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 포르노 리부트, 일명 ‘로포리 프로젝트’가 한국에 상륙했다. ‘싸움’, ‘예술’, ‘로맨스’, ‘사회’, ‘레즈비언’ 같은 각각의 주제를 로망 포르노 형식에 담아 만든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의 <바람에 젖은 여자>, 소노 시온 감독의 <안티 포르노>,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시라이시 가즈야 감독의 <암고양이들>,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화이트 릴리>가 ‘로포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지난 5월 25일부터 <바람에 젖은 여자>를 시작으로 해 약 3주 간격으로 한국에 정식 개봉한다. 지난 5월 31일, 홍보차 내한한 나카타 히데오 감독이 대한극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프로젝트 전반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연출작인 <화이트 릴리>를 통해 보여준 파격적인 도전과 일본영화계가 처한 지금의 문제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들려주었다. <링> 시리즈와 <검은 물밑에서>(2002), <극장령>(2015) 등을 연출하며 일본 공포영화계에 한획을 그은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자극하는 공포영화와 역시 동물적인 감각이라 할 수 있는 성적 충동을 자극하는 로망 포르노 영화가 본질적으로는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연출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라는 말로 로망 포르노 리부트 참여에 대한 간단한 소회를 밝혔다.
영화사 닛카쓰 스튜디오가 1971년부터 88년까지 약 17년간 만들었던 1100여편에 해당하는 작품을 일컫는 로망 포르노는 10분에 한번씩 베드신이 등장하는 등의 적절한 조건만 만족시키면 나머지는 연출자 마음대로 만들 수 있었던 닛카쓰 스튜디오만의 특수제작형태 영화다. 닛카쓰는 지난해 일본과 뉴욕 등지에서 로망 포르노 탄생 45주년 기념 상영회를 열었다가 의외로 젊은 여성 관객의 호응이 뜨겁자 시장성을 내다보고 상업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5명의 감독에게 의뢰해 과거의 형식에 맞춘 새로운 로망 포르노 영화를 만들게 했다. 이에 대해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현재 일본영화계가 블록버스터영화와 유명 만화 원작 영화밖에 만들지 못하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하면서 다양성을 잃어가는 일본영화계에서 “소수의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성인 콘텐츠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모습을, 그리고 작품성도 겸비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로포리 프로젝트의 국내 개봉 소식을 직접 전한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실제로 로망 포르노 현장 출신 감독이다. 그는 로망 포르노의 거장으로 알려진 <방황하는 연인들> <현기증> <복숭아 엉덩이 아가씨>의 고누마 마사루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하며 로망 포르노의 시스템을 배웠던 것. “예나 지금이나 예산에 맞추느라 바쁘고 피곤한 촬영현장의 분위기는 매한가지다. 현장의 변화보다는 관객의 변화, 100% 남성 관객의 판타지 충족에 몰입했던 과거의 로망 포르노와 달리 이제는 여성 관객도 극장에서 당당하게 베드신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 같다.” 공포영화를 주로 만들던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화이트 릴리>를 연출하면서 “여성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오랜 꿈을 이뤘다. 다른 4명의 감독들이 모두 이성애를 소재로 한 욕망의 근원을 캐묻는 영화를 만들었다면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레즈비언’을 상징하는 ‘백합’을 내세워 스승과 제자 사이로 오랫동안 동거해온 도키코(야마구치 가오리)와 하루카(아스카 린)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욕망과 집착에 관한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나의 스승이었던 고누마 마사루 감독이 로망 포르노를 만들던 시기에 썼던 방식, 예를 들면 여성의 신체 부위를 탐미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에 백합꽃을 등장시키는 등의 묘사에는 일본 관객도 낯설어하더라. (웃음)” 5편의 로포리 프로젝트는 획일적으로 변해가는 일본 상업영화 시장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성을 지키려는 일본 영화감독들의 투쟁과도 같은 작품이다. “변화의 신호탄”이라며 로포리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 이유이기도 하다.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화이트 릴리>는 8월 17일 국내 개봉예정이다.