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노무현입니다> 이창재 감독과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작가의 대담
2017-05-31
글 : 송경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 영화의 엔딩 장면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강원국 작가(왼쪽)와 이창재 감독(오른쪽).

아무리 이야기를 나눠도 부족하다. 우리 가슴속엔 각자의 노무현이 있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떠난 지 8년이 지난 지금에도 마치 오늘의 일처럼 노무현을 이야기한다.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노무현을 되살리는 수많은 말과 글, 영상에 또 하나가 추가됐다.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을 중심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시민들이 일궈낸 승리의 역사를 그린다. <노무현입니다>는 두 가지로 읽힌다.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본인을 직접 소개하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각자가 노무현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방식이다. 노무현이 꿈꿨던 세상으로 첫발을 내디딘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적절한 타이밍에 찾아온 이야기는 그렇게 태어났다. 하지만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밤새 이야기해도 끝이 날 것 같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뭔가 더 이야기하고, 더 듣고 싶은 이들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이창재 감독과 강원국 작가(전 청와대 연설비서관·<대통령의 글쓰기> 저자)에게 한번 더 이야기를 청했다. 그마저 지면의 한계로 전부 담아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전한다.

이창재 감독.

-이제 곧 개봉이다. 주변 반응이 좋다.

=이창재_ 요즘 기분이 참 좋다. 문재인 대통령이 너무 잘하셔서. 청와대 들어갈 때 익숙한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해본 경험치가 있어서 더 잘하시는 것 같다.

=강원국_ 엄청 잘하신다. 얄미울 정도로. 이러다가 노 대통령이 잊히게 생겼다. (웃음)

이창재_ 사실 문재인 대통령을 이번에 인터뷰할 때는 어쩌면 이렇게 감성을 다 빼고 건조하게 하실까 싶어서 내심 걱정했다. 우리는 휴먼다큐멘터리로 가려고 하는데, 아무리 질문을 해도 정책적인 이야기 위주로만 이야기하셔서 난감했다. 잠깐 눈물을 훔치는 순간이 있었는데 정말 번개처럼 돌아서서 눈물을 닦으시더라. 틈을 안 주셨다. (웃음) 최대한 절제하려 하셨고 그게 공식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대하는 자세인 것 같다. 그중에서도 짧게나마 인간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는 순간을 최대한 살리려 했다. 영화 후반에 배치한 장면들은 그런 진심들이다.

강원국_ 윤태영 비서관, 김경수 의원 등 꼭 나왔어야 했을 분들이 안 보이고 내 인터뷰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 있어서 놀랐다.

이창재_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지라 겹치는 부분이 있을 땐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두분도 인터뷰는 했지만 다른 분들과 비슷한 답변을 하셨을 땐, 멘트의 내용보다 말할 때의 뉘앙스, 표정, 분위기가 좀더 살아 있는 쪽을 골랐다. 강원국 작가님은 같은 말이라도 맛깔나게 살리는 재주가 있으셔서 쓸 수밖에 없었다. (웃음)

강원국_ 영화에 대해 하나 아쉬운 건 노 대통령이 아주 유머가 넘치는 분인데 영화에서 생각보다 웃음이 안 터진다는 거다. 내 인터뷰가 나올 때 한두번 웃더라. 내가 웃기는 사람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이 영화에선 웃음 포인트를 담당한 것 같다. (웃음) 덕분에 내 분량이 비중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노무현 대통령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 중에 나는 없다시피 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기 중에 실무적으로 대통령을 도운 사람 중 하나이지 동지, 가신, 측근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노 대통령은 동지의 느낌으로 상대를 부를 땐 성을 붙이지 않고 이름만 부르신다. 내겐 돌아가시기 한달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원국씨’라고 딱 한번 불러주셨다. 기본적으로 낯가림이 심하시다. 정치인답지 않은 거지. 진짜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쑥스러워하신다. 그런 면은 문 대통령과 닮은 것 같다.

이창재_ 강 작가님이 해주신 말 가운데 눈물을 머금고 잘라낸 장면 중 하나가 코딱지에 관한 에피소드였다.

