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씨네스코프] <채비> 촬영현장
2017-06-08
글 : 송경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엄마가 죽는다.’ 이 한 문장보다 더 크게 세상을 뒤흔드는 일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숱한 이야기가 어머니의 죽음을 다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채비>는 말기암 선고를 받은 엄마가 세상을 떠날 채비를 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엄마에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시간도, 가족과 헤어지는 걸 아파할 여유도 없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 인규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배우 고두심이 가족과 이별을 준비하는 엄마 애순 역을 맡았고, 김성균 배우가 아들 인규로 출연해 호흡을 맞췄다. 으레 눈물을 빼는 신파로 향할 것 같은 이야기지만,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이 서로를 쓰다듬는 손길에 집중한다는 점이 여느 이별영화와 구별되는 지점이다.

현장에서 발견한 또 다른 면모는 조영준 감독에 대한 신뢰다. 지난 5월 21일 오후 충남테크노파크 정보영상융합센터 내 세트장에서 진행된 <채비>의 촬영은 일사불란하게 돌아갔다. 엄마와 아들 인규, 딸 문경(유선)과 손녀딸까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마지막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중요한 장면이었지만 전반적으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촬영이 이어졌다. 고두심, 김성균, 유선 등 배우들은 물론 스탭들까지 감독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이 조영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장의 완벽한 컨트롤은 믿기 힘들 정도였다. 김성균 배우는 “전체적인 콘티부터 사소한 장면 하나까지 완전히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라며 감독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이날만 세개의 신을 소화할 만큼 <채비>의 현장 진행 속도는 빨랐다. 고두심 배우 역시 “베테랑 감독처럼 여유가 있다. 연기만 집중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장면 하나 대충 찍는 법이 없지만 너무 딱딱하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냥 빠른 게 아니라 정확하고 진중한 사람”이라며 감독에 대한 애정을 쏟아냈다.

엄마와 아들로 호흡을 맞춘 고두심, 김성균 배우는 거의 모든 장면에 함께 출연했는데, “<채비>는 신파가 아니라 액션영화”라는 김성균 배우의 농담이 허투루 들리지 않을 만큼 두 사람의 호흡 역시 “척 하면 탁”이었다. <인투 포커스>(2011), <마녀 김광자>(2012) 등 장르색이 강한 단편을 통해 이름을 알린 조영준 감독은 이번 영화가 자신의 경험이 십분 반영된 이야기라고 말했다. “세상을 떠날 채비를 하는 엄마를 통해 각자 홀로 서는 법을 배운다. 내 경험이 녹아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사실 드라마가 제일 어렵다.”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갈 예쁘고 따뜻한 영화 <채비>는 6월경 촬영을 마치고 올 하반기 개봉을 준비 중이다.

영화 현장은 익숙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현장을 두루 살피며 스탭들을 다독이던 고두심 배우. “엄마 역할이 식상하다고 하는 분도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몫이 있는 이야기라서 끌렸다. 거칠고 날선 영화들이 대부분인 요즘 이렇게 예쁘고 따뜻한 영화도 한편 있었으면 좋겠다.”

“촬영 전 회차에 다 나오는 역할을 맡은 건 처음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현장에 내내 있어야 해서 액션영화보다 철저히 몸 관리를 하고, 아니 당하고 있다. (웃음)” 리허설 없이 진행해도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 경우가 없었다며 즐거운 분위기를 이끈 김성균 배우.

극중 엄마와 끊임없이 충돌하는, 악역 아닌 악역 큰딸 문경 역의 유선(오른쪽) 배우. “모자 사이 에피소드에는 웃음도 많은데 문경이 맡은 역할은 심각한 감정 신이 대부분이다. 쌓인 게 많아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등장 빈도에 비해 숙제가 많다. (웃음)”

조영준 감독. “슬픈 장면일수록 담담하게 찍으려 했다. 고두심 선생님이 우리 영화의 기둥이자 뿌리 역할을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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