렸다.
<튼튼이의 모험>의 이야기 뼈대는 <으랏차차 스모부>(1992)를 비롯한 일본 동아리물 영화의 관습을 벗어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예측 가능한 지점까지 이동하는 이 영화의 호흡과 매너다. 각본을 쓴 고봉수 감독, 그리고 저예산의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한 롱테이크 안에서 즉흥 연기를 더한 배우들은 대단한 배짱으로 대사를 다룬다. 오디오가 겹쳐 각자의 말이 뭉개지는 정도는 고봉수 감독에게 걱정거리도 아니다. 어휘가 풍부하지 않은 인물들이 벌이는 언쟁과 시시덕거림은 많은 부분이 의미와 논리에 발전이 전혀 없는 동어반복인데, 자꾸 듣다보면 말의 내용이 아니라 반복의 빈도와 리액션의 즉각성이 캐릭터의 됨됨이와 그들이 사는 동네의 공기를 전달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실화에 기초했다’라는 자막이 무색하게 고교생 역할의 배우들이 모두 서른 언저리로 보이지만, <튼튼이의 모험>에는 이것조차 유머의 일부로 흡수해버리는 안하무인의 개성이 있다. 코미디영화 가운데에는 객관적으로 조크가 잘 만들어져서 웃기는 영화와 감독 개인의 고유한 감수성이 관객을 설복해버리는 코미디가 있는데 <튼튼이의 모험>과 오는 6월 개봉하는 고봉수 감독의 전작 <델타 보이즈>는 후자에 해당한다. 김지운, 장진, 손재곤 감독 이후 한국영화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인장이 선명한 웃음이다.
05/02
<노무현입니다> <미스 프레지던트> <국정교과서> <금속활자의 비밀들> <이중섭의 눈>…. 전주를 찾은 해외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은, 올해 상영되는 한국다큐멘터리의 다수가 지역의 사회정치적 이슈와 밀착돼 있어 고민스럽다. 아무래도 자국 관객이 관심을 갖거나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울 터이기 때문이다. 박문칠 감독의 <파란나비효과>는, 경북 성주 군민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가장 앞자리에서 강건하게 이끌어온 여성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어째서 여성인가라는 질문은 영화를 보는 동안 자연히 사라진다. 힘의 크기에 민감한 남자들은 권력 앞에서 포기가 빠르다. “나라가 하겠다는데 우리가 별수 있겠어?” 일찍 체념하고 어차피 안 될 법한 일에 시간과 수고를 들이길 꺼린다. 반면 여자들은 승패 확률을 헤아리기 전에 손발을 움직인다. 아니,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쪽이 진실에 가깝다. 아이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전쟁 위험이 높아지고 가족이 즐겨 찾던 숲이 폐쇄되는 사태가 닥치자, 여자들은 다짜고짜 사방으로 손을 내밀어 스크럼을 짠다. 사드 반대 투쟁을 상징하는 파란 리본과 세월호의 노란 리본을 엮어 브로치를 만들며 중얼거리는 한 여성의 말이 귀에 박혔다. “둘을 붙이니 더 예쁘네.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해서 손을 놓을 수가 없어.” 이에 어떤 남자들은 일도 살림도 놓다시피 한 부인에게 이혼을 운운한다. 또 다른 남자들은 여자들의 기획력과 추진력에 감탄한다. “여자들이 판을 깔았으니 이제 남자들이 좀 해요.” “아이고, 지금 잘하고 계신데 우리까지 해야 하나?”