강원국_ 탄핵 때 관저에서 있었던 일이다. 직무 정지가 되었으니 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기간 동안 글을 가장 많이 쓰셨다. 하루는 노무현 대통령이 구술을 하시다가 갑자기 코를 파시더라. 딱 보니 뭐가 나왔다. (웃음) 그냥 튕겨버릴 줄 알았는데, 말을 하다가 계속 돌돌 마시는 거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서 내 앞에 있는 티슈에 싸서 버리셨다. 카펫 위에 그냥 튕겨서 버리셨으면 실망했을 거다. 그때 그걸 보고 생각했다. 이분은 도덕적으로 완벽하구나.(폭소) 그렇게 몸에 밴 사소한 행동들이 중요하다.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티슈를 달라고 할 수도 있었고 그냥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본인이 그냥 하는 거다. 그걸 보면서 이분이 왜 재신임을 스스로 물으려 했는지 이해가 됐다.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도덕적 기준이 정말 높은 분이셨다. 그 점은 문재인 대통령과 닮은 것 같다.

이창재_ 노무현, 문재인 두분 다 도덕적 결벽증이 있으시다. 영화에 쓰지 못했지만 부산 법무법인에서 함께 일할 때의 에피소드 중에도 그런 것들이 많았다. 두분을 비교하는 것 중 하나가 사건 수임 후 돈이 생겼을 때의 태도였다. 당시 노무현 변호사는 수중에 돈이 생기면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고 한다. 40명 넘는 직원들 사이를 기웃거리면서 ‘나 돈 좀 벌었는데 혹시 필요하나? 월세 얻어야 한다며’ 하는 식으로 묻고 다녔다는 거다. 그런 식으로 주변 사람을 챙기며 돈을 쓰셨다고 한다. 반면 문재인 변호사는 한번 큰 건을 처리한 일이 있었는데, 잠잠하더라는 거다. 당시 사무장님이 그걸 보고 두분이 다르구나 하고 느꼈다고 한다.

강원국_ 자기 호주머니에 쏙 넣었다는 건가. <노무현입니다> 영화 살리겠다고 현직 대통령 디스하시면 안 된다. (웃음)

이창재_ 그게 아니다. 끝까지 들어보시라. (웃음) 두달 정도 지난 뒤에 문재인 변호사가 사무장을 불러서 직원이 몇명인지 물었다고 한다. 운전기사까지 포함해서 전부 40여명 된다고 하니 인원수대로 나눠서 보너스로 주자고 목돈을 꺼내놓더라는 거다. 지난번 것 이후로도 2건 정도를 더해서 최근에 돈을 좀 벌었다고 하면서. 그때 사무장은 일의 공과에 따라서 나누는 거지 전부 똑같이 나누는 건 곤란하다고 극구 반대했는데, 기사 분들이 늦지 않게 데려다주셔서 일을 편하게 했다며 함께 나누자는 뜻을 꺾지 않으셨다고 한다. 사무장님은 부산변호사협회 역사상 그런 일이 없었다며 곤혹스러웠던 일로 기억하고 계셨다. 지켜보고 기다렸다가 본인이 결정하면 실행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더라.

강원국 작가.

강원국_ 한마디로 노무현 대통령은 말이 앞선다는 건가? 현직 대통령에 무게중심이 가 있는 발언이다. (웃음)

이창재_ 곧 <문재인입니다>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웃음)

-아무래도 새천년민주당 경선 당시를 중심으로 하다 보니 멋진 연설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창재_ 워낙에 명연설이 많아서 그걸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기존에 접하지 못했던 영상자료를 찾는 것보다는 익숙하고 유명한 말들을 다시 보고 그에 대한 각자의 감상과 의미들을 더듬고자 했다. ‘노무현은’, ‘노무현을’과 같이 중간마다 챕터 제목을 나눈 건 그런 이유에서다. 영화에 직접 내 질문이 등장하진 않지만 ‘당신에게 노무현은 어떤 사람입니까’, 또는 ‘노무현을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까요’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져본 셈이다. 일종의 열린 형식의 질문만 줄 수 있으면 영화를 본 후에 다시금 사람들이 찾아볼 거라고 생각했다.

강원국_ 나는 그걸 해석하느라고 너무 힘들었다. ‘노무현과’, 어쩌라는 건지. 너무 어렵다. (웃음)

이창재_ 반성하겠다. (웃음) 4년 전에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노무현의 결벽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 흔히 자신의 힘겨움을 핑계로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게 마련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엄격했다고 들었다. 인간 노무현을 좀더 알고 싶어진 건 그런 호기심 때문이었다. 한편의 다큐멘터리로 사람의 다양한 일면을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우리 각자가 기억하는 노무현으로 접근하는 길들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열린 질문은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한다.

강원국_ 문재인 대통령도 5당 대표와 가진 첫 회합 때 했던 첫마디가 “나는 내가 말한 걸 꼭 지켜야 하는 결벽증이 있다”였다고 하던데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이창재_ 계속 문재인 대통령 이야기를 하게 돼서 이상하지만,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일화를 들었다. 주변에서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게 이 양반은 화를 안 낸다는 거다. 그런데 한번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하루는 김정숙 여사가 장을 보러 갈 일이 있었는데, 마침 변호사 사무실의 기사 한분이 시간이 비어서, 여사님이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모셔다주셨다. 그런데 문재인 변호사가 급하게 차를 탈 일이 생긴 거다. 할 수 없이 ‘여사님이 차를 타고 가셨다’고 했더니 두말 않고 ‘알았다’며 바로 택시를 타고 시장으로 향했다. 그러곤 그 넓은 시장통에서 결국 김정숙 여사를 찾아내서 크게 화를 내셨다고 한다. 운전기사가 문재인 변호사를 모시는 동안 그렇게 화를 낸 걸 본 적이 없었다고 하더라. 그 뒤에 김정숙 여사는 그 어떤 순간에도 절대 기사님들 차를 타지 않으셨다고 한다.

강원국_ 오늘 흐름은 기승전문재인이다. 조만간에 나올 <문재인입니다>를 기대해 달라. (웃음)

이창재_ 어용영화인으로 자리잡기 위해 노력하겠다. (웃음)

노무현이 아닌, 시민이 주인공인 영화

-노무현 대통령을 다룰 땐 어쩔 수 없이 그분의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하게 된다. 이번 영화는 좀더 입체적이라고 느꼈다. 정치적 역량, 승리의 순간,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심이 모두 담긴 것 같다.

강원국_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업적으로 기억되는 분이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이야기가 되신 분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 앞에 스스로 어떻게 기록될지 의식하고 살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부분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기를 투명하게 보여주고 같이 어울려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굳이 측근, 가신이 아니더라도 인간 노무현을 본 사람이 많다. <대통령의 글쓰기>가 많이 팔려서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거지, 사실 1년에 관련 서적만 40여권이 넘게 나온다. (웃음) 업적은 잊히지만 이야기는 계속 살아서 돌아다닌다. <노무현입니다>도 그 결과물 중 하나이고.

이창재_ 가까운 감독 중 한명이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김대중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 정치적 업적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노무현에 대한 영화는 제일 앞에 ‘인간’ 노무현이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강원국_ 영화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주인공이 아닌 것 같다. 인터뷰했던 사람들도 주인공이 아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을 비롯한 일반 시민들이 주인공인 영화라고 느꼈다. 제일 기분 좋았던 건 광주 경선에서 승리하는 장면을 볼 때다. 영화의 실질적인 하이라이트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울분, 분노, 그리움의 눈물과는 다른 희망과 기쁨의 눈물이 보인다. 생각해보면 노무현과 함께했던 시간에는 이런 눈물들이 있었다. 그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추모와 애도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보고 나면 자신감이 생긴다. 내가 뭔가를 하면 세상이 바뀔 것 같은. 결과를 다 아는데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젊은 사람들은 더 재미있게 볼 것 같다.

이창재_ 영화의 기획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장면이 광주 경선이었다. 우리 기억 속에 정치는 항상 실패와 좌절로 얼룩져 있어 일부러라도 승리한 역사를 조망하고 싶었다. 전체적으론 대니 보일 감독의 <스티브 잡스>(2016)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경선 장면을 중심으로 노무현의 본질을 압축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감정을 고양시킬 수 있도록 음악도 적극 활용했다. 컨셉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라고 했더니 장영규 음악감독님이 처음엔 농담으로 듣고 웃어넘기셨다. (웃음) 나중에는 가슴이 터질 듯이 흥분되는 멋진 연설, 불굴의 의지, 낙관주의를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를 정확히 구현해주셨다. 원래 우리 예산으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음악감독인데, (웃음) 첫 미팅 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영화라고 했더니 두말없이 ‘그럼 하죠’라며 참여해주셨다. 그런 분들의 감사한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영화다.

강원국_ 처음에 인터뷰한다고 불렀을 땐 말 그대로 허접했다. 인터뷰해달라고 해서 왔더니만 지하로 데려가서 메이크업도 안 하고 조명도 없는데 앉으라고 하더니 다짜고짜 질문을 시작하는 거다.(웃음) 동아리 수준의 영상을 찍는 줄 알았다.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 관련 일이라 하면 누구도 안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을 거다.