성주의 여성들은 싸울 뿐 아니라 배우고, 앞으로 나아갈 뿐 아니라 뒤를 돌아본다. 그래서 자꾸 깊고 넓어진다. 다름 아닌 나비효과다. 평생 정치적으로 보수였다는 한 중년 여성은 카메라 앞에서 다음 같은 요지의 고백을 한다. “성주의 억울함을 페이스북에 호소하자 한 지인이 그러더라고요. 이제 당신 차례라고. 그제야 알았어요. 이것이 내가 광주에, 세월호에, 강정마을에 무관심했던 결과라는 걸.” 영화는 사드 사태로 더욱 빠듯해진 일상을 쪼개 단체로 팽목항을 방문하는 성주 주민들을 보여준다. 주민 회유를 위해 정부가 제3후보지를 거론하지만 이미 싸우기 위해 공부하는 동안 ‘님비’(NIMBY,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한 주민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곳에도 소수지만 사는 사람이 있다. 남한 어디도 후보지가 될 수 없다.” 정부 입장으로 돌아선 지자체 관료가 투쟁을 주도하는 여성들을 “커피 팔고 술 파는 여자들이 데모하고 있다”고 후려치자 그녀들은 “나는 건전한 주부다”라고 반박하는 대신 여성비하와 직업 비하를 지적하고 항의한다. “차 팔고 술 팔아 번 돈으로 당신 월급 줬다”라는 대꾸를 써붙인 술병과 찻잔을 늘어놓고 되받아친다. 웃음 짓다가, 촛불 집회를 보도한 외신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한국인들은 항거에 매우 능하다.”(Koreans are very good at protesting.)
05/07
할리우드가 입양과 동성혼, 후견으로 생성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축복한 지는 오래됐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가 보여주는 혈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유난하다. 이번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사건은 스타로드 피터 퀼(크리스 프랫)과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 에고(커트 러셀), 그리고 피터를 키운 우주 해적 욘두(마이클 루커) 사이에서 일어난다. 인간보다 강하고 신보다는 약한 셀레스티얼(celestial) 에고는 이름대로- 본인이 짓지 않았나 의심스럽다- 본인 자아의 확장이 곧 우주라고 믿고 가장 친탁한 2세 피터를 절대권력의 파트너로 낙점한다. 그러나 피터는 생부가 어머니를 어떻게 대했는지 발견하는 순간 에고를 적으로 돌리고, 미처 몰랐을 뿐 언제나 곁에 있었던 아버지로 욘두를 받아들인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점은 살부(殺父)라는 거창한 이벤트 앞에서 피터가 번민하는 시간이 극중에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권력 지향 성향이 없는 피터에게, 힘을 약속하는 에고는 나를 만든 정자의 출처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아버지 타노스에 의해 병기로 길러진 자매 가모라(조이 살다나)와 네뷸라(카렌 길런)도 2편에 이르러 서로 화해할지언정 타노스에 대한 살의에는 변화가 없다. 가모라는 복수 과정에서 동생이 입을 내상만 염려한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로켓(브래들리 쿠퍼) 역시 창조자를 증오한다. 유일하게 좋은 기억을 남긴 드랙스(데이브 바우티스타)의 가족은 이미 세상에 없다. 이 와중에 어려진 그루트는 2편에서 나머지 네 멤버가 힘 모아 양육하는 공동의 아이처럼 보인다. 혈연이 일생 도움이 되지 않는 가운데 제임스 건 감독은 서로 살가운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는 외인부대 가디언즈를 ‘패밀리’로 예찬한다. 패밀리와 커트 러셀과 빈 디젤이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분노의 질주> 연작이 이렇게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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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잘났다’ 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가 새롭게 소개하는 행성 소버린(Sovereign)은, 우월주의로 똘똘 뭉친 종족이 사는 별이다. 제임스 건 감독은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 프로덕션 디자인과 세부 설정으로 소버린인의 세계관을 전달한다. 완곡어법보다 직설과 원색을 선호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타일에 입각해, 소버린인들은 글자 그대로 온몸에 ‘금테’를 두르고 있으며 하나같이 전형적인 코카서스 미남, 미녀의 이목구비를 가졌다. 멀리서 보면 살아 움직이는 트로피들 같다. 인공자궁에서 사회적 쓰임새에 딱 맞게 엔지니어링되어 태어난 소버린 시민들은 상하거나 낭비돼선 안 될 귀한 생명인 관계로 전쟁도 원격조정 무인병기로 치른다. 그들의 전투 모습은 전자오락 아케이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도자 아이샤 대사제(엘리자베스 데비키)가 가디언즈를 집요하게 추격하는 이유도 도둑맞은 물건 때문이라기보다는 감히 소버린을 능멸했다는 괘씸함에서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