이창재_ 연출 의도라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예산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그래도 기꺼이 함께해준 분들 덕분에 완성된 영화다. 인터뷰를 보면 대부분 정면에서 화면을 잡는다. 가장 노무현 대통령다운 게 뭘까 고민하다가 면 대 면으로 마주보는 느낌의 인터뷰 앵글을 잡았다. 사실 내가 연출한 이전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편집 스타일도 빠르고 격동적이길 원했다. 집사람의 표현을 빌리면 이창재 영화가 아니라 노무현 영화다. 젊은 사람들이 봤을 때 눈앞에서 직접 말을 건넨다는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끌려올 수 있는 호흡을 원했다.

강원국_ 그런 의도였다면 성공이라고 본다. 이제까지 노무현을 대하는 태도가 분노와 그리움이었다면 8주기를 계기로 희망과 미래를 볼 수 있는 것 같다. 시기적으로 잘 맞았다. 지금 분위기에서 신파로 나갔다면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될 걸 예상하고 만든 건 아니지 않나.

이창재_ 전혀 아니다. 원래 2018년에 있을 대선에 앞서 노무현을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기억을 상기시키고 자신감을 북돋워주려고 기획한 영화다. 노무현 대통령을 8주기에는 절대로 외롭게 해드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사실 광주 경선 장면의 편집본을 영화 개봉과 관계없이 인터넷에 뿌릴까도 생각했었다. 광주에서 노무현을 지지해준 기적이 있었다는 걸 상기시키고 싶었다. 다행히 이번에 광주 시민들이 위대한 선택을 해주셨다. 이 영화에 투자해준 분들도 다 개인이다. 기관 투자자는 일부러 받지 않았다. 투자 금액도한 사람에 200만원 이하로 정해서 최대한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받으려 했다. 본래 5월 23일에 맞춰서 개봉하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영화에 피해를 준다면 그것도 노무현 정신에 맞지 않는 것 같아 25일에 개봉하기로 결정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는 영화인 만큼 가능한 한 절차와 형식 논리를 맞추고 싶었다. 대의를 지향한 노무현 대통령의 흉내라도 내자는 차원에서.

시민들 속으로 휘적휘적

-영화의 한축이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이었다면, 다른 한축은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말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강원국_ 연설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보면서 새삼 내가 저런 분의 연설문을 썼다는 게 죄송했다. 저런 연설을 하던 분이 5년 동안 나를 데리고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싶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를 읽는 장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 문장을 이렇게 짧게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아마 오랫동안 품고 다니며 몇번을 다듬고 다듬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100% 맞는 말이다. 원래 원고를 오래 퇴고하시는 스타일이다. 마지막 남긴 글 중에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라는 문구가 있다. 나는 그게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등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퇴임 후 글을 쓰는 게 자신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셨다. 그 한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 같다.

-인간 노무현이 퇴임 후 꼭 하고 싶었던 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을까.

강원국_ 실제로 딱 그만두자마자 봉하에 내려가서 ‘야, 좋다!’라고 하신 건 솔직한 마음의 소리라고 느꼈다. 그때 내가 왜 좋냐고 물어봤더니 책 읽고 글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너무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게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런 선택을 하신 게 아닌가 싶다. 청와대의 이지원 시스템도 사실 그런 사고의 연장선에 있었다(참여정부의 업무관리 시스템인 e지원(e知園)은 청와대 내부 업무처리를 위한 총괄적인 문서관리 시스템으로, 보고서 작성자가 처음 만든 문서부터 중간 검토자들이 어떤 의견을 내 어떻게 보고서를 수정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이 내린 최종 결정과 지시 등 일체의 의사결정 과정을 소상히 기록으로 남긴다. 국민의 요구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투명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혁신의 핵심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도 재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편집자). 기본적으로 기록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사소한 발언, 댓글 하나까지 국정 5년간의 기록이 잠꼬대 빼고는 다 기록되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걸 본인이 다 쓰신 거고, 노무현 대통령은 시스템으로 정착시키셨다. 공식적으로는 내가 녹음을 해야 누군가 경계로 삼지 않겠냐고 하셨지만, 내가 볼 땐 뻥이다. (폭소) 말을 하다보면 정말 좋은 생각이 나는데 그걸 흘려버리는 걸 아까워하셨던 분이다. 그런데 그걸 못하게 됐을 때의 절망감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책을 쓴들 누가 읽어주겠냐고. 퇴임 후 글을 쓰는 모임도 만드셨다. 서울과 봉하간 화상 회의도 하면서 집단 창작을 하는 시스템을 구상하셨다. 재임 당시 집무실 옆방에 앉아서 그걸 훈련하기도 했다. 정말 즐거워하시면서. 하지만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글 모임을 해체하셨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라는 마지막 문구가 그래서 지금도 가슴에 박힌다.

이창재_ 당시 문재인 후보를 모시고 인터뷰를 했는데 난감했다. 주로 건조한 팩트를 말씀하시고 끝까지 절제하셔서. 그런데 마치고나서 이 이야기는 꼭 해야겠다고 하시며 다시 돌아오셔서 한마디 하셨는데, 그게 영화에 넣은 장면이다. 노무현 대통령 유서를 늘 품에 가지고 다니신다. 그걸 꺼내서 읽는데 딱 그 문장,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를 읽으시면서 진즉에 그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게 바보 같고 내내 후회된다고 하셨다. 최소 한달은 고민하신 것 같은데 당시 변호사라는 입장 때문에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일부러 연락을 안 한 시기였다고 회상을 했다. 그때 잠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침묵이 크게 다가왔다. 차마 읽지 못하고 가만히 보고만 계시는 모습이 옆에서 봐도 마음 아팠다. 그 애잔함을 최대한 담고 싶어 거의 마지막 부분에 배치했다. 특별히 문재인 대통령을 예우해주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저 그 자리가 그분의 자리였다.

강원국_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었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시민들 속으로 휘적휘적 걸어들어가시는 장면을 보면서 감독이 잘 포착했다고 느꼈다. 이분이 흥이 많은 분이다. 연설 때문에 늦은 저녁 관저로 부르시면 불 꺼진 관저 복도에 혼자 앉아서 대통령을 기다리곤 했다. 그러면 저쪽 끝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오신다. 그분은 글을 쓸 일이 있으면 약간 흥분하신다. 솔직히 그 당시 기억이 좋진 않다. 나는 또 며칠 집에 못 들어가겠구나 싶어 침울한데 혼자서 흥얼거리면서 오시는 거다. 그러곤 혼자 신나서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할지 궁금증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보지 않는다며 뭐라고 하신다. 힘든 일 앞두고 뇌가 거부반응을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잔인한 분이셨다. (웃음) 한밤중에 불러놓고 뭐가 저리 신이 났나 싶어 밉기도 했는데, 엔딩 장면을 보니 그때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이상했다. 예전에 일할 때 생각도 많이 나고.

이창재_ 다른 장면은 인터뷰를 하면서 호흡이 만들어졌지만 마지막 장면만큼은 처음부터 엔딩으로 정해져 있었다. 최고의 선물 같은 장면이었고 조금 과장하면 이 영화의 전부였다. 노무현재단에서 보내준 영상자료들을 훑어보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그 장면만 살릴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영상을 하는 사람으로서 내 방식의 애도라고 해도 좋겠다. 상처나 억압된 부분이 이번 영화를 통해 위로받길 바랐다. 최대한 신파와 눈물을 제거하려고 애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분이 보여주고자 했던 희망과 비전을 마음에 남기고 떠나보내드렸으면 한다. 시민들 속으로 휘적휘적 걸어가시는 마지막 뒷모습처럼. 물론 강요할 문제는 아니다. 어떤 분들은 조금은 편안해질 수도 있을 거고, 어떤 분들은 슬픔을 좀더 곱씹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젊은 관객이 있다면 더욱 좋다.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떠나보낼 단계를 밟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인터뷰 중 유시민 작가의 말씀이 기억난다. “보내려고 한다고 해서 떠나보내지는 게 아니다. 떠나보낼 때가 되면 저절로 떠나가는 거다, 노무현에 대한 애도가 마감되는 건 사회가 바로잡힐 때다.” 그런 가치로 향하는 영화인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런 시대가 되면 굳이 내가 없어도 되지, 뭐”라고 하셨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 가슴속에 남는다.

이창재_ 대략 50여분 정도 인터뷰 영상을 찍었다. 성격도, 하는 일도, 개성도 전혀 다른 분들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다보면 닮았다.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결이 비슷하다고 할까, 태도가 겹친다고 할까. 예를 들면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완전히 다른 분이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닮았다. 그래서 노무현 없는 노무현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강원국_ 중간에 ‘모두가 다 노무현이다’라는 말도 나오지 않나. 분신들이 쫙 나오는 거다. 노무현처럼 살고 싶고. 노무현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로 모아지는 것 같다.

이창재_ 그 와중에 강 작가님이 제일 개성 넘친다. 중간마다 안 나오면 영화가 우울해질 뻔했다. 우리 영화의 활력소가 돼주셨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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